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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Dec 31. 2023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23년 마지막 글

오랜만에 집에서 글을 써 보려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업그레이드를 하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업그레이드를 실행해 두고 다른 컴퓨터를 켰는데 전원이 없어 켜지 질 않습니다. 방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 회사에서 지급해 주었던 재택용 컴퓨터를 켰는데 이 놈도 업그레이드를 하라고 뜹니다.

저는 뭔가 업그레이드를 하라는 메시지가 뜨면 바로바로 처리를 해야 하는 성격이라 이것도 업그레이드를 실행을 해 두고 나니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습니다. 결국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멍하니 두대의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똑똑 노크를 하며 머리를 두드립니다.


한대는 한입 베어버린 사과마크를 달고 있는 8년이란 긴 세월을 같이하고 있는 컴퓨터입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성능은 아직도 짱짱해서 몇 년은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이 놈을 보고 있자니 배터리를 교체하라는 경고가 뜨고 있고 랩톱 바닥은 부풀어 올라 있어 교체를 해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이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점점 더 멀어지고 랩톱을 먼저 살려야겠다는 생각들과 괜한 도구에 목숨을 거는 상황으로 완전히 전환이 되었습니다.


사과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리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355,000원 그러나 제 랩톱은 이제 서비스가 종료되었는지 가격표에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좀 더 뒤져보니 70만 원은 줘야 교체를 할 수 있다는 글들이 보입니다. 그 가격이면 돈을 더 보태서 새로운 컴퓨터를 사는 것이 현명한 거죠.


렀다면 자가수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다시 검색을 해 보니 많은 글들이 올라옵니다. 몇 가지 글들을 읽어보니 배터리가 터질 수 있어 위험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교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인터넷으로 배터리를 72,000원에 주문을 했습니다. 70만 원의 1/10 정도의 가격으로 교체가 가능해졌습니다. 빠른 배송 덕분에 다음날 배달된 배터리로 바로 교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동봉된 해체 도구들을 이용하니 수월하게 작업이 진행을 합니다. 그때의 심정은 드라마에서 이사들이 수술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고 경건한 마음으로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의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도구들을 준비해 놓고 책상 위에는 부드러운 천을 깔고 밑판이 위로 향하도록 랩톱을 뒤집어 살포시 내려놓습니다. 이런 작업을 해보면 늘 다시 조립을 완료하고 난 후에 남는 나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A4 용지 한 장을 깔고 해체 한 부품들을 해체한 곳의 위치에 맞춰서 정리를 해 둡니다.


볼록한 배를 들어내고 배불러하는 랩톱의 바닥에 있는 나사를 의사들이 메스로 배를 가르는 것처럼 하나하나 풀어냅니다. 10개 정도의 나사를 풀어내자 강제로 뜯어내지 않아도 부푼 배 때문에 자연스럽게 뚜껑을 열 수 있었습니다.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기초적인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이라 순조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기기를 다룰 때 이런 작업에서 중요한 것이 전자기기와 전원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작업 중 쇼트가 나서 회로나 부품을 고장낼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첫 번째로 할 일이기에 배터리와 메인보드의 전원 연결 소켓을 분리합니다. 전공이 전자공학인지라 이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 같이 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는 것처럼 늘 방심은 금물입니다.


이제 몇 가지 케이블을 분리하고 배터리를 분리해야 하는데 참 힘들게 만들어 놨습니다. 배터리를 접착 테이브로 바닥에 붙여 놓아서 이걸 떼어내는 게 가장 고 난이도의 수술작업입니다. 오늘 수술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배터리 구매 시 동봉해 준 헤라를 배터리 바닥 쪽에 조금씩 힘을 줘가며 조심조심 떼어 냅니다.


