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네모 그리고 네모

나와 하루 종일 함께하는 네모

by 노연석

하루 중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컴퓨터 모니터입니다.

요즘은 직장인이라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스마트폰보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더 많이 볼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이 그다음이겠네요.


아침 5시에 일어나 어둠 속에서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더듬어 찾아내어 누르고 나면 네모난 세상 속으로의 여행이 세상이 시작됩니다.

매일 처음 만나는 세상, 브런치. 바탕화면의 브라우저를 마우스로 클릭하여 네모난 브라우저를 켜고 브런치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브런치도 네모 구성이 참 많습니다. 네모난 세상이네요.

브런치에 노출되는 대부분의 콘텐츠들도 네모 모양으로 출력됩니다. 브런치 홈에 나타나는 브런치 북도, 콘텐츠를 담은 사진들도 모두 네모 안에 네모 또 네모 안에 그리고 네모 위에 아래 담겨 있습니다. 직사각형, 정사각형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브런치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네이버도 다음도 모두 네모난 세상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 네모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구글은 네모가 그리 많지 않고 네모를 자세히 보면 약간 모서리가 둥근 네모를 많이 사용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의 네모는 모두 각진 네모가 많은 편입니다.

검색 창도 검색 후 보여주는 결과도 모두 각진 네모 속에 자리 잡고 클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TV도, 모니터도, 스마트폰도, 극장의 스크린도, 키오스크 화면도 세상의 모든 액정 표시 장치가 네모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모니터 창 너머에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들이 모두 네모로 만들어지다 보니 콘텐츠들도 자연스럽게 네모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네모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 회사에서 보고 자료를 만들 때 보고서에는 항상 네모가 가득한 표가 빠지는 적이 거의 없습니다.

문자로만 된 보고서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표 안에 잘 정리해서 가독성 있게 만들어 붙여 넣습니다. 이게 네모 안으로 보는 것이 너무 익숙해진 탓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끔 콘퍼런스나 세미나를 가게 되면 한국 기업과 외국계열의 기업들의 자료를 보면 역시 한국 기업의 자료에 네모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모뿐만 아니라 네모, 세모, 동그라미 등 다채롭게 사용되지만 외국계 기업들의 자료를 보면 이미지 또는 텍스트 위주로 이루어진 것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지는 한국사람은 한국 환경에 맞게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합니다.

네모 칸에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조급한 성격 때문이 빨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 된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침시간 브런치에 몇 자 적다 보면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로 향해야 합니다.

집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사각형입니다. 아, 이런 네모난 세상 속에서 살고 있구나를 다시 한번 실감해 봅니다. 아파트도, 상가 건물도, 학교도 네모 네모 네모 내요. 네모 모양의 건물들에 네모난 창들이 가득합니다.

제가 도대체 네모를 몇 번째 쓰고 있는지 모를 만큼 네모 세상입니다. 갑자기 어지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회사로 출근하는 길 인도에 온통 네모난 블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네모난 블록들을 밟고 네모난 버스를 타러 갑니다.

이쯤 네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상이 마치 레고 블록으로 만들어 낸 조합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구는 둥근데 그 위에 있는 많은 것들이 네모입니다.


네모가 둥근 지구 위에 가장 안정감 있는 모양이겠죠. 세상에 만들어지는 많은 것들이 그래서 네모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내가 초등학생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창피해지는 이 순간 두드리고 있는 키보드 자판도 모두 네모로 가득 차 있네요. 가끔 둥근 모양의 키보드 자판이 있기는 합니다만 많이 사용하지는 않죠. 네모가 대세입니다.

그나마, 마우스는 둥글게 생겨서 다행입니다. 마우스가 사각형으로 만들어졌다면 사용하기 너무 불편해서 이렇게 사랑받는 도구로 자리 잡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우리는 네모를 떠나 자연으로의 여행을 갑니다. 산, 바다, 강과 같은 자연과 만날 때 우리는 네모난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는 네모난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모보다 더 안정감 있어 우리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고 힐링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만 네모가 아니라 둥글게 살아가지 못하는 네모 같은 각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으로의 휴식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둥글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엔 다행히 네모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입마저 네모 모양 마스크로 가리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니...

네모 생각만 하고 있었더니 정말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집니다. 안정감 있는 네모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거짓인 것 같기도 하고 자연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오늘은 재택근무이기도 하고 너무 추워서 집에서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바깥 기온이 영하 12도입니다.


오늘도 네모난 세상에서 네모난 모니터의 창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네모난 문서를 주고받는 네모 네 모 한 하루가 되겠지만 마음만은 둥근 하루를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화이트의 네모의 꿈이 생각나는 아침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AErVZ_d_VRd7hEkJeoZQQg / 짱구맹구


2020년 마지막날의 브런치. 네모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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