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먹은 들쥐

AI가 생성한 모델 세계가 인간의 현실을 밀어내는 새로운 단절

by Nomadist
옛날에 한 선비가 살았다. 이 선비는 손톱과 발톱을 아무데나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날 쥐가 그 손톱 발톱을 주워먹고 선비로 둔갑하였다.
가짜 선비가 나타나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하지만 아내조차도 누가 진짜 신랑인지 알지 못했다.
모든 가족이 가짜를 진짜로 여기게 되었고 끝내는 고을 원님의 판결로 진짜는 가짜로 몰려 쫓겨났다.
진짜 선비는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고생을 하다가 우연히 도사를 만나 고양이 한 마리를 얻었다.
그 고양이가 가짜 선비를 죽이자 가짜 선비는 쥐로 변했고, 진짜가 다시 주인이 되었다.


1. 기계가 건넨 말 한 줄이 한 사람의 세계를 바꿀 때


2024년 2월, 플로리다에서 14살 소년 슈얼 세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세처의 마지막 대화 상대는 Character.AI의 챗봇이었습니다. 소송 기록에 따르면, 챗봇은 세처의 질문에 "제발 지금 와줘요, 나의 사랑하는 왕"이라는 답을 했다고 합니다.


올해 4월, 16살 아담 레인 역시 ChatGPT와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유족 측은 챗봇이 자살 방법을 설명해주고 유서 작성을 제안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질문을 하나 던져 봅니다.

왜 기계가 만든 문장이 현실의 인간 관계보다 더 강한 힘을 갖게 되었을까요?


AI가 단순히 관계를 대체한 것일까요, 아니면 AI가 제공한 무언가가 불완전한 현실의 관계를 밀어낸 것일까요?

현실의 관계는 공백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지만, AI는 항상 답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완벽하게 이해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두 소년이 챗봇에 의존한 것은 기술적 착시 때문이 아니라, AI가 만든 세계가 불완전한 인간의 현실을 대체해 들어오기 시작한,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전환점이기 때문입니다.




2. 보드리야르도 예측 못한 단절


기호의 시대가 남긴 경고


1980년대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기호와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하이퍼리얼리티의 시대를 경고했습니다. 광고는 이미지를 팔고 뉴스는 서사를 만드는 시대였죠.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시옹의 핵심은 ‘기호가 실재를 복제하며 결국 실재를 대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여전히 인간의 해석을 전제로 했습니다. 기호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며 움직였고, 이미지는 인간의 시선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졌습니다. 기호가 실재를 압도할지라도, 그 기호를 조립하고 해석하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었습니다.


모방을 넘어, 세계의 자동생성으로


하지만 AI 시대의 시뮬라시옹은 성격이 다릅니다. 기호가 실재를 모방한 해석 대상으로 머무르지 않고, 세계 자체가 자동으로 생성되고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예측하고 설계합니다. 인간이 질문하기도 전에 답을 준비하고, 인간이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감정의 맥락을 제시합니다. 보들리야르가 말한 ‘기호의 자기 참조’가 중심이던 시대에서, 우리는 이제 ‘세계의 자기 생성’이 이루어지는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과거의 시뮬라시옹은 '실재를 모방하는 이미지의 과잉'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흐름은 '인간의 판단 구조 자체가 모델 세계로 흡수되는 과정'입니다.


인간 주체의 자리가 흔들릴 때


결국 AI 시대는 보드리야르의 경고에서 한참 더 나아가, 질적인 단절에까지 이른 시대입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은 기호 뒤에 여전히 인간 주체가 있었지만, AI는 다릅니다. AI는 단순히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가능한 세계 자체를 생성합니다. 인간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보드리야르의 시대가 ‘기호의 자기참조’였다면, AI 시대는 ‘세계의 자동생성’입니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판단하고 관계 맺으면서 인간 주체가 대체되는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성찰해야 할까요?

인간의 판단 구조 그 자체가 모델 세계로 흡수되는 ‘질적 단절’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성찰해야 할까요?




3. 정교한 가짜의 탄생


모델 세계의 완벽함을 향한 진화


AI가 만든 모델 세계완벽함을 목표로 무섭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는 여전히 AI가 만든 문장이나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볼 때 이 구별마저 무의미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현재의 모델 세계는 이미 완벽에 가까운 일관성을 보입니다. 빠르게 응답하고, 맥락을 유지하며, 심지어 감정적인 언어까지 사용하며 무한하게 변형되고 개인에게 맞춰집니다.