군에서 총기 손질을 할 때 분해 후 다시 조립할 때 역순으로 조립한다고 했던 것처럼 사실 모든 것들을 분해한다는 것은 역순으로 다시 조립해 나가야 합니다. 새로 구매한 배터리를 장착하고 전원 선을 연결한 후 나사들을 조립하고 난 후 전원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수술을 마무리합니다.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은 수술의 성공적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이지만 단순히 컴퓨터가 켜지는 것만으로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컴퓨터가 부팅이 완료된 후 업데이트 하라는 메시지가 사라져 있어야 하고 하드웨어 정보에서 배터리 사이클이 1이 되어 있어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수술이었기에 아무런 문제 없이 기대했던 대로 잘 작동을 합니다만, 수술 후 정기적인 진료를 통해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몇 개월을 사용하면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하기는 해야 합니다.




오랜만에 이런 자가 수리를 진행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의 몸도 마음도 세월의 앞에서는 무너지기 마련이라 의료의 도움을 받아 치료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생명연장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것은 업그레이드가 아닌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치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도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를 해서 기능을 더 좋게 만드는 것처럼 조금이나마 생명연장을 실현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은 시간이 지나고 지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기능들이 약해져 가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내 생에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를 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군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업그레이드를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새로운 것을 익히는 배움을 통해서 조금 더 지적이고 똑똑한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노력들로 업그레이드가 되기는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결국 나에게 주어진 수명 안에서 미래의 에너지 자원을 끌어다 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미래의 나의 에너지를 현재로 가져와 사용을 하게 되면 결국 기대 수명은 줄어드는 것이라고...

세상을 빛낸 학자들이, 기술자들이 그리 긴 삶을 영유하지 못했던 점들이 이런 생각들을 뒷받침해 줍니다.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우리지만 새로운 것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늙어가고 조금씩 약해져 갑니다. 그래서 신체적인 것도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열심히, 꾸준히 운동을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업그레이드를 위한 새로운 것 같지만 새롭지 않은 계획을 세우는데 그중 건강에 관한 것들이 꼭 들어 있고 저도 늘 그랬습니다. 올 한 해 계획한 운동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덕분에 다가오는 새해에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상태가 나빠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현상 유지를 위한 운동은 꾸준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것이고 그 다짐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설상 그것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업그레이드해 보려는 노력들이 녹아 있고,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고 믿어 봅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임을 부정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건강해야 일도 하고, 놀고, 먹고, 잘 자는데 그러려면 기본적인 체력을 갖춰야 합니다. 각자의 나이에 맞는 체력관리 너무 무리하여 오히려 건강을 해치지 않는 건강 관리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하듯이 기본기를 갖춰야 업그레이드도 가능합니다. 한 계단, 한 계단 그리고 한 단계, 한 단계를 넘어서는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단계들을 넘기 위해 너무 무리하면 중간에 멈추게 되고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기에 현재 내가 가진 능력을 잘 파악하고 조금 더디고 답답하다라도 천천히 가다 보면 목표로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업그레이드가 아닐까 합니다.


건강뿐만 아니라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어떤 일이든 그 목적지로 가는데 거쳐야 할 과정들이 있고 그 과정들을 너무 무리하거나 속성으로 빨리 해 치우려는 생각과 행동은 결과적으로 목적지에 더 늦게 도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설사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더라도 그 목적지가 끝이 아니라 다음 또 다른 목적지로 계속 단계를 넘어서야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느리더라도 천천히 정석대로 가는 것이 세상을 더 오랫동안 영유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그게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려 봅니다.


어쩌면 삶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은 그 현시점에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어 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내가 과거에 나를 보며 원망하지 않는 그런 삶.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올 한 해도 자신의 건강, 지식, 부와 명예 등 무엇이 되었든 그 목표에 도달하려는 업그레이드를 위해 열심히 살아오신 작가님들에게 올 한 해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리며, 내년에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는 작가님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빠르지 않게 너무 늦지도 않게 그렇게 건강하게...


누군가에 의한 나의 업그레이드는 그리 오랫동안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부분을 부모님들이 맞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업그레이드는 그보다는 더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확실한 건 우리는 늘 오늘보다 업그레이드된 내일을 꿈꾸고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며 살아기기 때문에 더 오랜 기간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12월 31일의 저와 작가님들은 어제보다 더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23년 한 해 너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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