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4일, 6일 차 기록
전날 거금을 들여 겨우 탈출한 끝에 쾰른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한 일은 짐 정리도, 샤워도 아니었다. 다음 목적지를 찾는 것이었다. 북서유럽의 도시들에는 여전히 음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신록이 돋아나야 할 4월에, 또다시 잿빛 하늘 아래 찬 공기를 뚫고 다니는 건 질색이었다. 햇볕이 가득한 남쪽 나라로 가고 싶어졌다. 그것도 바다가 있고, 광장이 있는, 혼자 온 여행자들이 많을 도시로.
다음은 베네치아로 정했다.
독일 서부에서 이탈리아 북동부까지는 거리가 멀기에 처음부터 항공편을 알아봤다. 베네치아로 가는 가장 저렴한 항공편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는 라이언에어 노선이었다. 단돈 50유로였다.
전날 40km 이동에 택시비로 110유로 넘게 썼던 상황에서, 50유로에 나라와 나라를, 600km를 이동하는 건 특가 세일로 느껴졌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비행기표 예매에 뒤이어,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역 바로 근방의 호텔 2박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끝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든든하게 조식을 먹은 후 바로 프랑크푸르트 공항행 열차표를 예매했다. 최초 도착지로의 귀환이지만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었기에 상관없었다. 쾰른에서 공항까지 열차 출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공항에서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후 4시 50분. 여기에선 대성당 말곤 본 게 없었기에 체크아웃 후 짐을 맡기고 호텔 주변을 걸어 내려갔다.
골목을 지나 동쪽을 향하자, 한강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폭이 넓은 라인 강이 나타났다. 강변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쾰른의 명물인 호엔촐레른 철교가 나왔다. 철교는 20세기 초 완공됐지만 2차 대전 말기에 폭파되었다가 종전 후 다시 세워졌다. 계단으로 올라가니 독일 2제국 시절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 동상이 등장했다. 빌헬름 2세와는 정반대 성향이었던 단명 황제. 이 사람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 두 차례의 전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옆에 보이는 건 남산타워에서 익숙한 사랑의 자물쇠들.
맞은편에서 내려다보는 대성당과 마침 철교 위를 지나가던 S-Bahn 열차까지, 독일의 중세와 근대, 현대가 모두 담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 뒤 짐을 찾으러 호텔로 복귀했다.
잠깐의 휴식 후 바로 쾰른 중앙역으로 가서 프랑크푸르트 공항행 열차를 탔다. 창밖은 3일 전 쾰른에 올 때랑 똑같은, 흐리고 채도가 낮은 풍광이었지만 마음은 달랐다. 이동 중엔 당시 일본 거주 중이던 이탈리아 친구 A와의 메신저 톡에 집중했다. A는 내가 프랑크푸르트 → 쾰른 → 암스테르담 → 쾰른 → 프랑크푸르트 동선으로 이동하는 것을 ‘루르 공업지대 관광’이라 놀리듯 말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남쪽의 베네치아로 간다는 설렘이 있었다. 이미 써버린 돈이나 지금의 날씨 보다, 곧 다가올 장소와 경험이 중요했다.
오후 2시가 넘어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 공항 연결 통로로 가던 길에, 전날 예매한 비행기 일정표를 다시 확인했다. 전날엔 인식하지 못했던, 약간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그제야 보였다.
‘Hahn’
분명 프랑크푸르트 공항인데 중간에 다른 단어가 있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공항이었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공항인가?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구글 지도를 열어 장소를 찾았으나 결과는 잔인했다.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은 훨씬 멀리, 100km 넘게 떨어진 곳에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까지 연결 버스는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비행기 출발은 오후 4시 50분인데 깨달은 시간은 2시 20분. 버스는 오후 3시에 출발 예정이었다. 버스 이동 시간만 두 시간이 넘었다.
15분 동안 벤치에 앉아 있기만 했다.
전날의 택시비에 이어 오늘은 비행기표를 날렸다. 특가세일로 여겼던 50유로는 추가로 허공에 날린 돈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환불 불가 옵션의 베네치아 호텔 요금은...?
마침 장소는 처음 도착지였던 곳이었다. 그 순간 떠올린 건 한국행이었다. 여기까지인가 싶었다.
다행히 A와의 계속 울리는 메시지 알림이 제정신을 붙잡아줬다. 대화를 이어가며 대안을 생각했다. 지금 있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다른 항공편도 있긴 했으나, 밤늦게 도착이라 마르코 폴로 공항 근처에서 숙박이 필요했다. 항공권에 숙박을 포함한 비용은 200유로가 넘었다. A는 그럴 바엔 열차로 이동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뮌헨까지 이동 후 야간열차로 베로나까지, 그다음 환승 후 베네치아까지의 동선이었다.
야밤에 공항에 도착해서 억지 숙박을 할 바엔 차라리 열차 여행이 낫다고 판단했다. 뮌헨까지 이동시간만 3시간이 넘었기에, 숙박을 할지 거기에서 야간열차를 탈지는 가면서 생각하기로. 94유로, 약 13만 원에 뮌헨까지 가는 열차표를 발권했다.
오후 4시 무렵 열차에 탑승했고, 만하임까지 이동 후 10분이 지나지 않아 곧바로 뮌헨행 열차로 환승했다. 표에 적힌 예매 좌석은 1 Fenster(창문), Wg. 6. ㅡ 6호 차량 창가 좌석이었다. 50유로를 날리고 다시 94유로를 써서 이동하는 길이었다. 바깥 풍경이라도 봐야 했다.
