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억압했던 이는 나였었다.

꿈의 대화

by 노연석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이 있더라도 여러 가지 상황이 마음 편하게 그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늘 눈치를 보며 살았었다. 일찌감치 사회로 발을 내디뎠고 부모님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가면서도 어떤 일들을 할 때마다 내가 이일을 해도 될까라는 생각에 발목을 잡혔던 것은 언제나 부모님이셨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도 그랬었다. 한편으로는 그분들에 여유로운 삶이라는 것은 죽는 날까지 사치라는 생각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운명이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어린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무언가 사달라고 졸라 본 적이 거의 없다. 몇 번 거창한 것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돌아오는 것은 안된다는 말뿐이었기에 무언가 바라는 삶을 나와 거리가 멀다 생각하며 살았다. 사실 삼시 세끼 먹여주고 학교도 다니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고 이렇게 잘 살 수 있도록 성장시켜 준 것에 감사할 일이다. 그때 부모님에게 변수였던 나는 늘 걱정거리이고 삶에 짐이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랐었다. 그 생각들은 기억의 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난 무언가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적이 없고 그렇게 아직도 살고 있다.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하며 살아오기는 했었지만 상황이 그래서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 나도 그래야 했고 어쩌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생각 속에 머물다 연기처럼 사라지고는 했다. 이제는 부모님이 아닌 내가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고 놓고 있는 것이다. 내적 갈등 그 안에 선과 악 언제나 검정 깃발을 든 친구의 손을 들어줬다. 잠들어 있던 기억이 깨어나 결정을 방해하고는 했었다.


20대 초반에는 더 그랬었다. 회사의 동기들과 놀러 다니는 순간에도 취미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시골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개입을 하곤 했었다. 부모님은 먹고살기 바쁜데 내가 하는 행동들이 모두 사치인 것 만 같았고 그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수도 없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조금 과감하게 내 인생을 살아 보자며 실천을 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개입했던 것은 잠들어 있던 기억 깨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 대는 삶을 살았고 고착화되어 버린 생각과 나도 모르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긋고 그 위에 벽을 쌓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밖에 살아올 수 없었던 것은 대화가 없어서였다. 어떤 상황들과 마주쳤을 때도 부모님과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식사 자리에서 말을 하지 못하던 시절 침묵은 금과 같았고 괜히 말을 꺼내면 한소리 들을 뿐 가만히 있는 것만 못했었다.


언젠가 한번 고등학교 2학년쯤 어머니와 짧은 시간이지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학교 생활에 대해 물었고 나는 넘쳐나는 봇물처럼 말을 쏟아내었다. 어머니도 장단을 맞춰 주셨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 외의 대화들은 모두 학교 생활과 관련된 준비물을 사야 한다던지. 시험을 엉망으로 봐서 부모님의 도장을 받아와야 한다던가? 그런 사무적인 것들 외에 없었다.


사실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부모님과 뭔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바쁜 삶에 피곤함을 더하는 일이고 이야기해 봐야 거절이라는 단어가 돌아올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었다. 마음의 문을 닫은 건 부모님이 아니라 나였던 것이다.


조금 더 많은 대화를 했더라면 머릿속에 이상한 기억을 새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이고 그 허상에 사로잡혀 긴 세월을 살아왔다. 아직도 그 흔적들은 남아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유효하게 작용한다.


내 어린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 오면서 비슷한 상황은 다시 연출이 된다.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했다. 물론 어린 시절 새겨진 상처만큼 그 깊이가 깊지 않고 그 무게도 가볍지만 가끔 그 깊이가 같은 날은 있었다. 그 생채기들을 치유할 수 있었던 건 대화였다.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아내도 나도 가끔 발생하는 충돌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싸우고 난 후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지난 상황에 대해 화해의 물고를 트고 대화를 한다. 아이들과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새싹들이 돋아나고 커져갔다. 사소한 일이 얼굴을 붉히는 시발점이 되지만 덕분에 다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시간이 만들어진다. 그러게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고 이해하게 된다. 배려하게 된다. 마음에 고착화되어 버릴 상처가 되지 않을 만큼의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아쉬운 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와의 대화가 없었다는 것, 술 한잔 기울이며 취기에라도 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다는 것. 정확하게는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했었다는 것이 지나고 나니 가끔 가슴을 쓰리게 한다. 가끔 꿈에 나타난 아버지는 늘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사라지곤 하셨다. 내게 수다를 떨 시간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이제 꿈에서 조차 만나는 일이 더 드물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트라우마. 내가 가진 트라우마는 아주 작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만한 그런 것이지만 그렇게 만들고 만들지 않고는 혼자서 생각하고 결론을 내 버리는 것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풀 수 있다면 트라우마라는 것을 만들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헤아려 주지 않는다.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화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대화를 하는 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답을 찾아간다. 그리고 답을 주는 것은 상대가 아닌 자신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야기를 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지러웠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어간다. 고민이 있을 때 대화를 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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