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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Sep 16. 2019

나만 아는 화해  

엄마 미안해. 그리고 또 미안해.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제사와 추석이 일주일 상간이다. 큰며느리로 시집온 엄마는 40년 넘는 시간 동안 가을이 시작되면 제사를 지내고, 일주일 후 차례상을 차려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그랬다. 나도 그래야 하는지 알고 자랐다. 작년 봄, 엄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과 다리 두 군데 수술을 하고 여전히 후유증에 고생하고 있다. 당연히 작년 제사, 추석, 올해 설은 그냥 넘겼다. 나는 이렇게 엄마가 지긋지긋한 명절 상차림에서 벗어나길 바랬다. 며칠 전부터 종종거리며 장을 보고, 빼먹은 건 없는지 맛없지는 않은지 고생하며 상 차리는 게 보기 싫었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 가족 간의 갈등으로 작은 아버지 가족들과 왕래는 끊어졌고 명절이래봤자 우리 가족이 전부였다. 나와 언니들 모두 시집간 후론 그 모든 일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친척들 눈치 볼 일도 없고, 해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다. 아빠조차도 그냥 성묘만 가자고 괜찮다고 했다.


 "이번에는 제사상을 차리려고..." 


 엄마의 말을 들고 화가 났다. 도대체 왜 저 의무감에서 못 벗어나는 건지 너무 답답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엄마 지금도 아프잖아. 잘 먹지도 못하고, 다리도 아픈데 누구를 위한 상이야?

제발 그만해. 제사 지낼 거면 통화할 때 아프다고 하지도 마!!"


안다. 필요 이상의 화였다. 엄마의 삶이 안쓰러울수록 엄마에게 화가 났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도 나에게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태풍 링링이 전국을 강타하던 날. 나는 태풍을 뚫고 친정에 갔다. 내가 화냈다고 제사를 안 지낼 엄마가 아닌 걸 아니까. 물론 전을 사 갈까 고민을 안 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미 엄마는 모든 준비를 끝내 놨을 걸 알기 때문에 그냥 갔다.


엄마랑 앉아 전을 부쳤다. 예전보다 1/5로 줄은 전의 양에 엄마가 힘들긴 힘든다보다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가 말을 꺼낸다.


"얼마 전에 어디서 무료 치매 검사를 해준다고 해서 해봤는데, 대답을 잘 못하겠더라. 아프다고 내내 누워 있었더니 자꾸 바보가 되는 거 같아서 무서웠어. 그래서 원래 내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던 거 해보려고.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거야..."

"그리고 엄마한테 화내지 마. 네가 화낼 때면 예전에 너네 할머니가 나 막 시집와서 시집살이시킬 때 생각이 나. 엄마는 잘못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거든.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나. 엄마한테 그러지 마" 



  내가 회사에 다니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독서모임을 나가고, 여행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는 동안 엄마는 자식들이 다 떠난 집에 아픈 몸을 다독이며 혼자 지내고 있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살가운 사이도 아니고, 자식들 자기 인생 챙기며 사느라 바쁜 것도 아니까 쉽게 전화기도 들 수도 없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한 번씩 들러 밥 사드리고, 가끔 전화 한 통 해서 안부나 전화고, 필요한 물건 챙겨 사드리는 것 정도로 효도를 다 했다 생각하는 나를 딸로 둔 엄마는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나 살기 바쁘다고 내 시간을 엄마에게 주는데 인색한 나는 매일을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엄마를 볼 때 마다 화를 내곤 했었다. 엄마와 가장 닮은 내가 엄마가 심어놓은 삶의 방식을 부정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부모를 부정하는 사춘기를 지나 부모를 넘어서서 자신을 만드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임을 알면서도, 나는 끝내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런 내가 다 엄마 탓이라고 생각을 해었더랬다.  


태풍을 뚫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에게 "힘든데 왜 왔어...." 라던 엄마가 다시 대문을 나서는 내 손에 잘 익은 총각무를 쥐어준다. "혹시 네가 올까 봐.... 엄마는 줄게 없으니까 이거라도 주고 싶어서..."

평소 같았으면 "그 몸으로 김치는 왜 담근 거야! 그리고 나 차도 안 가져와서 무거워. 엄마나 먹어"라고 투명스럽게 말하고 나와버렸을 텐데 "엄마 고마워, 정말 잘 먹을게."라고 엄마를 꼭 안아주고 나왔다.


나는 앞으로도 다정한 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더이상 엄마에게 "제발 그러지 마." 라고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엄마 잘했어. 엄마 힘든 건 없어? 내가 뭘 도와주면 좋을까?" 라고 말을 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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