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공감에 반대하다.

공감, Empathy, 共感

by 노연석

사회적 공감, 사람과 사람 간의 공감이 아닌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공감.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공감에 반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채 잘못된 공감을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은 누구도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성추행으로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박원순 시장의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공감하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우리는 많은 공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내면의 상황을 모른 채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네덜란드 출신, 린다 기자는 아프리카 반군을 찾아가 인터뷰를 한적이 있는데, 왜 당신들의 아이들의 팔, 다리를 자르는 일을 자행하는가라고 물었을때 놀랍게도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불쌍해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와주고 돈도 주고, 자원과 음식도 나워 주니까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모르고 찾아가 도와 주고 있는 것이죠.


인도, 아프리카 등 저 개발국가의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어 지갑을 열게 되죠. 그런데 그 아이들을 도와 줘서는 않된다고 합니다. 성인 범죄 조직에 예속된 아이들일 가능성이 높아 결국 그쪽으로 돈이 넘어 간다는 것이죠.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후원을 하거나 도와주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그들에 직접적인 물질적 지원을 하는 것 보다 믿을 만한 단체를 찾아 기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 것입니다.


요즘은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껌팔이 소년, 소녀가 보이지 않는데, 우리나라도 예전에 일명 앵벌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던 시절있었는데 경험해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저개발 국가에게 도움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불쌍한 아이들에게 포커싱 되어 그 뒤에 있는 그림자는 보지 못한 채 무자비하고 잔인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경악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의도적인 공감 끌어내기에 휘둘려 공감하지 말아야 할 것에 공감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스 해안에사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이가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을 기억 하시죠.

그 사진을 각종 신문과 단체들에서 활용을 하면서 후원금이 일시적으로 급 상승하는 현상이 일어 났다고 합니다. 각종 후원단체, 모금 단체들이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이 사진을 사용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모인 후원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 살아 갈 수 있게 해 줬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런 사진을 이용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진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코로나 19를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이 있다고 가정해 보시죠.

이 백신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대려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실제로 살려 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백신이 완벽할 수 없으니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자가 여러 명 나왔다고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다고 가정할때 특정 단체나 관련 된 사람들이 그 백신은 사람을 죽이는 백신이니 처방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청원과 시위를 하여 그 백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내 주위에서 이런 일이 발생을 했으니 나도 그 백신을 맞게 되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백신 사용 반대에 공감하고 동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백신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데 소수의 부작용으로 인한 문제때문에 백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감염은 더 확산이 되고 결국 백신을 중단한 덕분에 바이러스에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인류가 멸망을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감과 다르게 공감을 이용한 올바르지 않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대를 희생하는 작은 것에 공감하는 일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위 이야기들은 “공감에 반대한다”의 저자인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폴 블룸(PAUL BLOOM)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을 접하면서 내가 단순하게 생각하던 공감의 다른면을 접하면서 공감이라고 해서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너무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나도 모르게 공감해 주지 말아야 할 것에 공감을 한적은 없었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감, 받아 들여야 할 것도 있지만 반대해야 할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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