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쾰른, 탈출 끝에 만난 첫 사람

2022년 4월 3일, 5일 차 기록

by Rhi hyun


청량한 4월 하늘 아래, 텅 빈 암스테르담 중앙역 플랫폼에 나는 혼자 서 있었다.


역사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평화로웠다. 붉은 벽돌 시계탑은 정직하게 시간을 가리켰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오갔다.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안은 달랐다.


운행 중단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자마자 생각이 줄을 이었다.

오늘 밤 돌아가지 못해 내일 체크아웃을 못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쾰른 호텔의 빈 방에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서, 암스테르담에서 비싼 숙박비를 또 이중으로 내야 하는 걸까. 이미 결제한 저녁 7시 쾰른행 열차는 어떻게 될까. 호텔 방에 둔 내 짐은?

돈이 녹아나는 상황을 떠올리니 이마에 땀이 흘렀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무조건 남쪽으로 가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역사 밖으로 나왔을 땐 오후 4시 55분. 2시간이 남았다.





중앙역에서 나와 M표지판을 따라 내려갔다. 다행히 도시 전철은 NS 전산망과 별개라 정상 운행 중이었다. 남쪽 암스텔역 방향 노선에 탔다. 그곳은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10분 남짓한 이동 시간 후,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도시 간 열차 플랫폼 전광판을 확인했다.


여기도 똑같았다.


rijdt niet/ cancelled


친절한 국제도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 중앙역 마비. 암스텔역 마비. 남은 건 위트레흐트역.

전날 예매한 쾰른행 열차표엔 위트레흐트발 열차 운영사가 Deutsche Bahn(독일철도)이라고 뚜렷하게 나와있었다. DB 운행 열차라면 NS 전산망 오류와 무관할 것이란 희망이 남았다.


역 밖의 대로변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트레흐트역까진 가야 했다. 바로 택시 앱을 켜고 호출했다. 새로고침을 반복해도 연결되는 운전자는 없었다. 우버 앱도 마찬가지. 일요일 오후, 핸드폰 화면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엔 맑은 봄볕이 쏟아졌다.

사람은 없는데 날씨는 화창했다.



오후 5시 30분이 지나자 앱으로 승차가 불가함을 인정하고, 암스텔역 남쪽 방향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역 출구 쪽엔 연두색 형광 조끼를 입은 교통 통제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그중 한 직원에게 물었다.

“위트레흐트까지 버스가 있을까요?”

안경을 쓴 큰 키의 남성 직원은 쓴웃음을 띠고 친절하게 조언까지 덧붙여 답했다.

“없어요. 택시나 우버를 타야 해요. 비용이 부담이면 다른 승객과 합승을 고려하세요.”

웃음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나오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엔 버스는 없고 택시들만 들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대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차례가 되었다.

"위트레흐트 중앙역까지 얼마일까요?"

택시 기사는 민머리에 다부진 체격의 중년 남성이었다.

"미터기로."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냥 탔다.

탄 직후 혹시 모를 다른 승객들과 합승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기사는 금방 시동을 걸었다.

차가 출발해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구글 맵 상으로 37킬로미터,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외곽의 들판은 평화로웠다.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지는 초록색 평야는 그대로였다.


기사는 노래를 들으며 혼자 흥얼거렸다.

가사를 들어보니 네덜란드어도, 독일어도 아닌 아마도 터키어 같았다. 뭔지는 몰랐지만 들뜬 분위기의 곡이었다. 기사가 흥얼거릴 때마다 미터기 숫자는 올라갔다.

30여 분 뒤, 택시는 위트레흐트 중앙역에 도착했고 미터기는 114유로에서 멈췄다. 120유로를 내고 6유로를 돌려받았다. 약 15만 원.

인생에서 가장 비싼 택시비였다.



앞사람은 쾌활했고, 뒷사람은 초조했다.
비행기 값을 내고 도착한 기차역



오후 6시 15분경,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위트레흐트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예상대로 모든 전광판이 그놈의 rijdt niet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독일행 ICE열차가 있는 19번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플랫폼으로 내려가기 전 전광판.


18:24 IC Venlo : rijdt niet/ cancelled.

18:39 IC Nijmegen : rijdt niet/ cancelled.


가장 큰 글씨로 표시된 한 줄은 달랐다.


19:08 ICE International Frankfurt (M) Hbf


쾰른 경유 프랑크푸르트행 국제열차.

여기엔 rijdt cancelled도 없었다.

시간과 목적지만 나왔다. 작은 글씨로 우회 경유지 안내가 붙어 있었다. 기존과 다른 경로였다. 10분 지연 예고도 떠 있었다. 상관없었다. 쾰른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열려있었으니까.