예약 좌석으로 가니 다른 승객이 창가에 앉아있었다. 단발의 코트를 입은 동아시아인 여성이었다. 그 시기 유럽에서 같은 동아시아 여행객을 만나는 건 반갑기도 했지만, 당시 나에겐 창가 자리가 먼저였다.
“Excuse me. That is my seat.”
(실례합니다. 거기 내 자리예요)
날 쳐다보더니 곧바로 대답 후 자리를 비껴줬다.
“Ah yes... sorry"
캐리어를 위 짐칸에 올리고 곧장 자리에 앉았다. 시선은 바로 창밖을 향했다.
10초가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뜻밖의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아...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한국분이신가 보네요”
“그냥 보자마자 알았어요. 여행 중이세요?”
전날과 당일의 참사는 굳이 언급하지 않고 간단히 답했다.
“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일단 뮌헨까지 가요. 그다음 베네치아 가려고요”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옆자리에 앉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겠지만, 두 한국인 여행자는 22년 4월에 독일 만하임에서 뮌헨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나란히 앉았다. 자연스레 서로의 인생 얘기가 시작되었다. 베를린 거주 음악 전공 유학생이었다. 전날과 달리 이번엔 주로 내가 듣는 쪽이었다.
“독일엔 언제 오셨던 거예요?”
“재작년 2월... 에요.”
그녀는 하필 세상이 닫히기 직전, 2020년 2월에 왔었던 것이다. 그 뒤 2년간 한국으로 오가는 건 꿈도 못 꿨다고 한다. 엄격한 방역 지침으로 베를린에서도 사실상 혼자 고립되어 지냈다고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당시 난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홀로 여행자로서 고군분투하던 중이었다. 어떻게 혼자 2년을 버텼을까.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넘은 존경심마저 생겨났다.
다행히도 그녀는 몇 달 전 삶의 동반자를 찾았고, 아우크스부르크로 전공 관련 오디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만하임에서 아우크스부르크까지 2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창밖 풍경은 드문드문 볼 뿐이었다.
열차가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그녀가 내릴 준비를 하더니 말했다.
“저기.. 고마워요.”
“네? 뭐가요?”
“제가 오디션 보러 가는 길이라 사실 엄청 초조하고 긴장했거든요. 그런데 같은 나라 사람 만나서 제 얘기 들어주시고 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왠지 오디션도 잘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정확한 이유는 지금 떠오르지 않는다. 그 말을 듣자 뭔가 주고 싶어졌다. 짐칸 위의 캐리어를 내려 잠금을 풀었다.
“아 저기... 잠깐만요. 이거 드릴게요. 오랜만에 한국의 맛 좀 보시고 힘내셨으면 해서요.”
캐리어 안에는 여행 출발 전 챙겼던 닥터유 단백질바가 1개 남아있었기에 그걸 건넸다. 에너지바 한 개로 한국의 맛이라 말하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일단은 한국산이었다.
약간의 당황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들더니 나에게 건네줬다.
“그럼 전 이걸 드릴게요.”
독일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주는 독일산 에너지바였다.
그녀는 인사와 함께 아우크스부르크역에서 내렸다.
저녁 7시 30분경, 열차는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다. 4년 전, 2018년 최초 유럽여행의 첫 도착지이자, 처음으로 유럽의 밤 풍경에 반했던 도시였다.
이동 중에 60유로에 예약한 중앙역 근처의 Sure 호텔은 걸어서 3분 거리였다. 널찍하진 않지만 빨간 커튼 아래 라디에이터에서 따스한 공기가 올라오는, 아늑한 방으로 들어갔다.
짐을 푼 뒤엔 호텔 바로 옆의 케밥 집에서 팔라펠이라 적힌 음식을 포장해 왔다. 케밥 가게에서 파는 세트 메뉴이기에 양고기와 야채 조합을 기대했으나 한입 물었을 때 느낌은 이질적이었다. 고기 튀김인 줄 알았던 것은 콩 튀김이었고, 어색한 맛에 적응하며 저녁을 때웠다.
계획 없이 온 도시였지만 두 번째 방문에서 오는 익숙함이 있었다. 밤 9시 무렵 오데온 광장으로 향했다. 이날 뮌헨의 아침 기온은 영하 9도까지 떨어졌었고, 밤에도 그 싸늘한 공기가 남아 있었다. 비교적 강한 바람마저 불었지만 뮌헨만의 정돈된 고전적 건물들은 다시 한번 돌아볼 가치가 있었다. 오데온 광장의 사자상에서 시작해 레지덴츠 궁전을 지나 마리엔 광장까지 걸었다. 거기서 프라우엔키르헤와 시청사를 둘러보기까지, 20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한밤중의 구시가지에는 현지인도, 관광객도 드물었다.
4년 전의 그 황홀함은 없었다. 그래도 다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찰나 어쩌다 보니 첫 유럽의 기억이 담긴 장소로 다시 오게 됐다. 그땐 경탄을 불러일으켰던 은은한 달빛 조명 아래 마리엔 광장과 그 주변 건물들이 이번엔 안도감을 자아냈다.
짧은 시간이나마 관광을 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샤워 후 맥주 한 캔을 마실 여유를 챙긴 뒤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의 일정은 제발 계획대로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