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책2

산책과 등산 사이

by 노연석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다가 멈추기는 했지만 땅은 머금은 물기를 다시 세상으로 내뱉고 있었다.


사실 산책이라고 해야 할지 등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만큼 경사가 있는 산을 오르는 일이니 마음은 산책이라고 생각하고 나섰지만 등산을 하게 되었다.


비가 온 후라 온 세상은 물기 가득 먹은 스펀지 같았다. 바위에도 물기가 있어 자칫 잘못 밟으면 미끄러져 다실 수도 있는 상황들이 곳곳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오르려고 하는 곳은 황정산에 있은 원통암이라는 암좌가 있는 곳이다.

이정표로는 1.5km 밖에 되지 않는다고는 하나 산새가 험하고 가팔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디뎠는데 괜히 올라가고 있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절반을 왔는데 돌아서기에 아쉬워 가던 걸음을 재촉한다.


사실 원통암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올랐다.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겠거니 하고 올랐다.

오르는 내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땀과 열기로 얼마 지나지 않아 습기와 함께 뒤 범벅이 되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에 잠시 열기를 식히며 다시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을 따라 오른 길이기도 하고 나무들이 우거져 멀리 내다 보이지가 않았다. 가는 길마다 원통암으로 가는 이정표들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려 주었지만 가파른 길을 오르는 동안 무릎에 가벼운 뻐근함이 올라오기도 한다.


목적지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내가 올라와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본 보살님이 약수터로 안내를 했다. 시원한 약수에 열기를 식히고 났지만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온 숨과 열기는 쉽사리 내려앉지 않았다.


잠시 산 아래를 쳐다보고 있자니 먼발치에서 누군가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손짓하는 곳을 바라보니 스님과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다른 분이 앉아 계셨다.

그곳으로 이동을 하고 나니 종을 3번 치고 기도를 하라고 하여 얼떨결에 종을 치는데 생각보다 종소리가 크고 강해서 놀랐지만 3번을 모두 치고 난 후 가족의 건강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짧게 하고 물러섰다.

알고 보니 원동암 아래 소원을 빌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원통암은 식빵을 여러 장 겹쳐놓은 모양이었다. 스님께서 원통암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는데 그새 머릿속을 탈출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통암에서 종을 3번 치고 기도를 하면 들어준다고 하니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이제 어느 정도 열기기 식어가니 스님이 차 한잔 하자하여 다른 참가자와 자리를 옮겼다. 스님은 손수 물을 끓여서 차를 내리고 함께 마시며 좋은 말씀들을 해 주셨다. 듣고 있자니 하나도 틀린 말이 없고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답이 되어 주기도 했다. 특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참가자는 사회 초년생으로 많은 고민을 않고 온 것 같은데 많은 해답을 주려고 정말 열심히 대화를 나누어 주셨다.

뜻하지 않은 만남에 1시간 반 이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덕분에 저녁 공양 시간을 놓쳐 힘들게 올라와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 끼니를 굶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원통암 주변에는 불자들을 위한 숙박도 가능한 쉼터가 있었다.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보살님께 스님이 라면이라도 끓여 주라고 이야기를 해 주셔서 절에서 뜻하지 않은 라면을 먹게 되는 새로운 경험도 해 본다.

라면과 함께 지어 주신 밥에는 고구마를 함께 쪄서 주셨는데 고구마가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느껴본다.

뜻하지 않은 식사를 마치고 미안한 마음에 설거지를 하고 인사를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올 때고 걱정을 했지만 걱정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기 가득한 바위에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고 넘어질 위기를 몇 번을 넘기고 난 후 간신히 내려왔지만 다리는 후덜거렸다.

얼마나 운동을 하지 않고 살았는지를 증명해 주는 등산과 같은 산책이었다.


내일 다시 올라오라는 보살님의 말에 호기롭게 그렇겠다고 한 나는 다시 오를 자신이 없어졌다. 산채비빔밥을 해 주신다고 했는데 올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거리들을 버리러 온 곳에서 고민거리가 생겨버렸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올라가면서 괜한 걸음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뜻하지 않은 스님과의 만남은 원통암을 제대로 느껴볼 시간도 없이 또 다른 시간으로 이어졌고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오랜만에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들이어서 너무나 만족스러운 산책이었다.


산은 역시 어둠이 빨리 내린다. 내려와서 샤워를 하고 나니 세상은 온통 암흑이 되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8월 3일 단양 미륵 대흥사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