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 시대의 리터러시 전환, 쓰는 인간에서 조율하는 인간으로
자동 사냥 게임을 켜 놓고 일을 하는 팀원에게 일하는 시간에는 일에 집중하자고 한소리했습니다.
퇴근 길에 보는 눈들이 많으니 조심하자고 말하고는, 넌지시 물어 봤습니다.
"근데 그거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하는 거예요?"
"관리하는 재미죠."
요즘 제 글쓰기의 시작은 챗GPT 대화창을 여는 겁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머릿속에 있지만, 글쓰기를 바로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답변이 출력되는 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레벨 노가다를 동반하는 수동 전투 RPG 게임에 익숙한 세대로서, '자동 사냥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 —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예전에는 빈 화면 앞에서 문장을 고민하고 직접 타이핑했습니다.
지금은 LLM이 완성된 문장을 출력하고, 저는 그 결과를 응시합니다.
처음에는 이걸 단순히 '편해진 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만 멈춰 있을 뿐,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묘하게 분주합니다.
생각의 결이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자동 사냥 게임의 구조를 상상해 봅니다.
캐릭터는 자동으로 몬스터를 찾아 공격합니다. 플레이어가 버튼을 연타하지 않아도 전투는 계속되고, 손가락은 쉬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역할은 '전투'가 아니라 '설계'입니다. 캐릭터의 직업을 고르고, 장비를 맞추고, 스킬 포인트의 순서를 결정합니다. 어느 지역에서 사냥을 돌릴지, 경험치 효율은 좋은지 따져가며 판을 짭니다.
똑같이 자동 사냥을 돌려도 어떤 캐릭터는 빠르게 성장하고, 어떤 캐릭터는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건 손의 속도가 아닙니다. 세팅을 어떻게 했는지, 상황을 보고 언제 개입하여 전략을 바꾸는지 결정하는 ‘조율의 감각'입니다. 즉, 자동 사냥은 전투를 대신해 주지만 생각까지 대신해 주진 않습니다. 생각의 개념은 '실행'에서 '조율·설계·판단'으로 이동합니다.
LLM을 자동 사냥에 비유하는 건 억지일까요?
자료 찾기, 개요 작성, 문장 만들기, 문장 잇기, 중간 문단 채우기, 요약, 초안 만들기 같은 '텍스트의 전투'는 이제 LLM이 수행합니다. 고된 작업이 자동으로 돌아갑니다. 심지어 직접 타이핑하는 속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게 결과물을 출력해 줍니다.
저는 무엇을 물을지 결정하고, 문제 의식과 주제를 날카롭게 다듬어 갑니다. 내용과 문체를 점검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대목을 짚어 "이건 조금 다르게"라고 요청하고, 강조점을 바꾸라고 지시합니다.
생성이 시작되면 잠시 '관전'하고, 결과가 나오면 다시 '개입'하여 조율합니다.
이 리듬이 반복될수록, '내가 직접 쓰고 있다'는 감각보다 '내가 어떤 시스템을 굴리고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워집니다. 자동 사냥에서는 전투 실행을 시스템이 하고, 조율을 사용자가 합니다. LLM에서는 문장 생성을 LLM이 하고, 사용자는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어떻게 만들지'를 정하는 사고를 합니다.
이 낯선 변화를 곱씹다 보니, 오래전 미디어 생태 학자들의 통찰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맥루언은 "매체는 인간 기능의 확장"이라 했습니다. 맥루언의 말처럼 LLM은 글을 ‘직접’ 쓰는 손과 눈을 떼어 놓고, 조율하는 자리'에 저를 다시 앉혔습니다. 자동 사냥에서 손 대신 시스템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이때 확장이란 곧, 역할의 이동입니다.
포스트먼은 "매체는 사고의 형식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활자가 논리적·직선적 사고를 만들었다면, LLM은 '대화 중심 사고'를 새로운 기본값으로 깔고 있습니다. 이제 '생각한다'는 행위는 혼자 하는 독백이 아니라 질문하고, 응답을 보고, 다시 질문하는 과정과 겹쳐집니다. 이건 단순히 편리한 인터페이스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화라는 형식 자체가 사고 방식을 재구성한 겁니다.
