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마니아와의 소개팅
동갑인데 말을 놓으면 어떨까하는 용기있게 내뱉은 나의 제안에 대한 그의 답.
어랏.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그동안 마음에 안드는 소개팅남들이 친해지려고 말을 놓자고 제안을 하면 내가 했었던 대답이었다.
씁쓸한 기분이었다. 거리를 두는 기분. '너랑은 아직(또는 앞으로 계속) 친해지기 싫어' 라며 방어하는 듯했다.
누군가의 글에서 읽었던 것 같다. 정바비님인지 이석원님인지 헷갈리지만.. 연애는 마라톤과 같은 것이라고.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준다고. 바통을 넘기듯이...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니 참으로 맞는 것 같다. 연애는 마라톤! 그리고 연애는 부메랑이다.
네번째, 마지막 데이트
우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갔다. 영화를 보러가기전 시간이 조금 남아서였다. 햇살도 기분 좋게 비추고, 커피숍 안의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하는 중간중간 누군가에게 텍스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문자인지 카톡인지 모르지만) 아니면 동호회 까페의 글에 답글을 다는 건가? 보지 못하니 알 수는 없었다. 여친이 아닌 썸녀의 한계랄까? (여친이어도 보지는 못했겠지만;) 그의 남자치고 가늘고 긴 손가락은 대화를 하면서도 바빴다.
"화장실 다녀올게요~"
라고 하면 기다렸단 듯이 "네 다녀와요"라는 대답과 동시에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영화를 보러 들어왔다. 영화 시작하기 전 나는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나의 왼쪽에 앉은 그는, 핸드폰을 그의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두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그는 허벅지 위 핸드폰의 작은 움직임에 시시때때로 반응했다. 예의가 아닌 것같아 보지는 못했지만 핸드폰이 울리면 무엇인지 확인하고 답을 하는 것 같았다.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나의 왼쪽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가 반복되었다.
그동안 연락하고 만나면서 처음으로 '다른 만나는 여자가 있는 걸까?'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텍스트를 치느라 분주했던 그의 손가락은 자전거 동호회 때문인줄 알았다. 항상 몇시간씩 늦던 그의 카톡의 답도 자전거를 타느라 그런 것인줄 알았다. 영화스크린에 집중하지 못하고 왼쪽 허벅지위의 손바닥만한 핸드폰 스크린에 더 집중하는 듯한 그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 그는 다음주 부터는 자전거 대회나갈 준비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오늘이 마지막인가, 아님 날 더 볼 마음이 있는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말이지 이생각을 말로 만들어 내뱉고 싶었다.
"너나 볼꺼니 말꺼니? 넌 대체 어떤 마음이니?"
가능한 단도직입적으로 뱉어보고, 확인 사살 해보고 싶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왜 소개팅 남녀들은 솔직하지 못할까.
마음을 들킬까바 전전긍긍해하는 그아이를 보면서 그런생각에 잠겼다.
힘들게 숨겨온 그의 마음은, 그의 노력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았고, 대화를 하는 중간중간 핸드폰에 집중하는 그를 보고 알았다. 이전부터 매번 카톡의 답이 느려지는 것을 보고도 느꼈고, 자전거를 핑계로 짧아졌던 만남의 시간을 통해 알았다. 정작 내 앞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들킬까봐 두려워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행동들로, 무언의 메세지로 내 마음에 마구 날아오고 있었다.
네번째 마지막 만남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를 탓할 마음은 없고 탓할 것도 없다. 우리는 사귀는 것이 아니었고, 서로 탐색하던 시기니까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러한 관계가 지칠 뿐.. 사람의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
것. 정말로 자전거 대회 준비로 바빴을 수도 있고 영화관에서조차 연락을 취하고 싶은 다른 썸녀가 생겼을 수도 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나에게는 반하지 않았다는 것뿐.
사물인 자전거에 밀리는 것보다 어느 어리고 예쁜 여자에게 밀리는 것이 나은 것 같으므로 후자라고 믿을까보다.
이렇게 기대했던 또하나의 소개팅이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