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토란 Jun 07. 2021

나의 살던 고향은

그 속에서 놀던 때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


 생각이 자주 난다. (사실 단조로운 병원 생활 2개월 차라 시간이 많다 보니 보니  생각 말고도 여러 생각들이 불쑥불쑥 그렇지만 세세히 떠오른다)


결혼하고 맞이한   말고, 경남 합천 하금에 있는 고향집 말이다.

어제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 산촌 >에서 시골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마솥에 도 해 먹고 찌개도 끓이고 전도 부치고 요즘은 쉬이 보기 어려운 장작불 요리를 보여주었다. 직접 기른 닭이 낳은 따뜻한 유정란으로 계란 프라이를  먹고,  둘레 텃밭에서 푸성귀를 따다가 그날의 메뉴를 즉석에서 정하는. 모든 메뉴가  맛깔스러워 보였고 예능은 그저 편하게 설렁설렁 보는 편인데 그날은 마치 열 살쯤 된  내가  안에 있는 것처럼 푹 빠져 보았다.



고향집도 그랬다.

담벼락을 기댄 한 평남 짓 마당 한편엔 방울토마토, 가지, 깻잎이 나름의 영역을 지켜가며 크고 있었고 뒤뜰엔 머리를 댕강 잘라내어도  어느새 푸릇푸릇 자라나는 마법의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 파가 있었다.  일을 마친 엄마는 그때그때 익어가는 호박이나 오이를 저녁 찬으로 쓰기 위해 오토바이  바구니에 싣고 오곤 했다.


그렇게 대충 부쳐낸 정구지전이나 오이냉국, 호박 양파볶음은 다른 반찬이 없이도 뚝딱 나의 허기를 채우기 충분한 음식들이었다.




프로그램  어느 날은 비가 왔다. 비에 빨래 대가 넘어져 애써 말려놓은 행주며 수건들이 온갖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갑자기 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빨래를 어 마루에 던지는 게 일이다. 또 한여름 날씨는 얼마나 변덕스러웠던가.

고추를 말리던 계절엔 더 분주했다. 남향이라 볕이 좋은 사랑채 슬레이트 지붕에 어놓은 고추를 사다리를 타고 담을 올라가 기다란 장대건 빗자루 건 쓸어 담아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애써 농사지은 고추가 하얗게 곰팡이가 펴서 버리게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해의 고추농사를 김장과 귀결되는 소중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기타 문명의 소음이 적은 그곳에선 어느 소리건 쉽게 도드라지는데 비가 오는 날은 더욱 그랬다.


물기를 다 내뱉어 말라있던 마당에 후둑후둑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하고 기와지붕에 내린 비는 타고 타고 처마를 지나 바닥에 각자 조그만 모래 웅덩이를 만들어내면서 화음을 이루었다. 마당에 흙이 진흙으로 변할 때의 그 냄새. 흙먼지들이 조용히 수분을 잔뜩 머금으려고 저마다의 자리를 잡는 그 몇 분. 그 냄새가 좋았다.


그런 날이면 농사일에도 손을 놓아야 하는 엄마는 늘 칼국수를 만들거나 부침개를 구워주었다. 간식으로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옥수수와 감자.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도 모를 스테인리스 바구니. 그 처음의 반짝이던 구릿빛은 퇴색해 군대 군데 거뭇한 색에 묻히고 그 형태도 동그란 반구가 아닌 어딘가 찌그러진 바구니에 담아주시던 그것. 툇마루에 앉아 갓 쪄낸 옥수수나 감자를 먹는 것이 너무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비 내리는 것만 봐도 꽉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았던 시간.


비가 개면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합천호에 물안개가 살짝 끼이기도 했지만 뭔가 희뿌옇던 먼지들이 씻겨간 것처럼 맑아지고, 공기마저 청량했다.


그 비 갠 뒤의 냄새. 풀들이 나무들이 저마다 만족스러운 몸짓을 하느라 깨끗한 내음을 뿜어내는 듯한 그 냄새가 너무 좋았다.



언젠가부터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더 더워지기 전에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포슬포슬 찐 햇감자를 먹으러 가야겠다. 비까지 내려주면 더 좋고.

작가의 이전글 "문 닫고 나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