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마니아와의 소개팅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이 한마디로 그는 표현이 가능하다.
아침부터 자기전까지 일에 집중하는 때 빼고는 자전거 생각을 한다는 그.
일을 하면서도 '빨리 퇴근해서 자전거 타야지' 한다던 그.
주말이면 서울에서 차로 한시간 떨어진 집에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 반이면 도착한다는 그.(믿거나 말거나)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자전거'에 밀린 건가 아니면 (자전거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었던걸까 의문이 든다.
불과 몇달 전! 나는 소개팅으로 꽤 말이 잘통하는 이 남자를 만났다. 여동생이 있어서 일까? 그는 여자애들이 듣기 편안한 말투와 적당한 조곤거림으로 재잘재잘 대화를 곧잘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good listener였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 말하게 하고 싶어지고, 더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지게 하는 이남자!
외모나 인상은 내타입이 아니었지만 대화가 훌륭했던 그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대화의 반 이상이 자전거였다. 퇴근하고 자전거 탄 이야기,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랑 자전거 탄 이야기, 회사 동기랑 자전거 탄 이야기, 자전거 부품을 중고시장에 내놓을까 하는 자전거 고민이야기...
자전거를 1200만원을 주고 샀다고 했다. 안장하나에도 몇십만원, 휠 하나에도 몇십만원이라고 했다. 그 앞에서, 얼마전 60만원짜리 어ㅇㅇ 자전거를 살까말까 죽도록 고민하다 안샀던건 괜히 부끄러워 말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난 '담배 마니아'도 아니고, '카지노 마니아'도 아닌, 건강에 좋은 '자전거 마니아'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긍정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네번을 만났다. 첫번째는 소개팅을 했고, 두번째 만남에서는 교외지역으로 드라이브를 나갔었다. 집이랑 멀지 않은 곳이어서 삼십분만에 도착한 그곳에서는 간만에 소풍나온 기분이 들어 상쾌했고, 대화는 또 유쾌했으며, 이러한 코스를 생각해온 그가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 괜찮은 것같네..'
우리의 대화는 굿거리 장단처럼 쿵쿵따가 맞는 느낌이었다. (나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또르르)
그런데 교외에 나온지 두시간정도 지났을까?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베스트 프랜드라고 했다. 그리고는
" 이만 갈까요? 저 저녁에 이 친구랑 자전거를 타러 가기로 약속해서요~"
부슬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 날씨에 자전거를 탄다고?
교외나와서 좋은데 왜이렇게 금방 가자는 거야잉...'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더 있다가 가면안돼요?" 는 죽어도 할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차에 올랐다. 자전거를 타러 가고 싶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 이상하게도 이해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카톡의 노란 일이 없어지지 않아도 '자전거를 타니까' 하고 이해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도 '미안해요'로 시작하는 늦은 답장에는 '자전거를 타느라 늦어졌다!'였고 그러면 나도 할말이 없었다.
'미안해요 술을 먹느라고 답장이 늦어졌어요' 였다면 화가 났겠지만 좋아하는 취미인 '자전거를 타느라고' 라는 말은 대응할 수 없는 어떤 무서운 힘이 있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