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머리카락 꽃으로 피어나다.
걱정은 흰 눈이 되고
걱정거리가 있는 삶은 그래도 걱정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지 않을까?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살면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과연 그게 좋은 삶일까? 걱정 없는 삶은 무료하지 않을까?
오늘도 미끄러운 눈길에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눈이 와서 회사에 늦을까 걱정하고 추워진 날씨에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걱정을 한다. 미끄러워진 도로 때문에 교체해야 할 타이어를 바꾸지 않으면 사고가 날도 모른다는 걱정, 딸아이가 수시에 합격을 해야 하는데 계획처럼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지만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에 한숨을 내뱉는다.
잘 풀리지 않는 회사 일들로 하루 종일 걱정을 하고 홀로 풀어 갈 수 없는 걱정은 동료들과 나누며 실마리를 풀어간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이 거리에 쌓인 흰 눈 보다 희지 않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 본다. 그래도 이렇게 걱정할 거리가 있다는 것으로 삶을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겠지.
내게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그 일을 이끌고 나갈 능력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걱정거리들을 하나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걱정들은 검은 머리카락을 흰머리카락으로 물들이며 세월의 흔적을 새긴다.
걱정거리들은 흰 머리카락 꽃으로 피어난다.
오랜만에 야근을 하고 돌아가는 길, 눈이 내려 거리에 가득한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다.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 하루가 헛되지 않았었지만 거리에 쌓인 눈처럼 내일로 미뤄 쌓인 걱정거리가 머릿속으로 맴돌자 나도 모르게 또 한 숨을 내 쉬어 본다. 그 한 숨은 차가운 공기가 되고 들이 마신 차가운 공기가 싸늘함을 더 한다.
오늘 나의 하루라는 시계는 나의 걱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잘만 흘러갔다. 그래도 걱정거리들 덕분에 무료한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