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산 이야기
맑고 쾌청한 날은 연일 계속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비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날 아침도 출근해서 선배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해지만 불만 가득한 잔소리는 매일 아침 들어야 하는 기상나팔소리와도 같았다.
인사발령 대기 중이라 인사과로 출근을 할 때였는데 그때는 인사가 회사에서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정말 미생의 신입사원일 때라 인사과의 사람들이 잔소리쯤 그냥 흘려보내고 말지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밖에 비 오냐?"
"아, 아니요." 무슨 말인지 알지만 그냥 모른 척 대답했던 것 같다. 무스가 잔뜩 발라진 헤어 스타일을 보며 반감이었을까? 우리는 늘 아침마다 있는 이런 상황에 긴장을 해야 하는지? 그냥 장난이나 우리에 대한 관심으로 생각해야 할지? 신경 쓰지만 고민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전산에 발을 들여놓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지만 현실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입사한 곳도 발령을 받은 부서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정해 준 길로 가야 했는데 결국 그들이 결정해 준 그 순간의 결정이 내가 아직까지 전산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컴퓨터와 연관이 되어 있었고 그들이 주도하는 세상으로 인해 오늘날의 컴퓨팅 환경이 엄청나게 발전하는데 기여한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대단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한 15년은 흐르고 난 후 그들을 바라봤을 때 알게 되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별이 되었다.
발령을 받은 부서의 나의 멘토는 나와의 인연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선배는 내가 입사를 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다. 그리고, 그 선배가 잘하던 분야에 창업을 하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철부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그 선배는 퇴사하기 전에 나에게 물었다.
"너,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런 말이 아니고 내가 회사 차리면 함께 할 수 있는지 묻는 거야?"
"네? 저는 이제 입사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회사를 옮기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아서요."
"그렇긴 한데 네가 생각이 있다면 함께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너만큼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어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나 나름 고민 많이 하고 이야기하는 거다."
"아.. 네, 선배. 저는 이제 배워가는 단계인데요. 선배님이 떠나시면 누가 저를 가르쳐 주실지 걱정이네요."
선배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전산실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나를 떠 보려 했는데 내가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하고 넘어오지 않을 것 같으니 이내 포기한 듯하다. 난 얼굴에 마음이 잘 드러나는 사람이라 선배는 내 얼굴만 봐도 나를 더 설득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번은 PCB(Printed Circuit Board, 인쇄회로기판) 설계 주문이 들어와서 설계를 해 놓고 선배에게 검수를 받았다.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기는 했지만 크게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부분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컴퓨터로 설계를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수도 없이 많이 해 본 일이었다.
아마도 내가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리라. 그래서 함께 하자고 했었던 것 같지만 나는 불확실한 미래로 발을 디딜 만큼 안정정인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선배의 유혹에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하던 그 일이 전산인가? 아닌가? 생각을 해 보니 컴퓨터와 땔레야 땔 수 없는 일이기에 전산 업무의 하나라고 정의를 하고자 한다. 프로그램 코딩은 하지 않지만 업종으로 보면 전자이지만 컴퓨터를 가지고 하는 일이기에 전산 업무이다.
그 일은 CAD(Computer Aided Design) 중에서도 Eelectoric CAD의 영역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PCB 설계 업무이다. 나는 설계 업무 외에도 PCB 제작 전 단계인 설계한 도면을 사진 필름과 같은 필름으로 출력 가능한 데이터로 변환하여 현상기로 전송하여 출력하는 Artwork 작업까지 해야 했었다. 필름 현상기도 컴퓨터와 연결이 되고 그 기계가 인식하는 데이터를 입력으로 넣어 주어야 한다. 모두 컴퓨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만 해도 마우스를 많이 사용하던 때가 아니지만 CAD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기에 마우스나 태블릿이 꼭 있어야 한다. 키보드보다 마우스를 더 많이 사용을 했었다. 동기들이 그때 나를 "마우스 쟁이"라고 부르곤 했던 것 같다.
발령 후 얼마 되지 않아 부서에서 워크숍을 간다고 하여 온천 근처로 갔었던 같은데 거기가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처음 회사에서 워크숍도 가고 부서원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식당에서 노래방도 아닌데 노래 부르는 일 자연스러웠던 때였다. 신입인 나에게 당연히 기회를 쥐어 주었다.
신입사원이니 잘하든 못하든 눈치를 볼 사이도 없다. 바로 나의 18번이었던 "아마도 그건"을 불렀던 것 같다. 그 자리가 어쩌면 신입사원 환영회와 나의 멘토였던 그 선배의 퇴사를 기념을 겸하는 자리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끝까지 완창하고 박수를 받았다. 그 박수가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나의 노래가 듣기에 나쁘지는 않다고 스스로는 생각한다.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그대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
1989년에 발표된 최용준의 노래다. 젊은 시절 노래방에서 정말 많이 불렀었는데 이제는 가사도 다 까먹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나이가 되었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노래는 많은 가수들로부터 리메이크되어 불러졌다.
나의 첫 워크숍,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노래를 열창했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너무도 몰입해서 부르는 모습이 우습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얼굴이 붉어져 온다. 그렇게 나는 그 부서의 일원으로 전산 쟁이로의 발을 떼었다. 그리고, 그 선배가 정확히 언제쯤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워크숍이었다.
선배가 나에게 같이 일해보자고 했었던 그 날 이후로 그 이야기 다시 꺼내어 놓고 이야기를 한 시간은 없었다. 워크숍 며칠 후 선배는 예정대로 퇴사를 했고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사랑 그것은 엇갈린 너와 나의 시간들
스산한 바람처럼 지나쳐 갔네
가끔 선배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여 확인을 해 봤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그때는 정보를 습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었다. 한 번은 그 선배가 회사를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회사를 만들고 대표이사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대표이사라고 실무에 손을 놓을 수는 없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명함을 건넸다. 명함을 받고 난 후에도 그 사업은 정말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만약 그 선배와 함께 했었다면 나는 전공을 제대로 살린 일을 하며 지금의 전산 쟁이가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Image by Gino Crescoli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