2022년 4월 2일, 4일 차 기록
서부 독일과 네덜란드 수도가 이상하게도 가깝게 느껴진 데다 쾰른에서 이미 호텔 3박 요금을 지불한 상태기도 해서 당일치기를 할 마음으로 준비했다. 캐리어 포함 무거운 짐은 대부분 호텔 숙소에 두고, 혹시 모를 일정 변경을 대비해 속옷 한 벌과 세면도구, 태블릿 정도만 백팩에 챙겨서 나왔다.
아침엔 여전히 옅은 눈바람이 몰아쳤지만, 캐리어를 두고 온 데다 전날까지 부었던 발바닥이 다음날 좀 나아져서 한결 여유 있는 걸음이었다. 8시에 나왔지만, 네덜란드 위트레흐트행 열차 출발 시각은 9시 40분. 여유 시간에 쾰른 대성당을 둘러봤다.
거대한 크기 외에도 전쟁의 잔흔으로 인한 검은색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 일부분은 원래의 흰색인 데다, 그때는 옅은 눈이 첨탑과 지붕 위로 쌓여 다양한 명도와 암부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성당 본채와 대비되는, 이후 복원된 듯한 새하얀 두 황제 조각상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성당을 본 뒤 곧장 열차에 탑승했다.
상식으로 네덜란드가 '낮은 땅'이고 나라 전체가 완만한 평지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당시엔 별 기대가 없었다. 열차가 국경을 넘을 무렵이 되어서야 왜 독일과 네덜란드가 다른 나라인지 알았다. 국경 근처에서 한순간에 지형이 바뀌었다. 독일에서 익숙했던 흐린 하늘 아래 거뭇거뭇한 산과 숲이 아닌,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이 펼쳐졌다.
'아... 이게 낮은 땅이구나!'
여전히 구름이 끼긴 했지만 중간중간 햇볕이 들어올 때도 있었고, 거무죽죽한 날씨에 지친 마음이 조금씩 녹았다.
수면과 맞닿은 듯한 초록의 땅, 그 너머 닿아 있을 북해. 이 나라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낸 탁 트인 땅과 항상 나가야만 했던 바다가 수백 년간 이어온 네덜란드만의 자유와 개방성의 원천이지 않을까.
위트레흐트에서 내린 뒤, 누가 봐도 네덜란드의 것인 오렌지와 파랑으로 도색된 열차로 환승했다.
유럽의 국경이라는 게 신기해서 지도로만 봤을 땐 조그만 나라끼리 어중간한 경계선을 가지고 나눠진 듯 보이나, 그 선 양쪽의 느낌은 이질적이었다. 숲과 강과 나지막하지만 엄연히 산이 있는 땅에서, 초원과 운하가 있는 편평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차량 내에서 마스크를 쓰던 문화가, 노인을 제외한 모두가 맨얼굴을 드러내는 문화로 변했다. 하늘마저도 먹구름이 깔린 곳에서 옅은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곳으로, 그리고 마침내 태양 빛이 내리쬐는 곳으로 바뀌었다.
암스테르담 남역(Zuid)에서 내렸다. 한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역사 안을 들어가고 나갈 때 표를 찍어야 했고, QR코드 찍는 방식을 몰라서 잠깐 헤맸다.
바로 보이는 발권기에서 표를 산 후 플랫폼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천천히 올라갈 때 쏟아지던 햇살, 그 너머로 보이던 깨끗한 파란색의 청량함이란. 그제야 여행지의 신선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내린 이래 처음 느낀 여행자로서의 설렘이었고, 그 순간 암스테르담의 하늘은 그해 본 그 어떤 하늘보다도 강렬한 푸름이었다.
전반적인 건물과 시설 모두가 잘 관리되고 깔끔했다. 암스테르담 남역에서 느낀 이 쾌적함은 중앙역, 센트럴 지구, 그리고 호텔로 향하는 길까지 가는 내내 이어졌다. 겨우 3일간 흐렸을 뿐인데, 그 3일 만에 접한 맑은 햇볕은 한없이 반가웠다.
지하철을 타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내렸다. 이번에도 어두운 아래의 공간에서 밝은 위의 공간을 향했다. 중앙역에는 Zuid역의 분위기와는 다른, 고전적인 위풍이 있었다. 규칙적인 비례의 미가 있고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있었다. 일본 도쿄역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건물 외벽 색상 말고는 비슷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후 햇살 아래, 마스크 없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역 앞의 활기가 이곳이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자유로운 도시임을 보여줬다.