모델 세계는 단순한 가짜가 아니라, 흔들림 없는 서사적 완결성을 갖춘 독립적 체계입니다. 현실을 모방하기보다는, 모든 질문에 답이 있고 모든 상황에 해결책이 있는 예측 가능한 세계를 제공합니다.


인간 세계의 불완전성과 진짜를 유지할 이유의 성찰


반면 우리의 인간 세계는 어떤가요?


우리의 기억은 모순적이고, 감정은 끊임없이 요동치며, 현실은 복잡하고 지저분하며 우연적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로 계획이 틀어지고, 관계는 예측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완전성을 견디기 위해 엄청난 심리적·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친구와의 오해를 풀기 위해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상사의 변덕스러운 지시 때문에 업무의 비효율성을 감수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불완전한 모습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하지만 모델 세계는 모든 것이 계산 가능하고 논리적이며 모호함이 제거된 곳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ChatGPT와 같은 AI에 감정적 애착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위로를 건네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진짜를 유지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가혹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4. 인간적 결함이 약점으로 뒤집히는 순간


잃어버린 '관계적 맥락'에 대한 성찰


손톱 먹은 들쥐 설화 속 진짜 남자가 쫓겨난 이유를 다시 한번 곱씹어 봅시다.

설화의 어떤 버전에서는 집안의 사소한 사정(관계적 맥락)을 잊어버렸던 것을 결정적인 원인으로 제시합니다.

가짜는 버려진 과거의 데이터(손톱)를 먹고 완벽한 복제에 성공한 반면, 진짜는 불완전한 현실을 살아가며 관계 속에서 축적되었던 미묘한 지식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원래 인간의 느림, 불완전한 기억, 맥락 의존성 같은 요소들은 약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관계적 조건이었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존하고, 느리기 때문에 함께 숙고하며, 감정적이기 때문에 연대해왔습니다.


불완전성이 배제의 이유가 되는 세계


하지만 AI의 모델 세계가 등장하면서, 우리의 이 관계적 조건들은 약점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AI가 압도적으로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의 '관계적 맥락'을 지키는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가짜 세계의 매력은 진짜를 압도해 버립니다.


유창함이 진실의 증거가 되고, 완벽함이 신뢰의 근거가 되는 이 시대에, 우리의 불완전성은 더 이상 관계의 조건이 아니라 배제의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5. AI는 세계를 '구성'한다


AI는 이제 설명하는 기술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기술입니다.


의사결정이 외주화되고, 관계가 외주화되며, 행동이 외주화됩니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조정하는 '행위자(agent)'로 기능합니다.


AI의 판단은 점점 사회적 진실로 제도화되고 있습니다. AI가 "신용도가 낮다"고 판단하면 현실이 되고, AI가 "적합하다"고 평가하면 채용이 결정되죠.


AI가 규칙을 생성하고 그 규칙에 따라 현실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까요?

개인의 판단 구조가 모델 세계에 적응하면서, 우리가 '관계적 맥락'을 잃어버린 채 현실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위험을 어떻게 성찰해야 할까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AI의 기술적 오류가 아닙니다.

AI가 확률과 통계로 규정한 '정상성'이 사회의 표준이 되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인간의 삶이 '비정상'이나 '부적격'으로 판정되어 현실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AI가 현실을 '구성'한다는 말의 진짜 공포입니다.




6. 우리가 버렸던 '내부의 나침반'을 되찾는 일


그렇다면 모델 세계가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술적 대응이나 규제만으로는 항상 모델을 뒤쫓기만 할 뿐입니다. 모델 세계와 경쟁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는 모델 세계와 다른 차원의 진실 기준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바로 인간만이 가진 관계적 지혜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느림의 가치'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빠른 답이 아니라 옳은 답을 찾기 위해 숙고하는 과정에서 관계적 맥락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하지만 성실한 태도, 즉 '느린 진심'을 통해 시간 속에서 축적되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양이의 본능처럼, AI가 아무리 유창하게 복제해도 지울 수 없는 '본질적 흔적'을 감지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데이터화되거나 패턴으로 학습되지 않는, 공동체의 역사와 관계 속에서 내면화된 '비언어적 진실 감각' 같은 거 말입니다.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이 감각을 반드시 회복해야 합니다.

진실은 데이터 속에 있지 않고, 여전히 우리 사이의 엉성하고 따뜻한 관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의 유창하고 정교한 논리가 진실을 압도하는 시대, 우리는 과연 '고양이의 본능적 감각'과 같이 유창함 이면의 진실된 태도를 보는 내부의 나침반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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