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오페이퍼 Jul 11. 2019

삶의 사소한 순간들

19년 7월 7일(일)

  토요일 아이의 수족구 완치 판정을 받았다. 사실 목요일 저녁부터 아이는 괜찮았던 것 같기도 했다. 쉬는 김에 일주일 쭉 쉬는 편이 나을 듯해서 금요일 휴가 내고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은 아이와 스케이트장에 갔다. 역시 모든 운동은 반복과 연습이 중요하다. 세 달 만에 갔더니 아이는 타는 법을 잊은 듯하다. 그러나 본인이 제법 탔던 기억은 남아 있는지 뜻대로 안 되니 짜증을 낸다. 아이에게 이제 다시 연습하면 된다고 차분히 이야기해주었지만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아무래도 스스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할 듯해서, 아이와 신랑과 셋이 나란히 앉았다. 아이는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거의 30년 전에 스케이트를 신은 나는 신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서, 아이를 두고 혼자 타러 갔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신기하게도 앞으로 나간다. 혼자 즐기다가 돌아보니 아이가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타러 왔을 때, 넘어져도 웃으며 계속 일어나서 다시 연습하고 또 연습하던 첫날처럼. 소한 것일 수 있지만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너무 당연한 건데 자꾸 까먹는다. 잊지 말자. 그리고 당분간 스케이트장에 자주 와서 아이가 좌절하기 전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주어야겠다.

  3년. 몇 달 전에 들었던 김경집 교수님 강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무엇을 배우든 3년 이상은 시간을 투자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배워도 끝장을 보는 마음으로. 단순히 재미에 빠져있는 기간 말고 배우는 기간이 3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야 무엇이 되었든 그 분야가  어느덧  자신의 일부가 되고 자신 있는 분야가 되는 거라고. 그렇게 살다 보면 그 분야에 전문성이라는 게  생기고, 삶을 자산이 되어줄 거라는 이야기였다. 얼마 전에 같이 점심을 먹은 어떤 지인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경험담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교육 철학이 무엇을 하든지 3년 이상 배우도록 했단다. 본인은 그래서 운동이든 악기든 일단 시작하면 3년 이상을 배웠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렇게 부모님에게 고마울 수 없단다. 할 줄 아는 게 많고, 그런 경험과 마음이 자신감의 원천이 되어준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이에게 그렇게 교육시킬 돈이 없어서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온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먼저 튀어나온 감정은 당연히 부러움이었고, 동시에 든 생각은 '3년'에 대해 이론과 경험담을 모두  듣고 나니 지금이라도 나도 해볼까 싶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모든 악기, 모든 운동은 아니겠지만 한 두 개 정도는 그런 경험이 기회를 주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학교 내내 타고 놀던 자전거와 6년 동안 배운 피아노가 아직 내 일상에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모르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금도 자전거는 수월하게 탈 수 있고. 피아노도 연습이 필요하지만 악보를 볼 줄 아는 거보면, 정말로 꾸준한 배움과 연습이 인생을 구성하는 한 축인 건 분명하다.

   요즘은 엄지혜 님의 "태도의 말들:사소한 것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를 읽고 있다. 인터뷰하면서 듣게 된 혹은 책은 읽으면서 얻게 된 문장들에서 시작해서 본인의 인생관, 삶을 대하는 방식,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사유하고 글로 적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40살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오력'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에 이 책을 만났다는 편이 맞겠다. 아마 그래서 모든 문장들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음에 들어와 버리는 걸 거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과 엄지혜 님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비슷한 것 같아서 더 책이 재미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단단한 사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의 마음을 돌볼 줄 아는 사람. 동시에 관계와 사람에 대해 진심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금 돌아봤다.  불행(하다는 생각)을 에너지 삼아 무질서와 (나에 대해 그리고 타인에 대해) 예의 없음을 정당화하며 살았던 시간들.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사무치게 속이 상하고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에겐 남은 날들밖에 없으니.  남은 날들이라도 가치 있게, 사람답게, 괴물이 되지 말고 그렇게 살고 싶다.

.. 그리고 사소하지만 평소와 달랐던 일상의 일들. 쌀벌레가 생겼다. 쌀벌레를 먹어도 몸에는 이상이 없다 해서, 쌀벌레 발견 후 두어 번은 쌀을 공들여 씻어 밥을 지어먹었다. 그런데 밥을 할 때마다 쌀벌레를 골라내고, 유충을 찾아내고, 이미 벌레가 더 먹어버려 껍질만 남은 쌀을 골라내는데 한 시간씩 쓰는 것도 힘들어서 가래떡을 뽑았다. 사실 평소와 달리 이런 행동력을 보인 이유는 혹시 그 벌레가 나방 유충이면 꽤 곤란해질 거라는 은하의 경험담 덕분이다. 다른 그릇에 담겨있던 쌀까지 반관 정도(4~5kg) 정도 가래떡으로 뽑았더니 양이 꽤 많다. 또래를 키우며 친해진 3층과 15층, 그리고 앞집에 따끈한 떡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떡국떡으로 썰어서 보관하기로 했다...... 그러나 말린다며 하루를 두고 친정에 다녀온 사이에 떡은 돌덩이처럼 딱딱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다음 주  아이의 새 반찬으로 감자볶음과 진미채를 만들었다. 감자볶음은 사실 바로 해서 먹어야 맛있지만, 살림이 주 업무가 아닌 이모님에게 감자까지 볶아달라고 할 수 없어서 미리 만들어서 넣어두었다. 요즘 짓궂음 지수가 100%에 달한 아이는 밥도 잘 안 먹는다. 새로운 반찬이 있으면 좀 먹을까 싶어 만들어봤으니 맛있게 먹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음의 짐이었던 베란다 청소를 했다. 분명히 이사 오고 초반에 정리를 다 했는데, 또 어수선해지고 말았다. 오늘 다시 정리를 하고 나니 깔끔해졌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가 있어야 한다"와 "수납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찾기 편한 만큼 채워야 한다"는  두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휴직은 의미 있었다. 사소한 삶의 순간들을 잘 챙기는 것. 그것이 나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끼도록 도와줄 것이다. 태어났으니 살고, 육체의 기능이 쇠락하면 생이 끝나는 것. 그것이 인간사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모든 순간이 다 무의미하다. 그래서 나에게 무의미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나를 미워하며 죽고 싶지는 않다. 작고 소박한  꿈이 생겼다면, 그것은 죽는 순간에 그래 너 참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살았어.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그거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 균열 그리고 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