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이 마구 느껴지는 시간, 23시 20분
나의 전산 이야기
정신없는 월요일, 할 일도 많은데 시스템 장애가 발생을 했다. 별거 아니려니 담당자들에 일을 맡겨 놓고 내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오후 5시 무렵 함께 봐 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심각한 상황.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의 일을 대체해 로봇이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일이다. 곧 일감들이 몰려와 로봇들이 열심히 일 할 시간. 장애 발생 시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을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로봇의 가동을 중단하고 수작업으로 전환을 했고 문제를 파악 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컴퓨터가 잘 안되거나 전자기기가 잘 되지 않을 때 껐다 켜라고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껐다 켜도 소용이 없었다. 이러다 밤을 새울 판이다. 마지막 방법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엉킨 실타래에서 실을 풀어 가듯이 하나하나 풀어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정말 마지막 수까지 두어 봐야 결론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재수가 좋으면 한방이기는 하다.
경우의 수보다 의심이 가는 놈을 하나하나 꺼내어 든다. 3수 만에 문제의 프로그램을 찾아냈다. 개발자의 말에 따르면 이미 한 달 전에 수정해서 운영하고 있던 프로그램이라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왜 오늘에서야...
그래도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밤은 새우지 않아도 된다. 생각해 보니 5시에 날 찾아와 도와 달라고 한건 내 문제인 것 같은데 왜 관심을 갖지 않는가라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문제는 프로그램이었다. 개선을 해서 적용했다는데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오늘 이 문제의 원인을 찾았지만 근본 원인을 알지 못한다. 근본 원인이라 의심되는 것을 찾았지만 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이 남긴 기록들을 다 뒤져봐야 알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맡은 부분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난 23시 20분에 회사 정문을 나와 호출한 택시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러 향했다.
우리 전산 쟁이들은 항상 장애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보낼 때가 종종 있다. 그저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잠들었어야 할 시간 퇴근을 한다. 오랜만에 긴장감과 짜릿함이 공존하는 순간을 맞이 해 본다. 내일은 아무 일 없기를 우리가 알아내 진실이 진실이기를 바래 본다.
00시 19분 버스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