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기 요금이 빠져 나갔다.

어머니, 기다리고 계실라나

by 노연석

내가 살고 있는 집이야 아파트라 관리비에서 잘 정산이 되고 있어 전기요금이 따로 나오지는 않는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의 집 전기요금 이야기다.

요즘 전기를 평소보다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 TV를 많이 보시나? 날씨가 추운 곳이라 전기장판을 많이 사용하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 다는 것은 무언가 계속하신다는 것이니 마음이 놓인다.

그곳의 2월은 더 추웠었나 보다.


원래 무뚝뚝하고 전화조차도 잘하지 않는 나라서 이런 상황을 바라보며 잘 계시는구나라고 확인을 한다. 그곳, 내 고향 철원, 겨울은 매우 춥다. 어렸을 적 1월은 항상 눈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평균 기온은 영하 15도는 되었을 것이고 영하 20도 가까운 날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숨을 쉬면 콧속이 쨍하게 얼어오던 느낌이 생생하게 생각이 나다 못해 느껴지는 것 같다. 요즘은 예전보다 따뜻해지기는 했지만 철원은 철원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은 거의 25년도 더 된 집이고 전문가가 아닌 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집이라 그때는 몰랐는데 많은 부분이 엉성하고 더위와 추위에 약하다.


물론 나는 그 정도도 할 수 없지만 나름 아버지의 손재주는 물려받는 것 같다. 시골에 가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어깨 너머로 봐왔던 일들을 곧 잘 해내곤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나도 어머니도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어머니가 그래도 괜찮다는 거다.

예전에 연락만 오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지금 어머니의 몸 상태가 괜찮은 건 아니지만 집사람을 통해 가끔 소식을 듣고 괜찮으시구나라고 안심을 한다.


난 어머니뿐만 아니라 원래 누구에게도 연락을 잘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도 동생들에게도 회사 동료들에게도

이유는 있겠지.


난 19살에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줄곳 혼자였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주말에는 혼자 볼링을 치거나 기숙사에 처박혀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TV에 빠져 살았다. 그 생활이 난 나쁘지 않았다 그때는 어머니, 나이 어린 두 동생을 돌봐줄 아버지도 살아 계셨기 때문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어린 시절은 나이 어린 두 동생을 돌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일을 나가시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없었고 억압된 채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그곳, 철원이 좋은 기억의 곳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고향이지만 자주 내려가지 않았다. 어쩌면 어린 시절 억업 되었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벗어나 혼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뿐건 아니다. 술도 같이 마시고 운동도 같이 나가고 예전에는 동호회 활동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나의 20대는 그것들로부터 헤어져 돌아오면 늘 혼자였다. 사회에 발을 딛은 후 결혼하기까지 거의 10년을 그랬다. 나는 그냥 연락이 되지 않아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갑자기 누가 그리워 만나러 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가끔 술이 그리워 친구를 찾기는 한다. 이기적인가?


이런 나를 아내는 이해하고 살아주는 것 같다. 사실 내 아내는 스마트 폰이 없으면 어쩔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카톡도 많이 하고 문자도 많이 하고 통화도 많이 한다. 나와는 정 반대이다. 친구들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가고 있는 내 아내는 늘 스마트 폰으로 누군가와 연락을 하고 있다. 잠이 들어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기 전까지...


우리 어머니는 문자도 보낼 줄 모르신다. 장모님은 스마트폰으로 주식도 사고 파시는데 말이다.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으신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절대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않으신다. 한때 그래도 혈기가 있으실 때는 전화 한 통화하지 않는다며 잔소리를 하곤 하셨지만 요즘은 그럴만한 기력도 없으신 것 같다. 나보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신다. 어머니도 내가 불편하신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가정도 꾸리고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어머니도 시골에서 나름의 외로운 시간을 보내왔고 지금도 그 외로움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불효자, 나는 스스로 불효자임을 인정한다. 나는 나의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않고 있다. 어쩌면 주변의 이웃들보다 더.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 버티시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지만 여쭈어 볼 수 없다.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버티고 있는 그것과 같은 것일까? 이마저도 잠시 의문을 품어볼 뿐 더 이상 궁금하지는 않다.


내 스마트폰에는 주말마다 어머니께 전화하라는 알람이 뜬다. 한 번도 그 알람에 맞춰 전화를 걸어 본 적은 없다. 전화는 하지 않지만 반대로 어머니에게도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특별한 문제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알람을 해제 해 버린다. 참 특이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란 거 알고 있다. 또 이런 이상한 놈이 다 있나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해를 바라며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라는 사람은 그냥 이런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머니는 어쩌면 오매불망 이 놈이 왜 전화를 하지 않을까 하며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잘 지내시라는 말 몇 마디만 하면 되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전화기로는 여전히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은 생각난 김에 어머니께 전화를 넣어봐야겠다.


<사진>지난 가을, 시골집에서 바라본 풍경. 갈때마다 사진을 한장씩 찍어 두는데 이게 제일 최근 사진인 것 같다(20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