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지루한 직장생활에서 오는 단비 같은 선물
3년 전쯤, 파견 나갔던 부서에서 부서원들 간에 책을 선물하는 마니또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좋지 않은 기억 하나, 그리고 내게 힘이 되어 준 아주 기분 좋은 기억 하나를 갖었던 때가 문뜩 떠올랐다.
:: 좋지 않은 기억 하나
내 마니또였던 김 과장은 지금은 퇴사를 하고 없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거의 읽지 않아 어떤 책을 선물해야 할까 고민해야 했다. 마음 편하게 실패없는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들 중에 골라 볼까라고 생각해 봤지만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을 선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가뭄에 콩 나듯 읽었던 책 중 하나를 골라 보기로 했다.
“작은 선술집, 오술차의 기적”이란 책이다.
오술차는 "오천 원의 술 차림"을 줄여서 만든 말이고 술과 안주를 합쳐 1만 원이 넘지 않은 상차림을 목표가 이 책을 쓴 작가이자 사장이며 오술차 집을 시작하고 성장시켜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내가 이 책을 김 과장에게 권한 것은 작은 선술집이지만 그 술집만의 경영 노하우가 너무나 맘에 들었고 혹시 나도 회사를 차리거나 이런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면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마음을 가졌었는데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회사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혁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다른 시각의 혁신을 보여 주고 싶었다.
작은 가게이지만 끝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혁신을 시도한다. 알바에게도 직원에게도 사장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해 주며 일한 만큼 보상을 해 준다. 무엇보다 이 가게를 찾는 소통과 공감을 통해 단골손님을 만들고 그들을 위한 배려를 통해 공생 공존하는 그런 공간이 되는 선술집이다.
주관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회사가 잘되려면 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당연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윤을 내지 못하면 생존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윤을 내는데 기여하는 것은 사람이다. 적정한 보상, 문화, 복지 등이 마땅히 제공되어야 한다. 다만 직원들도 보상에 맞은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Win-Win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가게의 위치가 사당에 있어 일부러 찾아가기는 애매했다. 우연히 기회가 생겨 2차로 방문 했다. 2차여서 일수도 있지만 막상 가보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안주를 만나 볼 수 있었다. 함정은 1만 원 상차림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 단점은 아마도 모인 사람들이 모두 주당이여서 일수도 있다. 혼술을 한다면 적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마니또였던 김 과장은 주변에 친한 동료들이 별로 없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일을하고 내가 도와 줄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그리고 늘 겉돌던 사람이라 가까워 질 기회는 없었다. 김 과장은 늘 혼자서 일을 싸매고 전정긍긍, 끙끙 거리며 살고 있었고 평판도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김 과장에게 자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자극을 받아 보라는 생각에 권해 주었는데, 결국 김 과장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퇴사를 하게 되어 안타까웠다.
그 친구를 퇴사로 내몬 건 무관심과 필요한 지원을 해 주지 않은 주변 동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점에 김 과장에게 진짜로 필요한 책을 선물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가진 문제는 회사 일에 대한 도움, 혁신 등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공감해 주거나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책이 더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본다.
:: 기분좋은 기억 하나
궁금했다. 나에게 책을 줄 마니또는 누구일까? 또, 어떤 책을 선물 받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항상 머릿속에 생각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라 잊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해 보니 책상 위에 책 한 권과 메모지가 놓여 있다.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메모지를 열어 보고 한참을 들여다 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가슴 한편이 찡해오는 것을 느끼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선배님, 선배님은 제가 지금껏 회사 생활을 해오는 동안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라는 문구에 내 시선은 한참을 멈춰 있었고 "인생,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이렇게 나를 믿고 따라주는 후배가 있다는 것에 나는 그날 너무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기회에 닿지 못하면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 분명 나에게도 그런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이야기를 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그게 뭐라고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야기를 얼굴을 대면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 낯간지럽기도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앞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다. 고마운 선배, 후배 동료가 있다면 직접 이야기를 하지 못하더라도 쪽지나 메일 등을 통해 전달해 보면 어떨까.
늘 후배들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나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선배이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내가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 란 생각 때문에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가진 경험을 필요로 할 때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려 한다. 내가 주는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은 후배들이 결정할 몫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IQ, EQ 등등 이런 것 좋지가 못하다. 가방끈이 길지도 못하고 가정 형편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거기에 A형이라 매우 소심하기까지 하다. 학교 생활에서도 늘 하위권을 맴돌았었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부족한 능력으로 많은 고난을 격어야 했었다. 나는 나름 운이 좋아 좋은 직장을 얻었고 지금 내 위치가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고난의 시간들을 달려 오면서 나름 잘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누구나가 겪는 사회적 시련들을 겪고 지나온 사람일 뿐 대단하지 않으며 부족한게 많은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후배들에게도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성과를 보여 줄 때 기분이 좋다. 내가 무언가를 성취할 때보다 더 기분이 좋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이제 내 도움은 필요 없이 잘 생활하겠네”라는 생각하곤 했다. 그리 잘난 사람이 아니다 보니 회사에서 요구하는 만큼의 능력을 발휘를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저 내가 가진 능력치 안에서 나는 살아갈 뿐이다. 그런 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이제 오히려 선배들이 아닌 후배들이었다. 때로는 내가 생각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알아봐 주고 챙겨 주기도 했다.
내 회사생활의 최고의 순간들은 여전히 후배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오늘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은 후배들을 떠나와 있지만 후배들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게 살려고 한다. 내가 가진 것 싸들고 있어 봐야 아무짝에 쓸모없을 테니까.
그날 후배가 메모에 적어 준 그 짧은 문장은 지루하고 따분한 내 직장생활에 단비였다. 내가 더 힘들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구나. 지치고 힘들고 일에 쩌들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볼품없는 모습들을 후배들에게 보여 주서는 않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마음을 다 잡아 보는 그런 기회가 되었다.
<커버사진 : 마니또에게 선물 받았던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표지 일부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