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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할극은 계속되는가...

미드 <외교관> 감상기

by 네오페이퍼

영어포비아로 미드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우연히 보게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외교관은 꽤 재밌다.

세계 정세나 국가 간 관계를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미국 간의 미묘한 역학 관계를 보는 맛이 있다.

그러나 내게 시즌 3까지 오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주인공 케이트와 할 부부의 요동치는 역학관계였다. 둘은 외교관 부부다. 중동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하며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했다는 설정이고 시즌1은 잘 나가던 남편 할을 제치고 부인 케이트가 영국 대사로 임명되면서 시작한다. 전략가이자 야심가였던 남편은 부인의 가족으로만 있어야 하는 역할을 힘들어한다.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그 일을 좋아하던 사람이 그럴 수 있다 치자. 대사의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뒤에서 일을 벌이고 그게 케이트를 힘들게 한다. 시즌2도 그런 관계들의 연속이다. 불같은 사랑을 했던 부부는 급기야 부부관계를 끝내자는 얘기까지 나오던 중에,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시즌2가 끝난다.

시즌 3에서 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공석이 된 부통령 자리에 남편 할이 지명된다. 보면서 당황했던 게 케이트가 너무나 쉽게 부통령의 부인으로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대사를 그만두는 선택을 하려고 하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던 그간의 과정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짜증 나는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할은 갑자기 일을 잃은 부인을 위해 권한도 예산도 없는 친선 대사 같은 자리를 제안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케이트의 공허함을 배려하는 다정한 남편이라는 역할놀이일 뿐 진짜 그녀를 위한 선택, 부통령직을 을 거절할 결심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케이트는 남편만 보내고 자신은 영국대사로 남기로 결정을 한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행복한 핵가족이 위대한 미국의 상징이기 때문에 부통령 부부가 이혼을 할 수는 없다.) 개인적 관계에서 부부관계는 파탄이 난다.

드라마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케이트가 부통령 부인의 역할과 대사로서의 역할을 다 수행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을 오간다면, 할은 결혼기념일에 다정한 남편 이벤트를 위해 영국으로 건너갈 뿐이다. 시즌 3에서 내게 다가왔던 건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남편은 비난받지 않으나, 자신의 일을 위해 내조의 역할을 거절한 아내는 늘 노심초사하는 전형적인 관계였다. 심지어 둘 사이의 부부관계는 파탄 났음에도 불구하고 쇼윈도 부부의 역할을 하는 그들임에도 그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시즌3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케이트는 할과 협력하여 영국과 미국 관계의 큰 이슈를 해결했다는 사실에 감동(?) 하며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남편에게 돌아가겠다고 결심하지만, 그 사이에 할은 케이트 남자친구와 케이트의 뒤통수를 치는 선택을 한다.

할이 대통령과 쿵작거리면서 한 결정이 미국 입장에서는 맞는 전략적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거슬린건 본인이 맞다고 생각한 것을 위해 언제든 케이트의 뒤통수를 칠 준비가 되어있는 할의 태도였다.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지 생각하겠지. 그리고 대통령의 남편이 시종일관 부통령인 할과 와이프 사이를 의심하는 것도 웃겼다. 내가 보기엔 야심가 둘(대통령과 부통령)의 결탁인데, 대통령의 남편은 여자인 자기 부인이 다른 남자와 의견을 맞춰 일하는 걸 다른 감정의 결합으로 보는 게 남자들의 소유욕을 보여준다고 보였다.



여하튼 시즌 4에서는 제발 케이트가 미련 버리고 할의 뒤통수를 치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고 이 드라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이드라 박이 승승장구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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