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서 놀던 때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집 생각이 자주 난다. (사실 단조로운 병원 생활 2개월 차라 시간이 많다 보니 보니 집 생각 말고도 여러 생각들이 불쑥불쑥 그렇지만 세세히 떠오른다)
결혼하고 맞이한 내 집 말고, 경남 합천 하금에 있는 고향집 말이다.
어제 본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 산촌 편>에서 시골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마솥에 밥도 해 먹고 찌개도 끓이고 전도 부치고 요즘은 쉬이 보기 어려운 장작불 요리를 보여주었다. 직접 기른 닭이 낳은 따뜻한 유정란으로 계란 프라이를 해 먹고, 집 둘레 텃밭에서 푸성귀를 따다가 그날의 메뉴를 즉석에서 정하는. 모든 메뉴가 다 맛깔스러워 보였고 예능은 그저 편하게 설렁설렁 보는 편인데 그날은 마치 열 살쯤 된 된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푹 빠져 보았다.
고향집도 그랬다.
담벼락을 기댄 한 평남 짓 마당 한편엔 방울토마토, 가지, 깻잎이 나름의 영역을 지켜가며 크고 있었고 뒤뜰엔 머리를 댕강 잘라내어도 또 어느새 푸릇푸릇 자라나는 마법의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와 파가 있었다. 들 일을 마친 엄마는 그때그때 익어가는 호박이나 오이를 저녁 찬으로 쓰기 위해 오토바이 앞 바구니에 싣고 오곤 했다.
그렇게 대충 부쳐낸 정구지전이나 오이냉국, 호박 양파볶음은 다른 반찬이 없이도 뚝딱 나의 허기를 채우기 충분한 음식들이었다.
프로그램 속 어느 날은 비가 왔다. 비에 빨래 대가 넘어져 애써 말려놓은 행주며 수건들이 온갖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갑자기 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빨래를 걷어 마루에 던지는 게 일이다. 또 한여름 날씨는 얼마나 변덕스러웠던가.
고추를 말리던 계절엔 더 분주했다. 남향이라 볕이 좋은 사랑채 슬레이트 지붕에 널어놓은 고추를 사다리를 타고 담을 올라가 기다란 장대건 빗자루 건 쓸어 담아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애써 농사지은 고추가 하얗게 곰팡이가 펴서 버리게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해의 고추농사를 김장과 귀결되는 소중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기타 문명의 소음이 적은 그곳에선 어느 소리건 쉽게 도드라지는데 비가 오는 날은 더욱 그랬다.
물기를 다 내뱉어 말라있던 마당에 후둑후둑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하고 기와지붕에 내린 비는 타고 타고 처마를 지나 바닥에 각자 조그만 모래 웅덩이를 만들어내면서 화음을 이루었다. 마당에 흙이 진흙으로 변할 때의 그 냄새. 흙먼지들이 조용히 수분을 잔뜩 머금으려고 저마다의 자리를 잡는 그 몇 분. 그 냄새가 좋았다.
그런 날이면 농사일에도 손을 놓아야 하는 엄마는 늘 칼국수를 만들거나 부침개를 구워주었다. 간식으로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옥수수와 감자.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도 모를 스테인리스 바구니. 그 처음의 반짝이던 구릿빛은 퇴색해 군대 군데 거뭇한 색에 묻히고 그 형태도 동그란 반구가 아닌 어딘가 찌그러진 바구니에 담아주시던 그것. 툇마루에 앉아 갓 쪄낸 옥수수나 감자를 먹는 것이 너무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비 내리는 것만 봐도 꽉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았던 시간.
비가 개면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합천호에 물안개가 살짝 끼이기도 했지만 뭔가 희뿌옇던 먼지들이 씻겨간 것처럼 맑아지고, 공기마저 청량했다.
그 비 갠 뒤의 냄새. 풀들이 나무들이 저마다 만족스러운 몸짓을 하느라 깨끗한 내음을 뿜어내는 듯한 그 냄새가 너무 좋았다.
언젠가부터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더 더워지기 전에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포슬포슬 찐 햇감자를 먹으러 가야겠다. 비까지 내려주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