분위기에 반해서 광장을 계속 서성거리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가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내려갔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어느 도시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향하면 그곳이 관광 중심지인 경우가 많다. 운하를 건너자 왼편엔 널찍한 트램 전용 도로가, 오른편엔 17세기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넓은 대로가 있었다.
매번 그렇듯 마그넷을 사러 길가의 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갔다. 직원은 유창한 영어로 말하며 함께 골라 주었다. 가게는 밖에서 보이던 것보다 안쪽으로 훨씬 더 깊으면서 넓었고, 다양한 상품이 선반과 벽면을 가득 채웠다. 그중 'Netherlands'가 들어간 마그넷을 직원과 함께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Holland와 Amsterdam이 들어간 마그넷에 만족해야 했다.
대로변에 쭉 늘어선 팬케이크 가게들 중 한 곳에 자리가 있기에 들어갔지만, 너무 바빠 보이는 웨이터에 관광객 전용 식당임을 직감하고 잠깐 기다리다 바로 나왔다.
거리를 걸으면서 원래 계획을 바꿨다. 쾌청한 공기 속에 활력으로 가득 찬 이 도시를 당일치기로 돌아보고 저녁에 돌아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바로 앱을 켜서 중심가에선 떨어진 외곽 쪽의 호텔을 예약했다. 외곽임에도 148유로, 한화 20만 원의 숙박비는 좀 쓰렸지만 암스테르담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점점 허기를 느껴서 적당한 식당을 찾으려 했지만 어딜 가나 만석이라 들어가질 못했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들 역시 자리를 얻기 위한 대기 줄이 카운터에서 건물 밖까지 길게 늘어섰기에 기겁하고 다시 나왔다.
다시 골목을 벗어나 대로로 나오자 멀리 중후한 건물과 그 앞의 광장이 보였다. 당시엔 그냥 얼떨결에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감탄했을 뿐이었다. 나중에 구글맵과 검색을 통해 알았다. 그곳이 암스테르담 왕궁이며, 궁 안 홀의 바닥엔 지구를 둘로 나눈 서반구와 동반구 지도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17세기 황금기의 상징을 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게 못내 아쉬웠다. 항상 다음을 기약하지만, 다시 돌아간 경우는 많지 않았다.
왕궁 앞 광장을 벗어나자 조금 한적해졌고 일부 도로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더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핸드폰 배터리가 슬슬 바닥을 보였고, 어디론가 들어가야만 했다. 중심가에서 벗어난 곳이라 카페든 음식점이든 여유가 있었다. 구글맵에서 평점 괜찮은 곳을 하나 택해 들어갔다.
즉석에서 Scheltema라는 이름의 카페를 찾은 건 행운이었다. 왁스 칠 되어 번들거리는 짙은 밤색이 공간을 덮었다. 예전에 빠져 있었던 '대항해시대'의 주점으로 들어온 듯했다. 역시나 100년이 넘은 전통 가게였다. 벽체와 천장, 바닥뿐 아니라 소품 액자까지 모든 것에 한 세기의 시간이 배어 있었다. 커피 향과 갓 구운 팬케이크 냄새가 가게 안 공기를 채웠다.
바 테이블 근처에선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모를 일행들과 주인이 영국식 영어로 한창 대화하고 있었다. 그중 한 남성이 정확한 악센트에 셰익스피어극 배우 같은 억양으로 분위기를 생생하게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일행은 아니었지만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 기분이 내게도 전해 왔다.
아침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기에 13유로에 커피와 팬케이크를 시켰다. 관광 중심가에서 봤던 비싼 물가에 비해선 양호한 가격이었다. 팬케이크의 구워진 모양새가 정갈하진 않았지만, 방금 구워진 데다 허기도 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배터리 충전을 부탁할 때와 이후 계산할 때 중년의 여성 주인은 가벼우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관광지의 과잉친절도, 전날 쾰른 호텔 직원의 사무적 차가움도 아닌 중간 어딘가의 표정이었다.
카페에서 나온 뒤 곧바로 트램을 타고 호텔로 향했다. 조금 내려가자 왼편에 왕궁과 역에서 봤던 비슷한 양식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들이 보였다. 잠깐 내려서 둘러보니 국립 미술관과 반 고흐 미술관이었다. 내일 들리기로 마음먹고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내려갈수록 전통 양식의 거리를 완전히 벗어나 현대적인 고층 유리 건물들이 보이는 곳으로 접어들었고, Kronenburg역에 도착했다. 독립된 노선과 공간을 갖춘, 버스 정류장과 전철역의 중간쯤 되는 곳이었다. 수도권 외곽에 있는 작은 규모의 경의선 역이 떠올랐다.
