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프레임

뜨거워지고 차가워치기

탈출

by 노연석

언제 가슴이 뜨거워지고 설레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안전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마치 침몰하고 있는 배에 공기가 남아 있은 에어 포켓과 같은 공간이다. 잠시 동안은 안전하겠지만 배는 머지않아 완전히 가라앉고 말 것이기 때문에 이 공간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


적당히 뜨거워지고 차가워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지만 언제부턴가 23도의 온도 안에서 뜨거움도 없이 차가움도 없이 살고 있었다.


하지 않았던 것을 해보고, 하던 것을 멈추며 변화를 주려는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다루고 있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뭐라도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생각에만 머물고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꼼짝하지 못하고 첫걸음도 내딛지 못한다.


이제 어떤 것을 해도 잘 느껴지지 않은 것은 나이와 함께 무디어진 감각과 세포들 때문인가라며 회피해 보기도 한다.


가끔 드라마를 보며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보면 뭔가 문제가 있기는 한 것 같다. 뜨거워져야 할 곳 뜨거워지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발현이 되고 있는 것은 나이에서 오는 서글픔 인지.


이 겨울 거리를 걸으면 어느새 차가워지는 손은 남들보다 더 차가워지는 것은 마치 카멜레론이 환경 변화에 맞춰 보색을 띠는 형색과 같지만 너무 쓸데없다. 따듯하게 열을 내줘야 할 순간에 역행한다.


뜨거워지고 차가워지기를 반복하지 않으니 내 몸의 에너지 상태는 늘 80% 충전된 배터리와 같기도 하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고 채워 넣는 과정을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지만 늘 어떤 운동 에너지도 발생하지 않기에 더욱더 위험 수준의 상태로 가고 있다.


안전한 공간에 갇혀 생각의 챗바퀴만 돌리며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 숨 막히는 이 순간에 서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탈출이라는 방법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동안 몇 번의 탈출에 실패가 내게 가져가 준 위태로움 일지도 모른다. 그 실패들 뒤에 난 포기라는 것을 얻었으니 말이다.


이만큼 했으면 되었다. 이 나이에 누가 나를 반기겠는가? 왜 이 사람들이 나를 몰라 주는 것인가?라는 상황들에 손을 들고 난 후 그럼 나도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지내자라는 물이 들었던 것 같다.


생각을 생각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고 행동으로 만드는 나를 만들고 습관으로 만들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실패를 하더라고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 그 첫걸음 없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가속도가 붙어 걸음이 편해지고 조금씩 목적지에 가까워질 것이다. 미온수와 같은 나의 감정과 감각의 세포들이 다시 깨어날 시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Shooting the Pulit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