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주고받기 위한 관계

관계에도 목적이 있다.

by 노연석

오늘은 "도움을 주고받기 위한 관계"란 주제를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계속 반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공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내가 먼저 시작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관계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으며 평행선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주제는 양보라고 줄여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양보를 하면 내가 불편해지고 크던 작던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양보를 유도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양보를 해도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고 영 찝찝하다면 굳이 양보를 하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봐도 내가 양보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흔쾌히 양보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순간의 고집으로 더 힘든 삶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욕심, 욕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신 조차도 욕심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양보를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상대방보다 한 단계 앞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는 여유를 가지고 살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관계에서는 이 양보가 양쪽에서 상호 작용이 되어야 하고 내가 받은 것이 있으면 보답을 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여러 번 내가 호의를 베풀었는데 상대방은 그에 상응하는 답을 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관계의 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준 것들에 대한 보상 심리에서 시작하고, 기대하는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 비로소 상대방에 대한 믿음, 신념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했던 데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보를 해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은 보상을 받겠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할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상대가 반응이 없을때 어쩌면 잠시 눈치를 채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럴만한 여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결코 당신이 베푼 정성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적절한 시기에 당신에게 받은 양보와 관심에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좋은 관계의 당신이 있어서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반대로 나 자신도 상대방이 꾸준히 베푸는 정성과 관심에 반응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이 나를 오해하는 일이 생기고 관계의 거리가 멀어져 오히려 잘 알지 못했던 그 이전보다 더 평행선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나도 잘해 줄 수밖에 없고 나에게 늘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당연히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나도 상대방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어떤 선택의 시점에는 양보를 해 보기도 하고 어떤 때 망설임의 순간에 내가 먼저 나서서 도전해 보기도 함으로써 오히려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세상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협력의 관계로 살아갑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사람들을 주변에 앉혀 둘리가 없습니다. 직장생활, 사회생활 속 주변인들 중 나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이 법칙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는 있지만 아마도 그렇다면 오래 살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기뻐할 줄도 슬퍼할 줄도 행복해할 줄도 모르는 상태로 무미건조한 상태로 삶의 다양한 맛을 느끼지 못 한채 우울하게 살다 빨리 갈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의식 중에 항상 많은 자각을 하며 살아가는데 옷은 어떻게 입을지, 어떤 일이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부장님의 오늘의 기분을 살피기도 하고 동료가 좋지 않을 일을 당했을 때 공감을 해주기도 하며 서로서로 그렇게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살아가면서 삶을 좀 더 의미 있는 삶으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합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신경 쓸 일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하나만 잘 챙기면 되지만 삶이 재미가 없지 않을까요? 요즘은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 주의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혼자 사는 것이 편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회적 이슈들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말 혼자 사는 게 좋아서 독신주의가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고, 받는 것을 포기하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내가 도움이나 지원을 받으려면 상대방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반드시 해 주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도 일방적으로 기회를 계속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을 알아차려야 하고 그에 대한 답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호 소통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관계의 거리가 좁혀지고 좋은 관계로 발전합니다.

소통이 없이 좋은 관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양보 없이 좋은 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답이 늦어져도 조금은 기다릴 줄 알고 상대방을 이해할 줄 알아야 좋은 관계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