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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Jul 12. 2019

방심은 금물

19년 7월 9일 화요일


자기 전 풍경.

거실을 정리하고 다음날 아이 가방을 싸고 아이가 입을 옷을 찾아서 꺼내놓는다.
내 가방을 정리하고  내가 입을 옷을 꺼내 옷걸이에 따로 걸어둔다.
냉장고를 열고 내일 아침으로 무얼 먹을지 눈으로 스캔하고 아이가 저녁을 먹을 메뉴 해동을 위해 냉동실에서 생선 혹은 고기를 꺼내 놓는다.

아침 풍경


7시쯤 일어나 씻고 간단한 화장을 한다. 샤워는 반드시 저녁에 해둔다. 머리 말릴 시간도 아껴야 한다. 아침을 차려두고 로봇청소기를 돌린 후  7시 30분부터 아이를 깨운다. 아직 깊은 꿈속에 있는 아이 옆에 누워 발도 만지고 손도 만지고 볼에 뽀뽀도 한다. 배시시 웃으며 눈을 뜨는 아이를 안아 식탁에 앉힌다. 아니다. 전쟁 같은 날이 더 많다. 더 자고 싶으니 만지지 말라며 멀리 굴러가는 아이를 허탈하게 바라보는 날이 더 많다. 결국엔 엄마 늦었어!!!!라고 소리치며 깨우는 날이 더 많다.

계란 프라이. 시리얼. 치즈. 과일. 아몬드. 우유. 미숫가루. 구운 두부. 옥수수 들 중 한 두 가지 정도가 아침 메뉴다. 균형 잡힌 영양소는 없다. 아침에 내키는 것을 내민다. 많지도 않은 것을 후다닥 먹으면 좋으련만 아이는 세월아 네월아.... 식탁과 놀이방을 오가며 자신의 속도대로 먹는다.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이를 닦달하거나 여유를 가지거나 결국 식사가 끝나는 시간은 같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시계를 곁눈질하며 빨리빨리를 외친다.  렇다. 내 성격이다. 나는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레슨 시간이 한시라면 12시부터 가는 아이였다. 지금도 비행기 시간이 2시라면 11시에 공항에 도착하는 성격이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한다. 적어도 8시엔 아이가 식사를 끝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설거지를 하고 8시 10분에는 아이가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아야 한다. 내가 후다닥 그릇을 씻는 사이에 아이가 스스로 준비하면 좋지만, 아이는 내가 옆에 서 있기를 바란다. 모든 순간에 관객을 집중을 원하는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아이의 말간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고, 어젯밤에 미리 골라놓은 옷을 입힌다. 내가 미리 골라놓은 옷이 거절당하면 다시 옷을 골라야 한다. 그 편이 빠르다. 옷을 입히고, 머리까지 묶고 나면 후다닥 내 옷을 입는다. 8시 20분쯤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 날은 9시까지 출근이 가능하다.


마음속 이야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위해 본사 근무를 하기로 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본사에서 근무해야 하며,  가능하면 정시 퇴근이 가능한 시스템 운영일을 해야 했다. 요즘처럼 프로젝트가 많은 시기에 손들면 어디든  끌려갈 수 있는 지금 본사에 자리가 있는 건 정말 다행이다. 다만... 프로젝트와 운영 업무 두 가지에 대한 나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아침에 아이를 보내고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 프로젝트 지원은 선택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이 누군가에겐 워킹맘에 대한 편견을 더 견고하게 해 줄  있다.

"xx씨도 애 엄마 되더니 어쩔 수 없네." " 역시 이래서 애 엄마들은 안돼. 편한 일만 하려고들 한다니까"  

아침에 등원 도우미를 쓰기보다는 내가 직접 아이를 챙기고 같이 아침을 먹고 손을 잡고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고 싶다.  다만 내 선택이 또 다른 편견의 재료로 사용된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할 뿐.


오늘 아침 상황 


   9시면 잠들던 아이가 복직 후로는 10시가 넘어도 안 잔다. 안졸다고 칭얼대다가 졸음에 지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든다. 늦어진 취침시간과 빨라진 기상시간으로 아침마다 힘없이 등원하는 아이의 모습이 짠하다. 근무 조정할 생각으로 오늘은 아이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주방의 칼질 소리를 듣고 아이가 꼼지락거리기 시작한 것은  8시 10분.