그 시간, 오렌지빛 네덜란드는 멈췄고 회색의 독일 열차는 움직였다.



긴장의 순간에
동아줄이 내려있었다.



출발까지 40분의 시간이 주어졌기에, 역사 내 카페에서 도넛과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저녁 7시에 다시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전광판에서 지연 표시가 사라져 있었다. 곧 열차가 들어왔다.

내부는 쾌적했고 히터도 잘 작동했다. 창밖으로는 평야가 천천히 뒤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차량 내 분위기는 차분했다. 승객들 모두의 얼굴에 안도감이 감도는 듯했다.




열차가 출발하고 30분이 지났을 즈음, 맞은편 자리의 승객이 바뀌었다.

짧은 올림머리에 경량 패딩을 입은,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자리에 앉았다. 그 직후 창밖을 바라보며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손에는 노트가 들려 있었다. 메모를 하는 건지, 스케치를 하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프랑크푸르트 도착 후 그때까지 먼저 다가가 누구에게 말을 건 적은 없었다.

택시비의 아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쾰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홀가분함이 생겨나던 중이었다. 마침 혼자 여행이 왜 힘든지에 관한 글을 쓰던 참이기도 했다. 태블릿에 키보드로 타이핑하던 사람이, 종이에 펜으로 쓰던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다.


“혹시 뭐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림을 그리는 건가요?”


고개를 들고 잠깐 나를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

“메모 중이에요. 여행하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그냥 적어둬요.”



한국 시간 새벽 2시 30분. 석양녘의 글쓰기.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도 암스테르담에서 같은 사고를 겪고 독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와 다른 점은 여러 명과 합승을 해서 그나마 비용을 줄였다고 했다.

무용을 전공했고 유럽 여러 도시에서 공연과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뒤셀도르프 태생이었다. 암스테르담에도 일 관련으로 왔다가 이날 같은 상황에 처했었다고 했다.


나도 여행을 오게 된 계기를 조금 털어놓았다. 갑작스럽게 집을 떠나게 된 사정 몇 가지를 말했다. 계획 없이 혼자 왔다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다 말하진 않았고 그녀도 특별히 캐묻지는 않았다.

내가 말하는 동안 그녀는 노트를 내려놓았다. 잠시 생각한 뒤에 자기 이야기를 했다.

약간 느리며 부드러운 톤으로 나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아요? 친구나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돌아다니는 거.”


한국에서 출발 전 여행 계획을 말했을 때, 지인들 대부분은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달랐다. 자신도 혼자 유럽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일이 많아서였을까, 그대로 파고드는 질문을 했다.


잠깐 생각하다가 답했다.

“해방감도 있지만... 며칠 지나면 혼자 떠다니는 기분이에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자유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부터 시작해서, 태어난 고향 이야기, 지금 하는 일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때론 웃으면서, 때론 진지하게.


열차 안에는 샛노란 저녁 햇살이 가득했다. 창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는 빛이 좌석과 통로 바닥, 앞 테이블까지 선명하게 물들였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밤 9시 45분쯤, ICE 열차는 중앙역이 아닌 쾰른 에렌펠트역에 정차했다. 우회 노선으로 운행하는 탓에 중심까지 직행하지 않았다. 밤의 지상 플랫폼에 내려서자 전날 출발할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습하면서 시린 공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전광판에는 쾰른 중앙역으로 가는 S-Bahn 열차가 밤 9시 54분에 온다고 나왔다.

같이 내린 뒤 마주 보고 섰다.


“여정에 행운이 있길 빌어요.”


그러더니 팔을 펼쳐서 나를 안아줬다.

유럽에서 이런 경우가 있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몸이 잠깐 굳었다가 어색하게 받아들였다.


차가운 플랫폼 위에서의 짧은 포옹이었다.

느낌은 몇 년이 지나도 남아있다.


곧이어 중앙역 방향 열차가 들어왔다.





쾰른 중앙역에서 내리자 밤하늘을 찌르는 그 대성당이 맞이해 줬다.

어두운 밤에 최소한의 조명만 켜진, 첫날 위압적으로 보였던 성당이 이날은 반가웠다.

역사 내 베이커리 BackWerk에 들렀다. 다양한 빵이 저렴한 가격에 놓여 있었다. 4유로에 몇 개를 집어 들었다.

밤 10시가 넘어, 캐리어가 기다리고 있는 호텔 Santo까지 걸어가는 길은 산뜻했다.


공기는 차가웠고, 여정은 여전히 불확실했다. 다음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하나.

오늘 저녁 두 시간 동안 누군가와 얘기했다.

이번엔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얼음에 처음으로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반가웠던 베이스캠프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