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구 선수들의 학폭에 관련 기사들이 많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 봤을 것 같은데, 그땐 나도 이런 상황들이 커다란 이슈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상상도 하기 실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참지 못할 것 같기는 하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난 친구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동네 선배를 만났다. 어렸을 땐 아무런 격이 없이 지내던 형이었는데,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소위 말하는 삥을 뜯기 시작했다.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돈은 없다 보니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여 용돈을 타내는 방법뿐이었다.
학교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이나 학용품을 사야 한다는 핑계로 어머니에게 돈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폭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 선배가 여러 날 전에 돈을 준비할 것을 이야기했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어머니에게 용돈을 타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배는 우리가 돈이 없다고 하자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 우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몽둥이 같은 것으로 우리의 엉덩이를 때리더니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나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얼굴에 주먹질을 해댔다.
정말 그 순간 별이 번적하고, 하루 종일 턱이 얼얼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는 다시 우리에게 돈을 언제까지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사라졌고 우리는 망연자실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간 친구의 얼굴이 엄청 부어올랐었나 보다. 친구 부모님이 보기에 누군가와 싸워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은 터라 의심을 하고 계속 캐묻기 시작했고 친구는 할 수 없이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친구의 어머니가 찾아오셨고 나에게도 확인을 하신 후 부모님 들은 그 선배의 집으로 찾아가 이 상황을 전달했고 그날 이후로 우리는 폭력에서 벗어 날 수 있었지만 한 동네 사는 시골마을에서 우리는 그 선배를 항상 피해 다녀야 했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또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면서 말이다.
혹시, 폭력에 휘둘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보복이 두려워 그 상태를 지속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고 해결이 되지 않을 뿐이다.
낯선 땅에서의 고교 생활의 시작 순조롭지 못했다.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로 올라가 1학년 내내 학폭에 현장에서 벌벌 떨어야 했었다. 아래 이야기는 그중 하나 일뿐, 타지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은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했었다.
3월 학기가 시작되고,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선배인지, 불량서클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자리에서 아무도 이동을 하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점심시간을 모두 소비하며 괴롭힘을 지속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학교는 사실 공부와는 담을 쌓은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각종 밴드와 같은 서클이 많았는데 그 서클들이 돌아가면서 찾아와 자신들을 위한 인재를 뽑기 위해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갔었다.
학교에서 급식을 하던 시절이 아닌 시절, 도시락을 쌓아서 다닐 때이고 교실에서 도시락을 까먹던 그런 시절이다. 그런데, 점심시간마다 찾아오는 불청객들로 인해 3월 한 달 내내 점심을 먹을 수가 없었다.
행여나 그들에게 불만을 표한 친구들은 조용한 곳으로 끌려가 폭력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면서 점심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도시락은 그대로 집으로 다시 배달될 수밖에 없었고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어머니도 이상하게 생각을 했고 결국 학교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는 동네에 사는 같은 학교 상급반 형의 어머님을 찾아가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나 보다.
다음날, 학교에서의 점심시간은 다른 날과 별 다를 바가 없이 점심을 먹는 것은 포기하고 있었다. 당연히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를 부른 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그들이 나를 왜 부르는 것일까? 란 생각을 하며 누가 부르고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3학년 동네 형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에게 도시락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고 그 형을 따라서 교실이 아닌 사무실 같은 곳으로 따라갔다.
그곳은 매년 개최되는 기능 경진대회를 준비하는 실습실이었고 그 형은 기능 경진대회에 나가는 선수로 학업과 대회 준비를 병행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오전 수업 후 오후 시간은 실습실에서 체육선수들과 같이 실력을 갈고닦는 활동을 했었다.
나를 불러 점심식사를 할 수 있게 한 곳은 그런 곳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가고 나서야 정확하게 알게 되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점심시간에 교실을 피해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3개월쯤 지났을까? 그제야 교실에서 정상적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위해 챙겨 주던 그 형은 지금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 세상 사람 아닌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그때 내가 고맙다는 한마디라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덕분에 나름 열심히 살아서 그 형과 같은 길을 걸었고 어쩌면 그 형은 나에게 멘토가 되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해 준 본보기가 되어 주었었는데... 고맙다는 말을 한마디 못 했었다.
중1, 어느 여름날 정말 못 볼 관경을 보고야 말았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그리고 선풍기도 변변치 않았던 여름날 그날도 창문과 앞뒤 문 모두 열려 있었다. 수업에 집중을 하고 있을 때였다.
교실 밖에서 필드하키 선수 중 키가 거의 2m에 가까운 골키퍼가 바닥에 몸이 눕혀져 있었고, 그가 쓰고 있는 헬멧 앞으로 필드하키 스틱이 넣어져 마구 휘둘리는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필드하키 골키퍼 헬멧그 헬멧은 필드하키 공으로부터의 충격을 이겨낼 수 있는 철로 된 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격자 사이로 필드하키 스틱은 들어갈 정도였다.
바닥에 누워있는 그 친구는 나와 같은 1학년 친구였다. 2004년까지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필드하키 골키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곤 했는데 그에게 아픈 과거이지만 묻고 사는지 모른다.
선수들은 늘 선생님이나 선배들의 학폭에 시달리며 운동을 했다. 선생님의 압박은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것은 당연한 일 같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나와 같이 동네 형에게 폭력을 당했던 친구도 필드하키 선수로 활동을 했었는데, 어느 날 그의 허벅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멍이 들은 것은 물론이고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피가 터져 나오기까지 했었다.
3학년이나 되어야 어느 정도 학폭에서 벗어 날 수 있었지만 선생님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체육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도 좋지 않은 기억도 남은 선생님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갑자기 몸서리가 처진다.
정말 그땐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일어나는 일들이었고, 그 누구도 이슈를 제기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이런 일들은 잘못된 체육계 문화로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문화가 지금은 어느 정도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이들을 운동을 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 운동을 시킬 아이들이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배구 선수 들뿐만 아닐 것이다. 모든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과거의 일들을 꺼내놓기 시작하면 대한민국의 체육계는 정말 끔찍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운동을 가르치는 것인지? 폭력을 가르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당연히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더 나은 성적을 위한 방법이 체벌과 폭력이 아닌 더 기술적이고, 정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앞선 사람들이 이끌어 줬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이런 기사들이 기사로 올라오는 것이 불편하다. 당연히 이런 일들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사화되어 오르는 것이 불쾌하다. 아직도 우리 체육계의 문화가 후진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음은 아이러니할 뿐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나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