 10시 전에만 출근해야지 라고 이미 마음먹었으면서도  마음은 조급해진다. 여유 있는 척하지만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는 손길은 거칠고, 시계를 곁눈질하는 눈동자는 바쁘다. 아이는 자신의 속도대로 여유를 부리며 모든 순간을 즐기고 있다. "깨우지 않고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준" 나의 마음을 아이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장마라는데 비가 오려나"라는 나의 혼잣말을 들은 아이는  장화를 신고, 우산을 챙겨야 한다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이미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먼저 타서 아이를 재촉하니 아이는 다급한 표정으로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머리로는 안다. 차라리 빠르게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다는 것을.  아이는 그저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우산을 써야 한다는 본인의 상식대로 움직이고 싶을 뿐, 시곗바늘의 위치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장화도 우산도 없는데 엄마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까 봐 아이는 마음이 급하다. 결국 다시 집으로 들어가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었다. 아이의 표정을 밝아졌지만, 지하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부글부글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나는 '근무시간을 조정해가면서까지!' 아이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줬고 아침도 먹여주면서 "빨리빨리"라는 말도 참았다. 그런데 아 아이는 그까짓 장화와 우산 따위가 뭐라고 1분 1초가 급한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것인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아이에게 화내고 싶은 마음과 화가 나는 내가 부끄러운 마음이 살벌하게 전투를 벌이다가 결국 화내가 싶은 마음이 이겼다.

결국 1층에서 나는 아이를 부러 울렸다. "그렇게 느리게 걸으면 엄마 가버릴 거야!" 라며 등을 돌리고 성큼성큼 걸어가버렸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터지는 울음.  엘리베이터를 그냥 보내게 만든 아이에 대한 유치 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나의 복수였다. 결국 아이를 달래느라 더 시간을 썼다. 다시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가는데 내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다.  


" 엄마. 아침에 엄마는 매일 우니까 (화내는 건데!!!! 징징거리는 거로 보이나?!) 아빠랑 어린이집에 가면 될 것 같아"  라며 나름의 방법을 찾아 제시하는 아이에게 결국 사과했다. " 엄마가 마음이 급해서 안 예쁘게 말했어. 다음부턴 다정하게 말할게. 미안해."  듣는 둥 마는 둥이었지만 밝게 웃으며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마음에 담아두진 않을 것 다. 찝찝한 마음으로
헐레벌떡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있는데 울리는 카톡. 대학 단톡방이다.

" 나는 훈육하고 있는데 계속 장난치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해?"

그리고 이어지는 각자의 경험들.
엄마 아빠 성격. 아이 성격. 그리고 그 가족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갈등 상황과 해결 방식과 대화 패턴 등이 다르다. 올바름을 가르치는 말보다 나의 평소 행동과 말을 통해 아이는 세상을 배운다.

결국 양육도 하나의 관계라는 결론.
수많은 양육 책이 실전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이유는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양육도 하나의 관계일 뿐이다 라는 결론을 들고 오늘 아침 상황을 복기해보면.... 마지막 아이를 울린 나의 행동은 명백한 폭력이다. 나는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울음을 터트리는지 알고 있고 내가 화난 만큼 아이의 감정도 상하길 바랬던 어두운 마음이 나에게 있었다. 찰나의 짧은 무의식이었지만.(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부분.)

내가 목소리 톤이 높아지거나 화를 내면 아이는 "엄마 나한테 화내지 말아야지. 다정하게 이야기해야지"  라며 내 입을 막는다.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나의 보복성 화풀이(?)를 눈치챈다면 서서히 나에게 말문을 닫겠지...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그 험난한 여정에 나는 어쩌자고 들어선 것일까?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일매일 시험을 보는 것 같다. 이 난감한 마음이 아이에 대한 사랑과 별개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다.

왜냐하면..
엄마의 신세한탄과 과도한 잔소리. 그리고 화풀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분노의 순간들이........ 자식에 대한 사랑과 별개일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을 이 글을 쓰는 지금 깨달았으니까..

늘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고 마는 게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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