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고 싶었다.

다시 시작

by 노연석

10년 전쯤, 나는 홀로 너를 만나러 갔었다. 그러나, 까탈스러운 너는 나를 만나 주지 않았다.



사진 촬영을 좋아하던 시절.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도로 위에는 어둠보다 더 짙게 내려앉은 새벽안개에 자동차 라이트는 레이저 빛이 되고 그 빛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져가는 안개의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도로 위 상황에 내 모든 촉각을 세워야 했던 험난한 여정의 끝에 곧 너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은 어둠도, 안개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혼자 도착한 새벽 바닷가, 내가 혼자인 것처럼 바다도 쓸쓸해만 보였다. 잔잔하게 일정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화이트 노이즈가 되고,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바닷가에는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하나, 둘... 지난밤 손님들이 다 떠나고 불 꺼진 가게에는 밤을 지키는 간판만이 빛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뒹굴며 쓸쓸함을 더 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그곳에 속속 도착하는 사람들도 그날 허탕 칠 것은 알고는 온 것인지? 그냥 무작정 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곳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만큼이나 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 혹시나 너를 보지 못하게 될지라도 실망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날, 사실 너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찾아오기는 했지만 역시 머피의 법칙과 같이 되어 버린다.


홀로 해가 뜨기를 차 안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하고 쓸쓸함을 배가되는 시간이다. 너무 이른 도착으로 잠시 눈을 붙여 보자고 눈을 감지만 행여 너를 보지 못하는 꿈나라로 떠날까 봐 눈을 감고,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너무 일찍 도착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쓸쓸함의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건 너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놓쳐 버리지 않으려는 기다림이 주는 설렘이었다. 그 작은 설렘들이 몸부림쳐 대는 바람에 반신반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난 일찍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작은 설렘마저 없었더라면 지친 몸을 일으키고, 새벽의 어둠을 뚫고, 이곳까지 달려와 이런 고뇌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에야 와서 내가 왜 그곳에 달려갔을까? 란 생각을 해 본다. 사진에 미쳐서 일까? 미쳐있었지만 혼자 이렇게 무작정 나설 만큼 미쳐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데... 사진을 찍고 괜찮은 사진을 네이버 포토 갤러리에 올리며 내가 올린 사진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그때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실은 허세가 아닐까? 나는 새벽에 이런 곳에 가서 이렇게 멋진 사진을 찍는 사람이야, 나도 사진을 이렇게 잘 찍는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처럼 내 모든 삶의 모습은 뒤에 감추고 가장 빛나는 순간을 업로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런 허세가 아니었나 싶다.


아니다. 진실은 나는 사진을 핑계로 도시를,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나는 너무도 일에 치이며 살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나에게 삶의 여유를 주고 싶은 마음에 새벽부터 일어나 홀로 일출을 보겠다고 나섰는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의 돌발적인 행동은 작은 설렘을 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뜨지도 않을 너를 기다리며, 그곳에서 삼각대를 펴고 초조하게, 마치 처음 소개팅 자리에 나가 상대방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긴장하며 떠오르지 않는 너에게 당황해하면서도, 그래도 조금 더 기다리면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너는 아니어도 구름을 뚫고 중천에 떠있는 너라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기다려 보았지만 그냥 그건 나의 욕심이었을 뿐이었다.


수평선 저 너머로 옅게 깔리는 붉은빛이 돌기 시작하고 파도는 조금씩 더 세게 육지로 돌진을 하며 잔잔하던 바람은 거세게 몰아쳤고 수평선 위로 가득한 구름은 태양 빛을 완벽하게 가로막은 채 날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리고 다시 어둠을 집어 살킬 듯한 기세로 당당하게 버티며 나에게 돌아가라고 돌아가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날이 아니니 다음에 다시 오라는 손짓이었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언제나 마음먹고 너에게 달려가도 너를 볼 수 없었다. 언제나 그 법칙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날 세상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던 태양을 나는 볼 수 없었다. 먼 길을 홀로 외로이 달려와 마주하려 했지만 그날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소개팅에서 바람을 맞은 후에 밀려오는 허탈감 같은 느낌을 그리고 미련을 남겨 둔 채로 돌아서야만 했었다.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 볼 수도 없었다. 그냥 씁쓸하게 뒤돌아 보지 않고 내비게이션에 집으로 가는 길을 검색하고 운전대를 잡았었다.



