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왜 내가 미안한 걸까.

by 노연석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해 줄까?



죽음의 수용소를 떠나온 나는 그나마 잘 살고 있어 미안한 마음뿐이다. 내가 떠나온 그곳의 너무나 큰 현실들에 비하면... 내가 그곳을 떠나온 후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내 탓인가 싶지만 인과응보의 결과가 아닐까? 그 시절, 죽음의 수용소에서 4년을 겨우 버티기만 했다. 무너지는 기둥을 부등 껴안고만 있었다.


4년이란 시간이 지나 내가 놓아 버린 기둥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내가 튼튼한 기둥으로 바꾸어 놓았어야 했는데, 나는 나 살기에 급급했었다.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무너졌어야 할 기둥을 너무 오래 받쳐왔다. 이로써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겠지. 내가 놓아버린 시대. 나는 이제 아픈 추억이 된다. 나는 이제 아픈 역사가 된다.



이전에 근무하던 부서 사람들에게서 계속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내가 떠나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같이 일하시던 분도 다른 곳으로 가셨다. 잘 다니시던 형님이 갑질로 자리를 옮겼다. 후배가 계약 해지 후 타 부서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곳에 투병 끝에 복직했던 한 고객도 그분에 의해 부서를 옮긴다고 한다.


내 후임으로 일하던 후배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교체되었다. 아니 버티지 못하고 탈출을 했다.

그 자리 어느 누구도 오려하지 않았었다. 새로운 소방수의 등장, 그는 과연 불을 끌 수 있을까?

왜 그분인지 알 수 없지만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제 남아 있는 후배들도 그곳을 탈출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


이 모든 것, 한 명의 소시오패스로부터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다는 것이 슬프다.

갑질의 최고봉, 동료도 파트너도 눈엣 가시엔 가차 없다. 윗사람들은 왜? 방관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다 알면서도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가? 벌써 몇 명째 사람을 내 보내는 것인가?

퇴사, 전배가 끊이지 않는 이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다를게 무엇인가? 우리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고문에 죽임을 당해가는 그들과 다름없었다. 고통받고 주검으로 실려 나가는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랄 뿐...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때론 피해야 할 때도 있고,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약자가 강자에 맞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세상이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입장에선 그는 나쁜 사람이지만 또, 그의 입장에서 우린, 자신을 위협하는 나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인정은 하지 않겠지만...

이 모든 것은 한 10년쯤 후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잊히고 지워질 일들이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나야 잊힐 일들이다.



불행하게도 수용소에서의 시간은 너무도 더디다. 지금 나는 또 다른 수용소에 있다. 아직은 그곳에 비하면 천국 같지만 언제 또 불행이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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