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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오필리아노 Nov 29. 2024

끝과 시작

겨울이 아니길 바란다.

땅 위에 내린 눈들이 다 녹기도 전에 또다시 눈이 내려 쌓이고 쌓이기를 반복한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며 아직 미련을 두고 남아 있던 가을의 끝자락이다.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시기.

계절뿐만 아니라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 뉴스 기사에 대기업 임원들의 인사이동들로 지면을 채운다. 누구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했었지만 물러나야 할 때는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시작과 같다. 다른 계절과 다르게 더 춥고 시리게 다가온다.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는 직원들은 지금보다 더 추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란 걱정들을 쏟아내며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옳다는 것에 동의를 한다. 그래서 구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또다시 새로 부임하는 대표로 인해 각 부서의 사람들은 새로 부임한 보스에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고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보고 내용을 정리하고 작성하는 것으로 겨울을 나게 된다. 그 보고의 내용으로 더 추운 겨울이 되느냐 따뜻한 봄이 되느냐도 결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는 것을 반복하지만 새로운 것이기에 늘 서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람에게 딱 맞는 옷을 입혀 줄 수는 없다. 새로운 것이 다가올 때 우리는 새로움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고 헤맬 수밖에 없다.


반면 새로운 것에 밀려나는 것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하게 지워진다. 특히나 회사의 대표가 물러날 때 직원들에게 한통의 짧은 메시지를 남겨 두고 초라하게 떠나게 되는데 세상이 참 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떠나는 사람에게 추운 겨울을 더 춥게 만드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 고위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올해는 유난히도 많은 분들이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것이 매년 그렇게 반복될 것이고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386세대의 끝물에 걸쳐 있는 사람들의 퇴직이 시작이 되었다. 퇴직자들마다 각자의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퇴사를 하거나 임금 피크제로 갈아타게 되는데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금 피크제로 넘어가지 않고 퇴직을 하고 있다.


그들의 현 직장에서의 끝을 몇 개월부터 준비를 한다. 어떤 분들의 퇴직 후 새로운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백수로 살겠다는 사람들까지 다양하지만 퇴직이라는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심정에는 허탈함, 공허함 같은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후련함도 있겠지만 100세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퇴직 후에도 많은 날들을 살아가야 하기에 후련함보다 다시 시작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걱정들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회사 안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그 무언가는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올해 그렇게 6명의 선배들을 보내고 나서 우리는 그들을 까맣게 잊었다. 물론 그들도 우리를 더 까맣게 잊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소식을 듣기가 어렵다. 가끔은 퇴직 후의 삶에 대해 물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선뜻 연락도 하지 못한다. 분명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것에 감사하라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게 다가오는 늦은 가을의 끝은 아직 몇 해가 더 남기는 했지만 그 끝에서 다른 시작으로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직은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란 눈앞에 닥치지 않고서 계획적으로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끝, 시작. 어디에 서 있던 우리는 따뜻함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람은 정말로 하고 싶어서 원하는 바람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상황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오랜 직장 생활을 하다 떠나는 사람에게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은 망망대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우연히 또는 운 좋게 따뜻함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시간 힘들게 살아오면서 지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 선택하고 싶은 것은 쉼 일 것이다.


성격상 쉬고 노는 것을 오래 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많은 고민과 고뇌를 하며 방황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해 온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고, 새로운 일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것이 젊었을 때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다를 수 있지만 그런 것 하나쯤 지니고 있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겨울은 더 차가운 겨울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허공 위로 휘 날리는 눈송이 들도 자신이 만나게 될 세상에서 물이 될 것은 모르고 땅 위에 내려앉듯이 그렇게 나도, 나와 같은 사람들도 영문을 모른 채 어떤 시공간에 놓일 것이고 그곳에서 펼쳐질 변화에 당황해할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상황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 공간에 펼쳐진 것들에 적응을 하게 될 것이고, 적응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공간을 찾아 떠날 것이다. 문제는 나이 많은 사람을 받아 줄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 열심히 만들어 놓은 자산이라도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터를 만들고 가꾸어 갈 수 있겠지만 어디 그런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물음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은퇴할 때까지 가정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정말 가진 것 없이 밀려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은 여생을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연금을 수령의 시기도 점점 멀어지고 있기에 겨울이 시작되고 계속 겨울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언젠가 나에게 다가올 오늘이 그날 이후 삶이 추운 겨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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