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자유
신 놈브레와 아메리칸 더트
OTT 중독으로 인해 드라마, 영화와 같은 작품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조금 더 사실적인 생동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활자로 보이는 것과 영상으로 보이는 것이 주는 자극과 흡수력의 속도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책 읽기 중독에 빠지기는 쉽지 않아도 영상물의 중독에 빠지는 것은 한순간인 것 같다.
여느 주말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주말을 보내다 OTT 목록의 썸 내일에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포스터를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이 영화의 제목은 "신 놈브레(Shin Nombre)".
신 놈브레 어떤 의미일까? 네이버 영화에서 조회를 해 보니 신 놈브레라는 제목 옆에 영어로 Without Name라고 쓰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많이 쓰는 "무명 씨"와 비슷한 건가? 어쨌거나 번역을 하면 "이름이 없는" 이란 뜻이니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출연하는 배우들 중에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갱단의 수많은 조연들은 이름이 언급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자 주인공 세이나도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캐스퍼는 갱단 내에서는 캐스퍼, 갱단 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윌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에 정확한 이름이 아닐 수 있어 신 놈브레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아니면, 영화 속 주인공들인 갱단과 밀입국자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어떻게 이슬로 사라질지 모르는데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어쩌면 갱단에서 살아남지 못한 또는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들, 그리고 밀입국에 성공하지 못하고 이슬이 되어 버린 그들에게는 무덤도 없을 것이고 그냥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사람들 일 테니 그런 제목이 붙여진 것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를 클릭하게 된 배경은 정말로 어디선가 봤던 포스터 속 장면일 텐데 난 그런 류의 영화를 본 적은 없었다.
그럼 어디서?
포스터 속 열차 위에 줄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내 상상 속에서 그려냈던 장면이었고 그 장면은 아메리 칸 더트라는 책을 읽으며 수없이 등장하는 밀입국자들의 열차 위 모습이었다.
올초 아메리칸 더트를 읽었었고, 그 책에서도 멕시코 카르텔과의 연류로 도망을 할 수밖에 없는 모자는 살기 위해 미국으로 밀입국을 위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 소설도 현실에 바탕을 두고 쓰였다고 알고 있다.
열차 위에서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여정을 하는 사람들이 포스터 한 장에 잘 묘사가 되었고, 아메리칸 더트를 읽으며 내가 상상했던 그 모습이 정확하게 일치하면서 많은 영화들 중에 나도 모르게 나의 뇌는 손을 움직이게 했다.
신 놈브레에는 사실 갱단의 이야기, 밀입국을 하려는 사람들의 두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며 결과는 주인공이 밀입국에 성공할 수 있게 결말을 마무리한다.
아메리칸 더트에서는 멕시코 카르텔과 카르텔을 피해 멕시코를 떠나려는 모자와 밀입국자들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점에서 두 작품은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목적은 멕시코를 탈출해 미국으로 이주에 성공을 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두 작품이 가지는 공통점이 멕시코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를 하려는 공통점이 있겠으나 왜 이런 작품들이 만들어진 것일까?
신 놈브레는 2009년에 개봉이 된 영화이다. 아메리칸 더트는 2021년에 초판 된 소설이다. 둘 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지만 미국 감독과 작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멕시코 인 중 누군가 만들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좀 더 이야기 속 세부 장면으로 들어가면 열차 위 사람들은 늘 단속국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불안에 떤다. 단속국에서 단순하게 단속을 해서 미국으로 이주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뿐만 아니라 약탈, 강간뿐만 아니라 스스럼없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열차 위의 여정 중에 떨어져서 죽는 사람들도 있어, 벨트를 열차에 묶고 잠을 자기도 한다. 열차가 여러 역을 지난 동안 단속국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그래도 따뜻한 것은 먹을 것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 기나긴 여정 중에 곳곳에 이런 이주민들을 돕는 단체들이 그들의 힘겨운 여정에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여정에 살아남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인 세이나가 갱단을 이탈한 윌리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이주에 성공을 하는 것이고, 그 결말이나 과정은 아메리칸 더트와 너무도 닮았다.
사실 아메리칸 더트가 더 구체적이고, 내가 상상하던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나 디테일해서 영화를 본 것 과 같은 느낌이었다는 점에서 신 놈브레는 좀 디테일은 약하지만 2009년에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2009년 그리고 2021년,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이 시간 동안 그곳에는 그런 변화라는 것은 없었던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두 작품의 내용은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잘 와 닫지 않을 수도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자유가 있는 세상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의 심정을 우리와 같은 자유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잊어버리고 우리는 너무도 많은 불필요한 곳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내가 하고 있는 불평, 불만들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사치일 것인가?
그런 점에서 우리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에서 살수 있게 만들어 주신 선조들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