역에서 내린 뒤에도 다시 한참을 걸어야 했다. 비용을 아끼려 외곽을 선택한 대가였다. (그럼에도 150유로였다) 운하를 끼고 풀숲이 이어지는 교외 길은 잔잔한 운치가 있었다. 휑한 곳을 혼자 걷는 건 여전했다.
15분 걸어 도착한 Raddison호텔의 프런트는 관광도시의 토요일 오후답게 다양한 차림새와 국적의 여행객들이 대기 중이었고, 체크인을 위해 30분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객실은 고층에 있는, 외관처럼 현대적인 공간이었다. 창문 블라인드를 완전히 젖힐 수 없는 구조가 아쉬웠지만, 그 틈새엔 은은한 오후 풍경이 있었다. 방 내부에 특유의 유럽인 체취가 배어 있던 건 흠이었다.
하루 반나절 만에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한 데다 상당한 거리를 걸어서 돌아다녔기에 침대에 잠깐 눕자마자 눈이 감겼다.
다행히 늦지 않은 시간에 울린 카톡 알림에 깼고, 아직 석양빛이 남아있는 암스테르담 거리를 돌아볼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다시 트램 역으로 향했고, 거기에서 중심가로 이동할 때 즈음엔 해는 완전히 졌지만 저녁 하늘엔 암흑 직전의 검푸름이 남아있었다. 땅거미가 진 구시가지의 운하와 건물들은 오후의 활기와는 다른 조용하고 안정적인 정서를 자아내고 있었다.
도시는 차분히 가라앉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들떠있었다. 운하 변에서 사진을 찍을 무렵에 다른 관광객 무리가 사진을 부탁하기에 찍어줬다. 어두운 시간에 배경 일부에만 빛이 있으면 피사체가 되는 사람은 거의 거뭇거뭇한 실루엣만 남기에 사진 찍기 좋은 시간대는 아니었으나 그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플래시 터트려서 허옇게 뜬 사진도 그들에겐 즐거운 기억인가 보다.
완전히 어두워진 뒤로 암스테르담의 명물 거리 홍등가로 향했다. Red와 Light의 단어 조합이 동아시아에서도 이곳에서도 성적 향락을 제공하는 장소에 대한 비유로 쓰이는 게 흥미로웠다.
지금의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는 문자 그대로 붉은빛의 거리로만 남은 듯했다. 오후 못지않게 중심가 및 골목 곳곳이 관광객들로 넘쳤고, 바안에는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들 중 몇 명이 그런 업소로 향할까? 골목과 거리의 강렬한 붉은빛은 여러 가지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사람들의 넘치는 활기가 조명의 영향을 압도했다.
한 시간 남짓 홍등가, 네덜란드 현지어로는 De Wallen 거리를 둘러보고 다시 오후에 갔던 중심가로 향했다. 밤에 보는 역과 궁전, 광장은 줄어든 사람들로 휑했다. 저녁까지의 열기에 찬 북적거림과 더욱 대비되어서일까, 운하 수면 위로 비치는 오랜 집들의 조명은 낭만적이기보단 공포 영화의 프리퀄에 가까웠다.
호텔로 가는 길에 트램을 한 번 갈아타야 했다. 현지 시간으론 밤 10시 30분, 한국 시간으론 새벽 5시 30분이었다. 마침 부모님이 일어나신 시간이라 다음 트램을 기다리던 정류장의 사진을 보내며 생존 신고를 했다.
낮에도 휑했던 Kronenburg역 부근에서 호텔까지의 길은 밤 11시 무렵이 되자 적막 그 자체였다. 늦게 돌아가는 청년도, 일찍 나가는 노인도 모두 없는 한국의 새벽 3시 느낌이었다. 멀리 보이는 현대식 고층 아파트의 조명이 없었더라면 불안감이 엄습했을 것이다. 그래도 독일에서의 방황과 다르게 이번엔 관광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독 같은 건 씹을 새도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호텔로 향했다.
도착 뒤엔 바로 샤워를 했고, 4일 차 처음으로 관광을 즐긴 여행객의 충만한 기분과 함께 바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벌어질 일은 꿈에서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