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밥 한번 먹자.

밥이 이어주는 인연

by 노연석

오랜 직장 생활의 시간들 속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우연하게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닌데, 그중 중학교 친구 한 명이 같은 회사에 근무를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고, 우연히 만나고, 또 우연히 만나고를 반복하는 그런 친구가 하나 있다.



30대 중반쯤이었을까?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을 무렵 수영을 시작했고, 6개월 정도 매일 수영을 하면서 수술을 하지 않고도 돌출되었던 4번, 5번 디스크는 다행히도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수영도 배우고 디스크도 좋아지는 일석이조의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디스크 재발 방지를 위한 수영을 지속할 동기가 필요해 회사 동호회에 가입을 해서 활동을 하기로 했었다. 전에 한번 가입했다 그만둔 경력이 있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꾸준히 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수영을 좀 배워서 이기도 하고 같이 할 사람들이 있어서 나름의 경쟁이 재미있었다.


동호회에 처음 나가던 날,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아니었지만 같은 반도 했었고,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닌 적당한 거리에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도 내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잘해서 컴퓨터 경진대회 같은 것에 출전을 하고 했다. 나는 컴퓨터라는 것은 접하지도 못하던 시절이고 시골 친구들 중 컴퓨터가 있는 친구가 그리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부터 친구는 컴퓨터를 다뤄오면서 그와 관련된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었나 보다 그러니 나와 같은 IT쟁이로 나타나 나를 맞이 했을까.

우리는 중학교 이후로 고등학교도 다른 곳으로 다녔기 때문에 만날 일은 없었다.


회사에 입사를 하고 10년이 넘어서 중학교 동창이자 고향 친구를 만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데 이런 우연이 있을까? 같이 입사했던 친구들도 사실 만나지 못하는데 입사 시기가 다른 우리가 서로 모르고 있다가 만나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꽤 사람이 많은 회사이다 보니...


우리는 중학교 이후로 20년 가까이 서로 다른 길을 걷다 만난 만남에 매우 반가워했지만, 수영 동호회 모임에서 만나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근무지가 달라 더욱더 부딪힐 일은 없었다. 수영은 막상 풀장에 들어서면 혼자 하는 운동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수영을 끝내고 샤워장에서나 얼굴을 한번 볼 수 있을까. 가끔 있는 회식이 있기는 하지만 잘 가지 않기 때문에 얼굴 보기는 더 힘들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곳에서 조용히 일을 하다 다시 몇 년이 더 흘렀다. 우리는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던 일은 이미 그만 둔지 오래였다. 다시 만난 건 골프연습장. 내가 다니는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도 골프를 배우고 있었고 나도 마침 시작할 때였는데 연습장에서 만나면 밥 한번 먹자가 아닌 언제 한번 같이 라운딩 가야지라는 말로 주제가 바뀌었지만 라운딩을 갈 일은 없었다.


한번 기회는 있었지만 친구가 바쁜 일 때문에 같이 할 수가 없어 다음 기약을 했어야 했지만 다시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몇 년이 지났을까? 작년 7월에 근무지를 옮기면서 출근하기 시작한 건물에 그 친구가 일을 하고 있었다. 뭔가 인연이 있는 것인지? 회사에서 계속 만나게 되고 근무지도 같아지면서 가끔 지나치다 만나는 일도 있고 그러다 라운딩 갈 자리를 만들고 말로만 했던 의례적인 일이었지만 나이스 샷을 외쳐주며 옛날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친구를 내가 활동하는 동호회에도 가입을 시켜 같이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나도, 친구도 너무 바쁜 나머지 같은 사무실 있음에도 일주일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다.


며칠 전 복도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걸어오는 친구를 보며

"야, 같은 층에 일하는데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드냐."

"잘 지내지"

"응, 요즘 나도 많이 바쁘네..."

정부의 지침보다 더 강화된 코로나 19에 대한 회사 지침으로 운동을 같이 할 시간을 만들 수가 없는 상황이라 사실 우리는 조용히 지내고 있다.


바쁜 건 좋은 것이지만 친구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올해가 지나면 끝이나 또 어디로 갈지 모른다. 물론, 나도 그곳에 오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같이 있는 동안 좀 더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은데 사는 게 여의치가 않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게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하지만, 사실 그 말은 정말 그러자는 것이 아닌 의례적인 인사치레인 경우가 많다.


지금 일하는 곳에 이사를 와서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지나치다 많이 만나고 커피 한잔 하자고 말은 하지만, 시간을 내서 커피를 마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인사치레로 그런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인사 치례의 말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면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보다 내가 먼저 그 말을 실천하는 것이 말뿐인 약속을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만남의 시간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사실 마음은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도 쉽지 않은데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서, 가끔 생활하다 먼발치에 지나가는 친구를 보면 아! 밥 한번 먹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또 든다. 이런 걸 보면 그냥 인사치레만은 아닌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에 대한 소중함이 더 간절해지는 것 같다. 나의 노후에 함께 놀아줄 친구를 지금 만들어 놓지 않으면 얼마나 외롭고 무료할까라는 생각들이 그 친구를 자꾸 내 영역으로 끌어 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나와 함께 해줄 진정한 친구는 많지 않다. 그런 친구들을 만드는 것,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앞으로 남은 삶을 외롭지 않은 인생을 만드는 일 중에 하나 일 것인데, 내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먼저 다가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 미래에 좀 더 행복해지고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준비가 되어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밥 한번 먹자고 말만 하지 말고, 날을 잡고 밥 한번 사주는 것으로 나와 친구의 미래는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있지 않을까.



직장생활을 하며, 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을 통해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않게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고, 미래를 위해 그런 일은 그래도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말하지 말고 "내일 점심 같이 먹자"라고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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