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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Sep 03. 2019

딸과 엄마 vs 며느리와 시어머니

feat. 김치가 뭐라고!

   엄마가 얼마 전에 주신 짠지를 빼고 냉장고에 김치가 똑 떨어졌다.

지난 주말에 벌초하러 시댁 가는 신랑 등에 대고 "어머니께 김치 좀 얻어다 줘~"라고 소리쳤다.

벌초를 끝내고 돌아오는 신랑 손이 허전했다. "엄마도 김치 없대....."

 작년 교통사고 이후, 재활 치료에 고생하고 있는 우리 엄마에게 '김치'를 물어볼 수 없다. 물론 엄마는 계속 물어본다. "김치 남았니? 김치 필요 없니?" 퉁퉁 부운 다리로 몰래 김치를 담그고 어쩌다 한 번씩 친정에 들르면 꼭 손에 쥐어주신다. 엄마 김치가 맛있으니 당연히 그 김치통이 반가우면서도 그 몸으로 김치를 담고 있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화가 날 지경이었다. 본인 몸 챙기는 것에만 집중하면 좋으려만,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죄책감이 생길 정도의 속상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김치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딱 하나다. "엄마 김치 있어? 없으면 내가 주문해줄까?"

다행히 회사에서 계열사 호텔 김치 임직원 특가 이벤트가 떴다. (맛있기로 유명한 김치다. 오히려 좋은 건가?)


  오늘 퇴근한 신랑이 시댁에 가자고 한다. 김치 담갔으니 가져다 먹으라고 전화 주셨단다. 주말에 아들 말이 마음에 걸려 김치를 담그신 게 틀림없다. "아싸~ 김치" 하며 받으러 갔더니 근처 사는 신랑 누나 몫도 주신다.  

"누나, 엄마가 김치 담그셨대~ 배달해줄게~ 집에 있지?"라는 신랑의 전화 넘어 들려온 누나의 첫마디!

"아니 그 허리로 김치를 왜 담근 거야!!! 못살아 진짜!!!"

그렇다. 어머니는 요즘 척추측만증으로 고생하시고 있다. 누나네 아이들도 돌봐주시다가 그만두셨다. 김치 담가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어머니 척추측만증은 생각도 못했다. 그저 새 김치에 반가운 마음뿐. 그런데 딸은 다르다. 고생했을 엄마를 먼저 떠올린다. 내가 엄마에게 김치의 'ㄱ' 도 꺼내지 않는 그 마음과 꼭 같다.

  

  사실 어머니에게 가끔 서운할 때가 있다. 똑같이 직장 생활하며 아이 키우는 딸과 며느리인데, 딸이 고생하는 건 어쩔 줄 몰라하시면서 나의 회사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요즘 일이 많아서 좀 피곤하네요~"라고 말을 하면, "너네 언니는 요즘에 일이 정말 많다~"로 대답하시는 어머니. 조카들이 아플 때는 열일 제쳐 놓고 돌봐주시는데, 솔빈이 아플 때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하셔서  복직하고 서운했던 적도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에 너무 안 와봐서 집이 어색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물론 그것도 진심일 것이다.)


 오늘의 에피소드를 겪으며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딸과 며느리가 다른 것은 나에게 엄마와 시어머니가 다른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을!

이제 고작 결혼한 지 5년,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관계가 형성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님 생각은 모름....) 불가근불가원의 원칙하에 싫은 소리 안 하시고, 우리 가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시는 어머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김치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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