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상상하던 일을 현실로 만들다.

불금 내가 만들어 간다.

by 노연석

금요일은 퇴근길 전쟁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일찍 회사 문을 나섰다.


예전에는 생각하지도 실행을 하지도 않았지만 불금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은 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도 나보다 더 바쁜 우리 집 학생들,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끽하고 있는 아내도 불금에 나와 함께 할 수 없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내가 먹을 저녁상을 차린다.

아내가 차려주던 밥상이 그립기도 하지만 현실은 받아 드려야 한다.


집 도착, 작은 아이는 이미 학원에 갔고 큰아이도 학원에 가야 해서 이른 저녁을 먹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홀로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


월, 화, 수, 목요일까지는 대충 있는 반찬으로 해결했지만 금요일 저녁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요리를 하고 살던 내가 아니라 마땅히 해 먹을 음식은 없다.


뭘 해야할지 모르는 나는 무작정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티브이에서 하던 냉장고를 부탁해... 가 생각이 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냉동실에 꽁꽁 얼어 얼마 전부터 눈에 거슬리는 양념이 되어 있는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돼지고기인지? 닭고기인지? 오리고기인지? 알 수가 없지만

난 개의치 않고 바로 해동을 시작하고

냉장고에서 파, 양파, 마늘, 고추... 등등 꺼내어 썰기 시작했다.


해동을 하고 난 그 덩어리는 아직 정체를 알 수가 없다 프라이 팬에 집어넣고 불을 지피고 아직 덜 해동된 덩어리를 녹이고 익혀간다.


요즘 늘어가는 것이 칼질이다.

정말 많이 늘었다.

옛날 옛적에 군에 있을 때 좀 해 보긴 했지만 요즘은 내가 칼을 들고 무언가 썰고 있으면 제법 요리하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도 그런 기분으로 칼을 들고 재료들을 썰고 있다.


덩어리의 정체는 양념된 삼 겸 살이었다.

양념된 것을 사 온 것인지? 아니면 아내가 양념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인지? 그리고 언제 넣어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익어가는 덩어리 속으로 썰어 놓은 야채들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고추장 한 스푼과 다진 마늘을 넣고 익어가는 덩어리의 맛을 상상하며 기다리며 밥상을 차린다.


밥통속의 밥은 내가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해 놓은 밥인데... 밥을 먹은 사람이 없나 보다. 꽤 많이 남아있다.


이쯤 되니 시간도 많이 지나고 배가 고프다.

한 공기 밥을 가득 담아 식탁에 올려놓고 공을 드린 덩어리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나란히 올려 두었다.

무언가 허전하다. 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다. 사러 갈 수도 없고...


냉장고를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아, 맞다. 얼마 전부터 눈에 거슬리던 또 하나 배추. 조금 더 있으면 음쓰 통으로 가야 한다.

노랗게 물들어 며칠 전부터 나를 꺼내 가세요라고 나를 유혹하더니 오늘 임자를 만났다.

꿩 대신 닭이라고 상추 대신 배추다.


여기까지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 혼자 보내는 불금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

나의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내가 만들 수도 없는 그것, 냉장고에서 나를 데려가 달라고 아우성치는 아이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캔을 꺼내어 식탁에 나란히 올려 두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이쯤 되면 사진 한 장 찍지 않을 수 없다.

뭐 특별한 건 없지만 나를 위한 만찬은 준비가 완료되었다.


혼밥, 혼술인데 이렇게 맛이 있을 수 있나.

혼자 먹기 아까워, 저녁식사를 이미 끝낸 큰아이에게 와서 조금 먹어 보라고 이야기 하지만 당연히 더 먹을 리가 없다.


냉장고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배추는 아직 신선함과 고소함을 유지하고 있다.

양념된 고기이지만 배추 잎 위에 고기 한점, 쌈장, 밥 한 숟가락과 고추냉이를 올려 입속에 넣자 혀끝에 느껴지는 그 맛은 일주일의 고되었던 시간들을 모두 있게 해 준다.


뭐지? 뭔가 허전하다. 빠진 게 있다 혼자 있는 이 공간의 적막함을 깨워 줄 음악. 유튜브 실행하고 내가 즐겨 듣는 비긴 어게인을 틀어 놓았다.


혼자 먹는데 벌써 밥 한 공기가 뚝딱이다.

분위가 탓인가?

평소 같으면 더 먹지 않지만 밥 한 숟가락을 더 펐다. 오랜만의 내 몸이 내 배가 호강을 하는 기분이다.

소주 한 병을 다 비울 때쯤 이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이렇게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하는 이 시간이 행복한 건 뭘까? 이제 혼자 하는 시간과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인가?


즐겁고 행복한 금요일 저녁,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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