그렇게, 다시 10년은 족히 흘러 버리고 난 후 네가 다시 생각난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올라와 10년 전에 들끓던 나의 피를 다시 끓어오르게 하고 있어 나는 다른 약속들은 뒤로 한채 너를 만나러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번엔 나 혼자가 아니라 쓸쓸함은 집에 두고 나왔다. 그때와 나는 다르게, 행여나 내가 떠오로는 너를 또다시 못 볼지 모르더라도 이번엔 미련은 없다.


왜냐하면, 이번엔 너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그저 바다를 보고 싶어 바다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고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네가 함께 해 주면 금상첨화일 뿐 오늘 너는 그냥 조연일 뿐이다.


그런 너는 참 눈치도 빠르다. 제가 주인공 아닌 조연이라고 생각하고 왔다는 것에 기분이 상한 탓일까?

어쩌면 내 마음을 알아챈 듯이 영상 1도밖에 되지 않는 기온이면 따듯하다는 착각을 갖고 그냥 달려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바닷가의 영상 1도에는 바다 바람의 차갑고 매서움은 포함이 되지 않은 온도라는 것을 잊은 채 우리는 이미 그곳에 있었고, 자동차에서 문을 열고 한발 내딛는 순간 바지자락을 힘차게 흩날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의 소리, 매섭게 불어대는 바람에 다시 문을 닫게 만들 만큼의 너는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미쳐 생각하지 못한 시나리오에 오랜만에 만난 강한 바람과의 만남은 만남 그대로 받아 들일수밖에 없었다. 어쩌겠는가 바람이 불던지 불지 않던지 우리는 이미 이곳에 와 있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문을 열고 나서지만 그 강한 바람에는 추위도 같이 실려있어 순식간에 몸은 싸늘해지고 귀는 아려오고 사진 한 장 찍어보려 들어 댄 스마트폰은 한 장 찍기가 무섭게 주머니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우리를 그곳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게라도 하려는 듯 너는 우리를 밀어내고 밀어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쉽게 물러설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너는 알지 못했나 보다. 우리는 네가 우리를 밀어내려고 할수록 더 버티고, 버티어 내어, 바다와 태양이 만나 붉게 산란하는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았고 오늘도 여전히 너는 구름 뒤에 숨으려 노력을 했지만 실패를 한 것 같다. 버티고 버티고 있는 우리를 너는 밀어 내려다 수평선 위로 오르는 너 자신에게는 정작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 수평선 위로 쳐 놓은 구름의 위장막 때문에 오늘도 너를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해 보며 너를 조연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어디고 가고 이번 밀당에서는 내가 너를 이긴 것 같다는 생각을 섣부르게 해 보기도 한다. 덕분에 나는 너의 더 화려한 몸짓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앞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한계를 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가능하다라도 그것은 자연의 이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너무 추워서 오랜 시간 머물 수는 없었다.


붉게 피어 오른 너와 바람에 출렁이는 파도,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기겁을 할 만큼 가까이 다가온 갈매기들, 갈매기떼만큼이나 너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마주 보며 대화하고 있는 순간의 풍경들은 사진으로도 영상으로 남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 마음속 한 곳에 저장하고 나니 이제 네가 우리를 떠밀며 돌아가려던 이유를 알 것 같다.



3월의 시작. 바다가 보고 싶었다. 3월이 되기 전에 바다가 보고 싶었다.

3월은 또 연초와 다르게 새로이 시작되는 것들이 많다. 나는 새로운 시작되는 연초에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그러지 못했던 핑계 같은 이유를 들어보자면, 아직 작년의 너저분한 것들을 비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바다에 가고 싶었던 건, 일상에서 눈을 뜨고 어디를 둘러봐도 빌딩 숲으로 가려져 답답함만 가득한 도시를 떠나 탁 트인 바다를 보며 마음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속을 시원하게 비워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싶었다.

좀 더 따뜻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랬더라면 너는 나의 뇌리에 오랜 시간 남지 않을 그저 평범한 바다가, 일출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 바다와의 만남에 한결 가벼워진 마음은 올 한 해를 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 생각은 현실이 되어 준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