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포기, 뜬금없이 코딩이라니

나의 전산 이야기

by 노연석

입사 후 부서로 발령을 받은 후 나는 4주간의 합숙교육을 받으러 입소를 해야 했다. 그곳에 들어가면 주말에만 나올 수가 있다. 주중에는 그곳에서 강의를 듣고 새벽 6시에 기상을 하여 단체로 모여서 체조를 하고 운동장을 서너 바퀴 돌아야 한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씻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8시까지 강의장으로 입실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수업을 듣다 보면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

식사를 맞히고 숙소로 돌아갈 쉴 수가 없다. 그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어 밤 12시까지는 과제를 하는 것은 교육기간 내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어도 시간은 간다. 4주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부서로 복귀를 해야 하는데 차라리 합숙교육이 더 괜찮다는 생각에 미련은 있지만 몸은 그곳에 둘 수 없어 영혼은 가출시킨 채 그곳을 떠나 회사로 복귀를 했다.


교육을 다녀왔으니 실전에 써먹어야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실전에 교육받은 것들을 펼쳐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일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교육받은 내용을 다 잊어버릴 지경이 되어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한 안간힘을 다한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까? 당시 부서장이었던 분이 뜬금없이 코딩을 해 보라는 것이다. C언어. 프로그래밍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나였기에 부담스러운 명령이었다. 하지만 신입사원이 싫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프로그램의 용도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컴퓨터의 자원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다.


사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언어라 일단 책을 한 권 샀다. "쉽게 배우는 C언어"와 비슷한 제목의 책이었는데 당시는 나름 유명한 번역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리 친절한 번역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학으로 코딩을 시작해서 간단한 것들은 혼자서 해결을 할 수 있었지만 어딘가에 막혀서 나는 진도를 뺄 수가 없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멈춤의 상태로 있었다.

그때는 지금의 구글을 만날 수 없던 시절이라 도움받을 곳이 많지 않았다. 역시 나는 프로그래밍에는 소질이 없었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자. 부서장이 독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기억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그 프로그램은 포기를 하고 말았다.


아마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두 번째로 포기를 하게 된 때가 이때이다.


나는 그냥 PCB 설계나 하고 전산실 운영이나 하면 되는데 자꾸 다른 일을 주는 것에도 불만은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을 해야 했던 일은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한 업무였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도 다른 누구도 그 일을 다시 시작한 사람은 없었다.


비록 프로그래밍을 못하겠다고 배 째라고 이야기하고 그 순간에 멈추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그때 난 많은 것을 배웠다. 한계를 돌파하지 못했을 뿐, 그때의 경험은 5~6년 후 코딩 머신이 되게 만들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준 것은 사실이고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난 프로그래밍에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일 년쯤 후 나는 1년 6개월 정도 시골집에 머물러야 했다. 그동안 일하면서 모아 온 돈으로 생애 처음 내 컴퓨터를 샀다. 그리고 나는 그때 못다 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미완성이었던 그 프로그램을 다시 코딩하여 완성하고 그 후로 몇 개를 스스로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그때도 프로그래밍의 재미를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프로그래밍은 여전히 흥미를 갖기를 만한 동기부여가 되어 주는 것은 없었다.



Image by Garik Barseghyan from 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배의 헌팅, 그리고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