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가는 바람일 뿐

마음 가짐에 달렸다.

by 노연석

유난히 차갑고 세찬 바람이 내 몸을 휘감고 스쳐 지나쳐 간다. 나도 모르게 획~ 돌아서며 바람에 피하다 넘어질 뻔했다. 바람을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닌데 그냥 지나쳐가게 두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피하려고 막아보려는 행동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난 9월 나는 새로운 구성원이 있는 곳에 합류를 했다. 지난 3개월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고 지난 연말엔 예년과 다르게 제대로 쉴 틈도 없이 일이 몰아쳤다.


요즘 조금씩 생각이 드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이제 나를 대하는 태도가 처음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신기하게도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난 이곳에 오면서 정말 조용히 살기로 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라도 나보다 먼저 이 일을 해온 사람들이기에 나는 그들을 마음속으로는 선배라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로 했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 끝에 나는 탈없이 자연스러운 퇴사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일을 많아져도 불편함이 있어도 개의치 아니하고 겸허히 받아들여 본다. 이쯤 되니 단련이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어떤 반응에도 난 오히려 마음을 더 가라 앉히고 차분해 지려 노력한다. 그리고 행여 나에게 불만이 있는 투로 말을 하더라도 그냥 상대방을 인정해 준다. 그러면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혹여 서운함이 남아 있을까? 오래가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면 일을 잘 마무리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상대방이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상대가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게 호응을 해 준다.




아침 출근 후 컴퓨터를 켜놓고 업무 준비를 하는데 뒤쪽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갑자기 요란해진다. 3개월 정도 생활을 하다 보니 저 키보드 소리가 저렇게 크게 나는 것은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매우 화가 나 있다는 이야기다. 화를 푸는 방법을 키보드를 강하게 두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본인도 모르게 그런 것인지? 키보드를 조용한 것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 겉만 보고 정말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을 요즘에 와서야 실감을 한다. 표정도 말투도 언제나 선해 보이던 사람이 가끔 짜증을 낼 때 보면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난 그런 상황에 개의치 않는다. 혹 나에게 불똥이 튀더라도 같이 화를 내지 않으면 된다. 물론 나에게 화를 낼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또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고 있다 보면 과거에 나를 보는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해댔었던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겹쳐진다.

어찌 되었건 짬밥이야 내가 많이 먹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신입사원과 다름없다. 신입사원보다 적응의 속도는 빠르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나의 마음 가짐도 신입사원이다.


키보드를 시끄럽게 두드리던 그분은 내 밑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가 일을 잘 못 처리한다고 화를 내고 있었지만 나 들으라는 듯하는 행동에 나는 알아차려 주고 화를 유발한 친구에게는 내가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 말하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나도 할 말은 많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하면 안 된다. 좀 더 그 상황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생각을 해 봤는데 아니다 싶으면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짜서 들어가야 한다. 그냥 좋지 않은 감정만을 들고 출전을 한다면 100전 100패가 되고 만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그냥 그 순간 그 사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고 작전을 짜는 일들도 피곤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존경심도 생기고 우정도 생기며 때로는 미워하고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 일어난다. 세상에 늘 좋은 사람들만 있다면 좋겠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은 내가 정의해 버린 지극히 주관적인 모순의 결정체 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좋고 나쁨의 기준을 내가 정의하고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런 기준의 정의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순간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의 장단에 맞춰 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 상황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며 바람처럼 지나가는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바람에 맞서 싸우려는 것은 나를 피곤하게 만들며 나에게 스트레스라는 선물만 안겨 줄 뿐이다.


이런 상황들을 피해 가는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머리끝까지 올라온 화를 참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순간에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공감해 주고 때론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주는 일들을 반복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런 상황들이 만들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바람이 불어오는 상황에 그 자리에서 해결책을 마련할 필요도 둘러댈 필요도 없다. 불어온 바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조용해지면 그때 다시 대화로 다가가면 된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좋은 일, 나쁜 일, 힘든 일, 괴로운 일들 모두 내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그냥 지나쳐가는 찰나에 불과하다.

살다가 그런 순간들이 다가오면 흘러가는 강물에 종이배를 띄워 흘려보내듯이 그냥 흘려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떠내려가는 배를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주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세상일을 소극적으로 대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불어는 바람에 내 몸을 맡기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부작용을 낳지 않는다는 생각 해 본다.


<사진출처 : 검은돌의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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