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난생 처음으로 코딩을 접했습니다. 자연어처리와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호기심에서요. 문과지만 자연어처리 분야에 의외로 어학 전공자들이 많은 걸 보고, 내 전공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있겠다 판단했죠.
독학으로 파이썬을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정말 체계적인 지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 찾아가면서 뭔지도 모르는 거 고작 따라하면서 오류가 발생하면 또 그거 찾느라 한 세월, 개념을 모르니까 뭔가 조금만 바뀌어도 적용 방법 찾느라 한 세월이었죠. 개발 환경 제대로 셋팅하는 데만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 같네요.
정말 기초적인 것만 배우고, 중고 물건 시세에 관심이 많아서 크롤링으로 중고 물건 정보와 가격 정보 가져 오는 걸 본격적으로 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몇날 며칠 검색해서 상황에 맞는 코드 찾아서 짜깁기 하는 수준으로 작성했지만 코드가 동작하는 순간의 성취감을 느끼며 나름대로 기능들을 고도화해 나갔습니다.
이후에 폴더 안에 파일 정리나 엑셀 시트 여러 장 합치기 같이 업무 효율화에도 시도하고, 간단한 UI 짜서 패키징해서 팀원들한테 공유도 했습니다. langchain하고 streamlit도 조금 배워서 장난감 수준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고요.
정말로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짜깁기로 구현하는 수준이라 체계도 없고, 간결함이나 명확함과는 거리가 멀 겁니다.
그렇게 학습하면서 완만한 성장 곡선을 그리던 상황은 올해 1월에 정점을 끝으로...
이제 웬만한 코딩은 챗GPT한테 맡깁니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제가 몇 날 며칠 꼬박 고생해서 짠 코드를 불과 몇 초만에 뱉어내는 편리함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네요. 아마 훨씬 더 체계적이고 간결하고 안정적이기까지 하겠죠.
물론 이 녀석도 당연히 틀릴 때가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필요로 하는 단순한 개발에서는 아직 큰 문제가 없었거든요.
가끔은 그 어설프던 (불과 1년 전) 시절이 그립습니다. 코드 한 줄 붙잡고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지?’ 하고 끈질기게 파고들던 그 과정, 그리고 간신히 돌아가게 만든 뒤 느낀 성취감. 지금은 프롬프트 몇 줄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지만, 그때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손끝에 남았던 묵직한 감각은 다시 온전히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술의 편리함을 알아버린 이상, 굳이 그 불편한 길을 다시 가고자 하는 마음은 쉽게 들지 않네요. 이렇게 빨리 변하는 기술을 구경만 할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기술의 힘을 빌려야 하고요. 한편으론 그 서툴렀던 노력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일종의 잃어버린 풍경처럼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제는 더 큰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더 큰 그림을 그리거나 문제의 본질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찾아 가며 한 줄 한 줄의 의미를 새기던 과정에 담긴 ‘불편함을 통한 배움’의 기억은, 이제 편리함의 뒤편에서 희미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쉽다면 아쉬운 거고, 이런 변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요.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우리는 그 편리함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길 한편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남긴 작고 어설펐던 흔적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의미 있는 기억이고, 앞으로도 제 성장 궤적 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