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잃어버리지 않기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며칠만 지나면 나라에서 인정하는 성인이 된다.
아직도 우리 부부에게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들과 같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은 이제 독립된 객체다.
어릴 때나 커서나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벌어지는 실수나 사고들을 이제 본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성장을 하고 나니 후련함 보다 공허함이 더 크다.
갑자기 아이들이 사라진 느낌이 들고 아이들을 키우며 지내왔던 시간들은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진 듯 잃어버린 시간들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지난 그 시간들 동안 나와 아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범위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최선만큼 아이들은 최선의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 또한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가 보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들 그 속에 조금의 노력을 더 했었더라면 우리도 아이들도 조금은 상처가 적지 않았었을까?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고 노력을 하다 보면 그 근처에라도 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 근처에서 조금 더 한발 더 나아가면 바라던 바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하여 잃어버린 시간들의 기억들을 바라보며 원망만 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한 걸음에 다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더해져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둔 채 걸음을 멈추고는 한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아직도 수 없이 많은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멈춰서는 것일 거다.
아내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라는 물음에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며 ”당신을 만났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라고 말해 줘도 될 것을… ”과거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으니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마 “라고 말하고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현실에 충실해 “라는 말을 덧붙여 말했다. 과거로 갈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를 추억할 수 있다. 과거는 추억하라고 남겨진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전히 나에게는 잃어버린 시간들이다. 아내는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다시 잘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의도로 이야기를 했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 상상으로라도 다시 살아 본다는 것은 가짜지만 잃어버린 시간들을 돼 찾아오는 시간이 될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냉정하게 아내의 질문에 회피를 했던 것 같다.
이제 과거의 시간들 속에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나와 닮은 존재들이 유영하고 있다. 그 과거의 존재들의 삶을 바꾸어 지금의 나를 바꿀 수도 없다. 잃어버린 시간들은 내가 살아온 과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가 가진 지식으로 살아 줬다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그랬었다면 지금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망상 때문 일 것이다. 과거의 나는 세상 물정 모르고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그저 평범함 회사원으로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안전가옥이라고 생각을 하며 그 안에서 조용히 머물며 살았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그 시점.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물론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평생 읽지 않던 책장을 넘기면서 시작되었고 생각의 변화가 생긴 것도 책을 읽기 시작한 후부터이지만 그 생각을 더 확실하게 붙잡아 두는 것을 글쓰기였다. 아직도 나의 글을 거칠고 재미없고 쓸데없는 기교를 부릴 때도 있지만 그저 글을 쓰는 행동의 시작만으로 나에게 많은 변화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고 과거의 시간들을 더 이상 잃어버린 시간들로 내 버려두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시간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 속에 머릿속에 맴돌 던 오만가지 생각들 중 번뜩이던 생각들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았던 시절에는 잃어버린 시간들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 보다 현저하게 적기는 했지만 그때도 그냥 흘려보냈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한동안은 그냥 흘려보냈었다.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그 소중한 기억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포기하고 흘려보냈다.
글쓰기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중요한 순간, 중요한 아이디어, 중요한 문제 해결 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 주는 삶의 도구이고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멋진 글을 쓰려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작가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가버린 과거가 의미 없이 남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현재를 기록하여 과거의 나를 가족을 내 주변 사람들과 이 사회의 모든 것들이 의미 있게 남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렇게 그저 글을 쓸 뿐이다.
가끔 책을 출판하는 작가님들을 보면서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나에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냥 스쳐지나 보낸다. 남들에게 읽힐만한 글을 쓸 재주도 없지만 잃어버릴 수도 있는 시간들이 잃어 버려지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난 글을 쓰는 목적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글쓰기를 도와주는 모임, 회사 그리고 책을 출판할 수 있게 해 주는 회사들의 이야기나 강연을 듣다 보면 책을 출판하려면 정말 많은 것을 알아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쓰인 글이 나의 글인가 출판사의 글인가 모르겠다. 내 글의 의도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쓰려던 글에 분칠을 되고 색깔을 입혀서 더 멋진 글이 되겠지만 내가 바라던 내가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의 기록이 오염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슬그머니 그곳에서 발을 빼기도 한다. 도움을 주는 그분들은 절실한 작가분들에게 희망과도 같은 분들이니 정말 훌륭하고 감사한 분들임에는 틀림없고, 글을 쓰려는 마음을 가지신 분들의 역량을 단시간에 빠르게 올려 줄 수 있고 간절함을 가진 분들께는 인생에 나침반과 같은 존재임에 동의한다. 다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를 뿐이고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고집이다.
조금 더 빨리 글을 썼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란 후회를 가진다. 젊은 시절의 기억들은 이제 모두 희미하다. 20대는 철부지로 살면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이 살았다. 30대는 정신없이 일하느라 건강도 잃고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도 잃고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다. 40대는 나이만 먹었지 또 의미 없이 살았다. 아니 그래도 40대 후반에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50대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지금과 같이 후회를 하는 것은 소중한 시간들이 정말 많았을 텐데 이렇다 하게 떠오는 기억들이 없다는 것이다. 20대 아니 30대부터라도 글을 썼었다라며 그 시간들이 잃어버린 시간들이 되지 않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글이 아니라 사진 속에 많은 순간들을 기록했지만 사진은 그 순간의 모든 기억을 다 떠올리지 못하게 한다. 그 순간에 얼마나 행복했고 가슴 벅찼고 미칠 것 같이 좋고, 싫었었는지를 느낄 수 없다. 그 순간의 스냅숏과 함께 글을 기록했더라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진 기억들을 대신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만을 기다렸던 가족들과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가족만의 온전한 시간을 가릴 수 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난 여행지에는 온갖 낯섦이 가득하고 아이들이 없었다면 밥 한 끼 사 먹는 것도 불편함으로 가득할 여행이었지만 이제 머리가 커진 아이들, 누가 언니고 동생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비슷하게 성장한 아이들이 있으니 여행이 한결 수월해졌다. 낯선 도시에서도 우리보다 더 주저함 없이 도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서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가진 불안함이 문제라는 것도 알아간다. 마냥 아이로만 생각하던 생각이 전환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젊은 이들을 따라 걷고 또 걷다 보니 좀 괜찮아졌던 무릎에 통증이 다시 찾아와 이젠 이런 무리한 여행은 피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가고 두 아이가 꼭 붙어서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있으니 흐뭇해하며 아이들이 저렇게 잘 커줘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그렇게 잘 자랄 수 있게 해 준 아내에게도 감사하고 나 자신에게도 잘했다는 칭찬을 해 본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 여행을 떠나니 생각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어리기만 한 시절에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 이런 감정들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번 여행은 몸에 다소 무리가 오기는 했지만 온전하게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여행이 되어 주었다. 이 번 여행은 잃어버리지 않은 순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