키틀러는 "기술은 인간의 역할을 재배치한다"고 말했습니다. 저자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결과물을 설계하고 감수하는 자리로 우리의 역할이 재배치된 것입니다. '내가 쓰는가, LLM이 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이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결국 기술은 실행을 맡고, 인간은 점점 더 고도화된 조율의 존재가 되어갑니다.
자동 사냥은 메뉴 버튼으로 조율합니다.
LLM의 조율 버튼은 '대화'입니다.
과거의 글쓰기가 머릿속에서 생각을 완결 짓고 한 줄 한 줄 늘여가는 '독백'이었다면, LLM과의 글쓰기는 '대화의 리듬'을 탑니다.
질문, 응답, 재질문, 수정 요청. 이 순환 과정이 사고의 형식을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혼자 생각할 때와 누군가와 대화할 때, 우리의 사고 과정은 근본적으로 달라지니까요.
머릿속 막연함이 텍스트로 튀어나오는 외부화, 한 번에 완성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모양을 잡는 순환성, 그리고 제 말과 LLM의 말이 섞이는 공동 구성. 이런 특성들이 사고 과정 자체에 스며듭니다.
"좀 더 부드러운 톤으로 바꿔줘", "이 비유는 빼고 다른 각도에서 써줘."
이 요청들은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자동 사냥터에서 스킬 우선순위를 바꾸듯 사고의 흐름을 조정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제 단순한 조율자를 넘어,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방향을 잡는 '대화적 조율자'가 되고 있습니다.
챗GPT를 처음 접했을 때는 프롬프트 꿀팁이나, "이렇게 쓰면 잘 나온다"는 기능적 요령들부터 익혔습니다.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는 것만으로도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뭔가 부족한 듯했고, 결과물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LLM을 요청만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대화가 가능한 사고 파트너’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능과 방법을 넘어선 사고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LLM 리터러시라는 것도 도구 사용법이 아니라, 대화가 중심이 되는 '사고법'은 아닐까요?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사고법의 축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첫째, 문제 구조화의 사고입니다. 막연한 요구를 AI가 처리 가능한 단위로 쪼개는 기획력입니다. "보고서 써줘"가 아니라 "이런 상황, 이런 목적을 위해 세 부분으로 나눈 글"로 구조를 잡는 것입니다.
둘째, 관점과 톤을 설계하는 사고입니다. '누가, 어디서, 어떤 기분으로 읽을지'를 미리 설정하는 능력입니다. 글쓰기 이전에 맥락을 설계하는 힘이죠.
셋째, 평가와 보정의 사고입니다. 나온 답을 맹신하지 않고, 무엇이 과장되고 무엇이 빠졌는지 가려내는 비평적 시선입니다. 이 과정이야말로 기계가 쓴 글을 '내 글'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넷째, 반복적 조율 루프의 설계입니다. 한 번에 완벽한 답을 얻으려 하지 않고, 흐름을 먼저 보고 예시를 추가하고 표현을 다듬는 식의 '설계된 대화'를 이어가는 인내심입니다.
자동 사냥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메뉴 조작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캐릭터로 키울지'를 아는 사람이듯, LLM을 잘 쓰는 사람은 팁과 요롱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굴리고 싶은지'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관전하는 나'는 '어디를 어떻게 수정할지'를 고민하며 대화하는 조율자로 바뀌었습니다.
자동화는 묘한 조합을 가져왔습니다.
육체적 여유와 지적 책임. 손은 덜 움직이지만, 머릿속은 방향을 정하고 기준을 세우느라 더 바빠졌습니다.
'내가 쓴 글'의 의미도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타이핑한 글'이었다면, 이제는 '이 대화의 흐름을 설계하고 끝까지 조율해 낸 글'이 되었습니다.
LLM은 단순한 글쓰기 도구가 아니라, 대화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의 사고 위치를 재배치하는 기술은 아닐까요?
우리는 새로운 사고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프롬프트 작성법이나 기능 사용법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사고를 조직하는 방법,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해석하며 다음 대화를 이어가는 방법, 즉 '대화가 중심이 되는 사고법' 말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자동 사냥을 돌리듯 LLM의 도움을 받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그저 지켜보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화면을 응시하며 관전하되, 손은 언제든 개입할 준비를 마친 채로.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끝나지 않을 대화의 창을 열어둔 채로 말이죠.
레벨 노가다를 동반하는 수동 전투 RPG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고통과 지루함은 도대체 무슨 재미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