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양을 마치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산책 길에 나선다. 첫날 원통암에 다녀온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어 발걸음은 부자연스럽다.
홀로 걷는 세 번째 산책길, 아침이지만 날씨도 공기도 그리 시원하지 않다. 조금 걷다 보니 오솔길에는 어린 시절 많이 보았고, 많이 따 먹었던 산달래 하나가 길 위에 뒹굴고 있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달래 덩굴이 있고 아직은 덜 익은 산달래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역시 아직은 덜 익은 풋내 나는 산달래다.
오늘 발걸음을 옮긴 산책의 목적지는 대흥사의 미륵전이다. 미륵전으로 발을 옮기는 동안 첫날 스님이 했던 이야기 중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음이라는 것은 맑은 물과 같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맑은 물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
살아가면서 맑은 마음이 탁하게, 검게 물들어 간다.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며, 나쁜 일을 하기도 하는 등 본마음에 없는 일들을 속세를 살아가며 만들어지고 물들어 간다.
그런데, 마음에 물들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정확한 답을 주시지는 않으셨다.
미륵전으로 가는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해답은 무엇일까?
문득, 스님이 하신 많은 이야기들 중에 스쳐지나 듯했던 말이 떠올랐다. 답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답은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잘한 일이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이기도 한데 잊고 있었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이 하신 말씀에 살아가면서 가끔 이렇게 "쉼"이 필요하다고 한 이야기다. 우리의 마음, 즉 물들여진 마음을 온전하게 아주 투명한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가끔 쉼, 휴식을 통해 내 삶에 브레이크를 걸고 잘 가고 있는 것인지? 가고 있는 방향은 맞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바르게 살고 있는지? 등등...
나를 바라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통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무력감에 빠져 있거나? 늘 슬프거나 외롭다거나? 삶이 재미가 없다거나? 그렇게 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을 때 잠깐의 쉼은 분명히 나를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 템플스테이가 아닐까?
미륵전 앞에 서서 마지막 기도를 올린다.
짧은 기간이지만 마음의 휴식을 제대로 하고 생각보다 맛있었던 공양, 땀 흘리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 친절한 사람들, 물들어 있던 마음의 조금이나마 정화시킬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해 주신 스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속세에서 잘 살아 보겠노라고 다짐도 해 본다
살짝 달아오른 몸을 약수에 식히고 시원하게 들이켠 후 미륵전을 떠나 다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언젠가 다시 템플스테이을 하게 되는 날,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지막 산책과 함께 소중한 추억들도 정리해 본다.
8월 5일 아침, 템플스테이에서 마지막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