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을 알기에 이해해 주련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저녁 시간이 되면 사라 집니다. 친하게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 5인방이 있는데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면 뿔뿔이 흩어져 얼굴 보기 힘들어진다는 핑계로 매일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많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술집을 향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첫 번째로 술집을 방문하던 날, 12월 31일 저녁부터 꽃단장을 하고 술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1월 1일 00시가 되자마자 술집에 발을 들였습니다. 다음날 술이 마실만 하냐고 물어봤더니 맛도 없는데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던 아이가 그다음 날도 술자리를 만들어 사라 졌습니다.
두 번째 술을 마시던 날은 새벽녘 아니 거의 아침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그날 퇴근을 하며 일찍 다니라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그다음 날 출근해 일을 하고 있는데 딸아이로부터 장문의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세 번째 술을 마시러 나갔던 날은 저의 한마디가 신경이 쓰였었던지 일찍 귀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 세 번째날 친구들과 먼저 집으로 돌아온 날 많이 속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하하 호호" 거리며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집으로 돌아와야 하니 아빠가 많이 원망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먼저 톡을 하는 일도 없고 톡을 하더라도 이모티콘만 보내고 글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메시지들이었는데 스마트폰 한 화면을 다 채울 만큼 가득 담긴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며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스무 살이 다 되었지만 아직 엄마, 아빠에게는 아기인 듯합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더 그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 엄마는 "그럼 아빠한테 메시지를 보내봐"라고 말했지만 "아빠는 보수적이라 허락하지 않을걸?"이라고 엄마에게 이야기했지만 어떻게든 허락을 받겠다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이지요.
그 메시지는 뻔한 스토리 임에 틀림이 없고 나중에 읽어 보기는 했지만 짐작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답변으로 보낸 메시지는 "뭘 이렇게 까지…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다녀"라고 보냈었는데, 딸아이는 그게 허락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엄마가 보고 "허락한 거네"라고 말을 해 주자 그날도 여김 없이 사라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 또한 그 시절에는 친구들이 최고였고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부모님의 생각은 하지 않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졸업식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한잔 하느라 부모님과 식사도 못하고 일터로 향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인가 더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만 부모의 마음엔 항상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있기 마련이지요. 피가 펄펄 끓어오르는 나이. 그 정도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빠가 아닌데, 그렇게 보수적인 아빠가 아닌데, 아이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시간이 지나니 그렇게 술자리를 갖는 것이 돈도 많이 들어가고,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시들어졌는지 그 횟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끔씩 빛의 속도로 사라지기는 합니다. 며칠 전에도 그렇게 사라졌는데 몇 시에 들어왔는지 모릅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자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무엇을 한다고 해도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쁜 행동을 제외하고는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인데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이유는 있겠지요.
만약 제가 보수적이라면 핑계를 댈 만한 구실은 부모님들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세대의 부모님들 중에 보수적이지 않은 분들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적어도 제가 살아왔던 시골마을의 모든 어른들은 보수적이었으니까요. 그 속에서 자란 내가 보수적인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어도 몸에 베인 보수, 머릿속에 각인된 보수는 남아 있었을 수 있겠다는 것에 인정하게 됩니다.
그즈음 저는 술과의 거리를 멀리 해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자리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거나 사이다나 콜라로 대신하며 술 취한 사람들 속에서 맨 정신으로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도 알아 갑니다. 그러면서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술을 마시게 되었으니 나라도 술을 멀리 해서 다행이지 않느냐고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정말 딸아이가 매일매일 붙어 다니며 수다를 떨던 5인방이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뱃돈도 받았겠다 또 신나게 달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지만 그 시간이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뭐든 해 보고 후회하는 것이, 해 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더 현명하니 열심히 놀고 즐기고 공부할 땐 공부하고 그렇게 살아가기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사유로 멀어질 수도 있는 친구들이니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서 추억을 쌓아야지요.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라도 각자가 가진 생각과 사람을 만나는 기준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큰 아이는 이렇지 않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째와 같이 절친으로 지낸 친구들이 없었고, 왕따는 아니었지만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사람을 만나도 취향이 같은 사람이라면 낯선 사람과도 만나러 다니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둘째처럼 술을 마시러 돌아다닌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절실한 장문의 메시지 보낸 딸아이는 그 메시지 속에 약속이 담겨 있었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인 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절절한 메시지를 보내고 아빠를 보수적인 사람으로 몰아가기까지 해 놓고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아이가 약속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트집을 잡을 생각도 없습니다. 이제 성인이니 자신이 내뱉은 말은 알아서 책임져야겠지요.
얼마 남지 않은 딸아이의 화려한 외출, 그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 속에 계속된다면 살맛 나는 인생이 될 거라 믿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것이 많은 나이 스무 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면서 젊은 날을 좋은 기억들만 가득 쌓아가며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보기를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