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회사에 다시 복직을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세상이 많이 변해 있었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은 정말 눈부시게 빠르게 발전을 해 간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는 아직 상업화된 통신 채널들이 전무하다 시 피했기 때문에 사설 통신망을 통한 서비스, 주로 대학들이 만들어 놓은 서비스에 접속하여 채팅을 하고는 했었다.
잠시 회사를 비운 사이 WWW(World Wide Web)이란 것이 국내에도 점점 더 퍼 져나가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홈페이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복직은 했지만 원소속 부서로는 하지 못하고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내가 하던 CAD 관련 기획을 하는 부서였지만 내가 특별히 기획이라는 것을 할 기회는 없었다. 그곳에서도 전산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정확하게 전산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곳에 발령이 났다는 것도 알지는 못했다.
복직 후 나는 여의도에 있는 한 기관에서 주체하는 교육을 2주간 받았다. 그곳에서 하는 교육은 웹 페이지 개발에 필요한 HTML 교육이었다. 사실 이 교육을 왜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교육 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2주간의 교육을 나름 재미있게 마치고 돌아온 나는 그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서버가 있을 때도 아니고 데스크톱처럼 사용하고 있는 워크스테이션 1대에 웹서버를 설치하고 HTML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꼬박 한 달을 씨름하며 거의 완성을 해 가고 있었고 당시 그 회사의 대표직을 맞고 있는 분에게 시연을 해야 했었다.
그런데, 시연 3일 전 사용하던 워크스테이션에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다운이 되어 리부팅이 되지 않아 이것저것 만지다 그만 OS를 초기화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내가 한 달 동안 만들어온 홈페이지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는 이야기다. 3일 남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새벽 2시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선 잠자고 있는 선배들에게 연락을 했다. 첫 번째 연락한 선배도 답이 없을 것 같다고 했고, 내 바로 위 선배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데이터를 복구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듣고 나는 더 망연자실하며 넋을 놓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가하게 멍만 때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OS를 다시 제대로 설치하고 웹서버(Aphache)도 다시 설치하고 기억을 더듬어 다시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날 이후로 한잠도 잠을 못 자고 이틀 밤을 새워가며 한 달 전부터 시작한 코딩한 코드들을 기억해 내어 다시 조각난 퍼즐을 다시 맞추듯이 맞춰나갔고 하루 전날 완성하지 못한 부분까지 마무리하여 끝내고 시연까지 마무리를 했었다.
늘 그런 시연을 하곤 나면 해결해야 할 숙제들은 늘어난다. 그러나 지난날의 고생에 비하면 그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순수한 HTML 코드로만 코딩을 해서 프로그램이라고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정말 정적인 순수한 홈페이지에 불과했다. 디자인의 개념조차 없을 때라 내 마음대로 디자인하고 구성하던 때였다.
그 후로 나는 본격적인 홈페이지 만들기에 돌입을 했다. 홍보를 위한 페이지에서 공지사항, Q&A와 같은 기능을 가지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DB에 대한 아무런 개념도 없었고 DB를 써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때이며 지금과 같은 오픈소스 DB들이 있을 때도 아니고 오로지 오라클 DB만 있었으나 그 존재조차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난 모든 걸 만들어야 했었다. 코딩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얼마나 허튼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DB에 대한 개념이라도 있었다면 비슷한 구조로라도 만들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모든 데이터를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고 공지사항 목록을 파일을 불러와 만들고 상세 내용 페이지는 파일을 오픈하여 보여 주는 식이다 보니 검색이라는 것 자체는 엄두도 못 낼 정도였지만 이런 과정까지 가는 과정에도 많은 시련과 고통이 따랐다.
세 번째 포기, 다시 만난 C언어, 이제 조금은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잘 모르던 시절이다. 웹프로그램을 그때는 cgi라는 프로그램 라 부르고 C언어를 이용하여 코딩을 해서 만들었는데 이 부분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벽이 되었다.
정말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C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있지만 웹프로그램의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우물을 파기 시작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이번은 포기라기보다는 한계선을 넘어서는 시점이었다. 혼자 고군분투를 하는 동안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이 업무과 관련된 과장님 한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며 약간의 언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분을 통해 다른 개발자를 소개받아서 도움을 받았어 혼자 끙끙 앓던 부분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단계가 없었더라면 정말로 또다시 포기를 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우리가 운영하던 홈페이지는 만들어서 그럭저럭 운영을 하게 되었고, 다른 부서에서도 홈페이지 제작을 의뢰하여 만들어 주기도 했었고 그러면서 코딩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홈페이지들을 그리 오랜 시간 운영을 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 부서가 조용히 사라졌고 부서원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며 나는 어떤 말도 듣지 못한 채 없어진 부서에 며칠을 출근하며 정리를 했다. 홈페이지는 서비스를 종료해야 했고 그 후로 나는 정보시스템실이라 불리는 전산실로 다시 발령이 났다.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그렇게 늘 누군가로부터 정해지고 사라지고 또 정해진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 가장 인기 있었던 추억의 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모든 브라우저의 시조. 이 브라우저는 한때 서버 OS로 각광받던 IBM이 만들었던 OS/@ warp라는 OS에서 구동이 되던 브라우저였다. 나는 HP Unix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Unix에서 구동되는 넷스케이프를 사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