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라라
경험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축적된 경험으로 내일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경험이라는 것은 그 시점에만 유효할 수도 있고, 수년간만 유효할 수도 있다. 물론 영구적으로 유요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삶을 돌아볼 때 그 경험이라는 것은 영원하지도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았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대부분 그 시절에나 유효했던 것이고 시간이 지난 후 지금에는 쓸모없는 것이고 그저 내 삶의 발자취로만 남아 있다.
나는 33년간 회사를 다니며 기록했던 수첩들을 버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과거의 시간이 적신 수첩들을 뒤적이다 보면 그 기록의 주인공이 나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과거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새로운 것들로 채워 넣으며 잊혀간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잘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수첩에 남겨져 있고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 경험들이 그때는 소중한 일이었을 것이고 그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살았었다는 증거 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잘 살아가는 것은 지금 주어진 이 순간에 집중하고 과거와 미래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나간 과거의 것들을 지금 현실에 가져와 봐야 맞지 않는다. 30년 전에 입던 옷이 아직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지금 입고 다니기에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유행이라는 것은 돌고 돌아 언젠가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것을 현재에 가져오면 낯설고 어색함이 묻어날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사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든 세상을 중심으로든 내 주변에 펼쳐진 것들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늘 불안에 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들은 모두 미래에 펼쳐질 미지의 세상에 대한 것이다. 내일, 모레, 일주일 후, 한 달 후, 1년 후... 짧은 시간 안에 대충은 어떻게 살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삶에는 언제난 변수가 발생을 하게 되고 그 변수들로 인해 갈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어쩌면 그 변수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들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다가올 시간들 중에 다가올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을 그때그때 풀어가면 되는데 우리는 미지의 변수를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오늘, 지금 이 시간은 쓸데없이 흘려보내고 그렇게 보낸 시간들에 후회라는 것을 가져온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세상이 물들 때 같이 물들어 가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이고 거기에 조금만 나만의 색을 강조할 수 있다면 더 잘 살아가는 삶이 될 것이다. 세상이 물들 때 물드는 것은 시대적 사회적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이고, 나만의 물을 들이는 것은 그 속에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주체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오늘 세상이 노란색으로 물들었다면 그에 맞춰서 같이 물들고 내일 붉은색으로 물들었다면 그에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시대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일은 또 다른 색으로 물들겠지만 어떤 색으로 물들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내일은 변하는 색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에 세상에 가진 색보다 조금은 짙게 조금은 옅게 만들면서 나를 만드는 시간으로 소비해야 한다.
과거 수첩 속의 나는 그래도 그때그때의 세상에 잘 물들며 살았던 것 같다. 물론 내일을 걱정하며 그런 일 때문에 오늘을 소비하며 살았었을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도 그 시대에 흐름과 색깔에 맞추며 살아왔던 것은 분명하다. 낡은 수첩 속에 기록된 것들 중 기억이 나는 것들은 대부분 고생을 많이 했던 하루하루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 시간 속에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적이다.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을 하지만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해 보면, 다시 돌아가도 그때는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때는 지금처럼 이런 생각을 할 만큼의 여유를 갖지 못했었고 그만큼 성숙하지도 못했었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편이었고 미래를 고민할 만큼의 생각이 깊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미련하게 한 직장을 30년 넘게 다녔었던 것 같다.
모든 일들이 지나고 나서 후회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그때 진작 알았더라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과거의 나는 그때의 삶을 살기에도 바빴고 지금의 나는 여유가 생겨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뿐이다. 과거를 돌아보다 보니 후회가 되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세상이 물들어갈 때 적당히 같이 물들어가고 가끔 이렇게 살아온 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같은 것으로 색깔을 다르게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빠져나간 만큼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며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세상에 물들며 나만의 색을 덧칠하는 삶이 될 것이다. 그저 오늘 칠해야 할 색을 칠하며 내일 칠해야 할 색은 생각하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