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서랍 속 묻어 두었던 이야기
9월에 떠나 보내기 위해 꺼낸다.
서랍 속에서 묻어 두었던 한 달 전 이야기
속 시원하게 그냥 발행을 해 버릴 걸, 서랍을 열때마다 눈에 가시같이 걸리적 거리던 이 글을 그냥 계속 두고 볼 수 많은 없었고 꺼내어 볼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슬픔이 밀려와 이젠 서랍 속에서 꺼내어 보내려 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20년이 되었다.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아버지께 난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었다.
1999년 IMF 구제금융 사태로 나라가 어려운 시절, 아버지는 내 혼사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었고 아내와 사귄 지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결혼을 할 때가 되기도 했다. 그해 여름 양가 부모님들 간 상견례를 하고 이듬해 11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까지도 난 아버지가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몰랐다. 결혼식 당일 큰아버지께서 아버지가 많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결혼식 날이기도 하고 신경 쓸 것이 많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다.
아버지는 간암 말기셨다.
이듬해 초 아버지의 병세가 더 나빠졌다. 시골에 있는 종합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하여 도시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 보았지만 넘쳐나는 환자들로 병실에 입원도 해 보지 못하고 응급실에서 2박 3일을 있다가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야기만 듣고 나와야 했다.
"그만 됐다. 집에 가자."
아버지는 병원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준비를 하시는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아버지의 의사를 존중해 드리기로 했다. 의사의 말대로 아버지는 정확하게 6개월을 사시고 아니 살아있었다기보다 죽음 앞에 한없이 나약한 모습으로 연명하시다 가셨다. 한 평생 그렇게 약해 보이는 모습을 보인적이 없었는데 본인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시간들, 미련은 많았겠지만 단념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만 생각하면 상황을 더 좋게 만들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은 아무짝에 쓸모 없는 것이었고 그저 아쉬움과 미련만 남았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올해 제삿날은 아버지를 뵙지 못할 것 같습니다. 조금 일찍 만나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큰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드셨는지 많이 안 좋으셔서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가시려고 하시네요. 아버지가 떠난 후로 큰아버지는 우리 식구들에게 존재만으로도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고 계셨었는데 많이 아프시다고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지난해 벌초하던 날 급하게 병원으로 가셨다가 뚜렷한 병명을 못 찾아 아플 때마다 병원만 왔다 갔다 하며 진통제만 맞으시며 근 1년을 버티셨습니다. 수술 후 경과가 좋아지지 않고 악화되셨지만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에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큰집 작은형에게 연락을 망설임 끝에 연락을 했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미루면 않될 것 같았습니다.
큰아버지의 상태를 물었더니 그냥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네요. 큰아버지도 가족들도 모두 마음을 비우고 고통이 없어지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큰아버지도 아버지가 떠나셨던 그 병원에 계셨는데 다른 병원에 계실때도 한가닥의 희망이라도 건져보기 위해 또 다른 병원들을 가 볼 것을 자식들을 권했지만 아버지가 이야기 하셨던 것 처럼
"그만 됐다. 집에 가자."
고향에 있는 병원으로 돌아가시겠다고 이미 마음을 정리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가시던 그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마치 데자뷰인 듯 한 이 상황에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큰아버지 병문안을 갔었습니다. 식사를 하지 못하셔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고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만큼 마르고 여위셨는데 생전 병상에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습니다.
병간호를 하고 계신 큰어머니도 얼굴이 반쪽이 되어 더 늙어가고 계시니 더 마음이 아프더군요. 부디 조금이라도 식사를 하시고 쾌유를 하셨으면 좋겠는데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시니 걱정입니다.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해 주실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시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빌어 봅니다.
큰아버지를 뵙고 돌아온 지 일주일 후 음력 6월 19일, 생각보다 빠르게 작은 형에게 연락이 왔다.
마음 속으로 아 올께 왔구나. 정말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가셨다 " 라는 한마디를 하고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이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내가 말을 이어갔다.
"알았어 형, 금방 올라 갈께"
생각보다 빠른 임종 소식에 나도 놀랐다. 몸 상태가 안 좋으셨어도 정신은 또렷 하셨기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는 음력 6월 20일이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차이, 올해는 아버지의 제삿상을 차려 드리지 못할 것을 예상을 했지만 너무도 빠르게 현실이 되었고 상중에 아버지의 기일은 잊혀진 채 지나갔다.
한 달 전 이야기.
지난 8월은 저승사자는 너무도 잔인하게 일주일 간격으로 작은 이모, 큰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모시고 사라졌다.
그래서 힘들었던 8월. 8월은 이제 가고 없는데 서랍속에 8월의 기억들이 붙잡혀 있어 놓아 주려고 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해 주지만 그리움을 채워주지는 못 한다. 붙잡고 있는 만큼 그리움만 더해가고 채워주지 못한다.
이제 설, 추석에나 안부인사 드릴수 있을 것 같네요. 아직 49재가 지나지 않아 이승 어딘가에서 머물고 계시겠지만 49재 이후에 좋은 곳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계속 되기를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