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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페이퍼 Aug 18. 2020

아무튼 직장인. 프롤로그

나는 직장인 덕후였어....

 여행지에서 <아무튼 여름>을 읽었다. 

 <아무튼 술>, <아무튼 떡볶이>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책장을 덮을 무렵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책 한 권을 만들 만큼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무엇에도 덕후였던 적이 없었다. 짧고 얕게 좋아하는 주제는 많았다. 


   늘 내 머릿속에는 덕후에 대해서도 가성비라는 기준이 따라다녔던 듯싶다. 예를 들어, 영화 음악에 빠졌다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에 대해 한두 시간쯤은 떠들 정도의 지식을 갖춰야 할 것 같았고, 피아노를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음악을 들으면 간단한 코드 정도는 따야 비로소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덕후란 능력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능력은 금전적 그리고 심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선물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덕후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러나 나는 늘 조바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지만, 가장 가성비 좋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고르느라 넷플릭스 화면만 몇 시간씩 보는 사람이 나였다. 더 가성비 좋은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아서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그럼에도 40여 년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가장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두둥두둥  그것은 바로 직장생활.!! 20대 후반에 어쩌다 취직한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15년째 다니고 있으니 이 정도면 직장인 덕후라고 할 수 있을까? 훗.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늘 준비된 사람이었다. 내가 올인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난다면, 어떤 인생의 굴곡을 무릅쓰고서라도 분연히 사표를 던질 준비. 

직장생활은 내게 늘 임시직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직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회사나 저 회사나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한 달에 한번 월급이 입금된다라는 것 외에는 어떤 회사든 나에게 무차별했다. 왜 이직을 하겠는가! 귀찮게!  


그러나 너무나 당연하게 지금 여기를 벗어나 하고 싶은 일 따위란 어느 날 갑자기 산타클로스 선물처럼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걸 깨닫는데 무려 15년이나 걸렸다. 아이고야.  후배가 회사는 학교와 달리 졸업이 없어서 관두지 못하고 계속 다니고 있다고 이야기할 때, "퇴사는 인생의 가장 주체적인 선택이란다."라고 잘난 척을 했는데, 나는 그런 주체적인 선택을 할 위인이 못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소심하게 인정하고 나니,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나에 대해 쓸 수 박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사의 빈곤에 대한 슬픔은 묻어두고 

어제도 오늘도 퇴사를 외치는 나는 내일도 직장인일 것임을 예상하며, 

나의 15년 직장 생활을  "아무튼 직장인"이라는 매거진 아래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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