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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Jul 11. 2019

일상, 균열 그리고 균형

19년 7월 3일 수요일



복직을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해야 할 일이 있고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은  좋다. 그러나 출근 4일 만에 깨달았다. 문제는 회사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정확히 4일 만에 휴직을 했을 즈음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있다. 역시 4개월을 짧았을까? 요즘 같은 때  일을 하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건  내 인생과 맞바꾼 거래다. 거래의 시간도 내 삶이기 때문에  구렁텅이에 빠진 듯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나의 모든 선택의 결과가 내 문제 만은 아니다. 엄마의 복직이 아이에게 스트레스였던 걸까? 일요일 저녁, 불고기도 재워두고, 짜장도 만들어두고,  일주일 저녁 식단을 적어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모든 준비를 순조로이 끝내고 아이는 등원했다. 역삼동에 있는 고객사 사무실에 출근해서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받으며 업무에 투입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 아이가 열이 나요~"
어차피 상황 뻔히 아는 선생님은 해열제 먹여서 데리고 있겠다 하신다. 이모님께 연락해서 한 시간이라도 이른 하원을 부탁드리고 ( 하루 계약이 4시간이라, 내가 퇴근하고 최대한 달려가도 한 시간 정도밖에 더 당길 수 없었다.) 한 시간 이른 퇴근을 했다.  열이 나서 축 쳐져 있는 아이....

  화요일. 휴가를 낸 신랑이 아이와 병원에 가서 수족구 초기 같다는 진단(확진은 아니고, 수족구일 가능성이 높다는.)을 받고 왔다. 수요일은 어쩔 수 없이 이모님께 하루 종일 돌봐달라고 부탁드렸다. 대신 화/목/금은 휴가 드리기로 했다. 대신 목요일은 다시 신랑이 휴가를 내고, 금요일은 내가 휴가를 내기로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어머님께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조카들을 돌보시느라 사정이 여의치 않다.(말하자면 긴 사연이지만,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한 시간 거리에 사는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얼마 전까지 대상포진에 걸릴 만큼 기본 건강 상태가 안 좋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할 상태인 셈이다. 이번 수족구는  어찌어찌 이렇게 넘긴다고 하지만..... 생각할수록  눈 앞이 깜깜하고 마음이 답답하다. 남은 휴가를 헤아리며 퇴근하는 길에  반찬가게 들러 숙주나물과 어묵볶음을 샀다. 집에 와 저녁 먹을 새도 없이 내일 이모님과 하루 종일 있을 아이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반신욕을 하고 나와 블로그를 쓰고 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하거나 혹은 손해보고 마는 선택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아닌 존재가 안전하게 자라기 위해서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미안해야 하고, 고마워야 한다. 부모가 된다는 건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그렇다면  원래 삶이라는 게 그렇게 서로서로 부탁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함께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부탁하는 사람은 루저다. 을이고 병이다. 대신 돈을 주고 서비스를 산다. 아이 돌봄도, 음식도, 청소도... 아무리 단속을 해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엄마는 맘충이 되고, 장애인은 그림자처럼 살기를 강요당하고, 노인은  고독사를 한다. 돈으로 환원되지 않아도 각자의 시간을 기꺼이 사용해서 누군가를 돌보는 관계가 일상적인 사회. 그런 것을 꿈꾸는 나는 사회 부적응자일지도 모른다.


 고열에 계속 체온을 체크하고, 해열제를 교차 복용하는 아이 옆에서  임경선 작가의 "다정한 구원"을 읽었다. 어머니는 몇 해 전에 돌아가시고 지난해 아버지까지 보내드린 작가는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본인 셋이 1년 남짓 지냈던 리스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부모님의 40대를 만나고, 열 살의 자신을 다시 만나며 마음으로부터 부모님을 보내드리는 과정에 대한  글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책은 서평집과 에세이 책이다. 특히 글 쓴 사람의 일상을 통해 사유의 깊이가 드러나는 책을 읽으면 괜스레 마음이 간질간질 해지기까지 했더랬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나도 글다운 글을 쓰고 싶다고 처음으로 욕심을 내보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책을 멀리했다. 마음으로 꽉 찬 문장들을 읽다 보면 부러운 마음이 너무 커져서 괜히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취향이 그러한데 멀리 도망은 못 갔다. 미루다 미루다 충동적으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와 "다정한 구원"을 구입하고 다시 에세이 집에 빠졌다. 그냥 질투하며 살리다.  
  이 책은 문장이 아름답다. 관찰과 경험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있는 이야기는 마치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작가가 맞은편에 앉아 나직하니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엄마 아빠는 그 시절 행복했었구나. 서투르게나마 나는 사랑받았었구나"

 부모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늘 마음 한편에 들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만난 문장은 한참을 나를 잡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엄마 아빠는 행복해 보였던 순간이 있었을까? 가족들 둘러싼 환경이 주는 힘듦보다 늘 어긋나는 마음으로 각자의 상처에 허덕이는 부모를 보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어린 마음에도 아빠 마음은 그런 게 아닐 텐데, 엄마 이야기는 그런 말이 아닌데 라며 숨죽이며 울던 나는 그런 그들의 삶에 대해 부채의식이 있다. 내 탓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동시에 그저 나로서 내 삶을 살고 싶은 마음.  이런 복잡한 마음들이 뒤섞여 있는 나는 (부모는 모르지만) 끝내 부모와 화해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된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의 부모님을 생각했다. 작가에게는 다정한 구원인 이 이야기가 나에게는 아직 진행 중인 상처인가 보다.

 갑자기 얼마 전  케이블에서 다시 틀어주는  "디어 마이 프렌즈"를 우연히 봤다. 내가 본 장면은 항암 치료 중인 엄마(고두심)가 엄마의 항암 치료를 돕기 위해 다시금 사랑을 포기한 딸(고현정) 에게 비행기표를 내미는 장면이었다.  연하(조인성)에게 가라고. 그 장면이 엄마가 엄마 입장에서는  인정할 수 없었던 딸의 사랑이지만, 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결국 딸의 인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으로 읽혔다. 계속 거절하던 완은 떠밀리듯 집을 나서 결국 비행기를 탄다. 아직은 엄마로 산 세월보다 딸로 산 시간이 훨씬 길어, 아직은 딸의 마음에 더 무게가 실린다. 자식이 본인의 인생을 살려면, 결국엔 엄마를 넘어서 떠나야 한다. 많은 자식들은 바스러져가는 엄마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가 자식의 등을 떠밀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식은 떠날 수 있다. 맞다. 자식은 끝까지 그렇게 이기적이다. 엄마가 스스로 어미로서의 불안감을 감추고, 자식의 등을 떠밀어 주어야 엄마인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등을 떠밀기는커녕 혹시라도 딸의 손을 놓칠까 봐, 이제 더 커버린 딸이 손을 놓아버릴까 봐 겁먹은 엄마의 모습을 보는 나의 괴로움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를 옆에 두고, 나는 이렇게 또 나의 숙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나중에 엄마로 산 시간이 더 길어질 때쯤 된다면(그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떻게 생각이 바뀌어져 있을까? 나는 딸의 등을 떠미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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