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여유가 있어야 할 듯한 연말연시. 시간을 내기가 빠듯한 상황이라 전시 관람을 놓칠까 조마조마했었다.
지난 일요일을 놓치면 기회가 더 이상 없기에 게으름을 물리치고 예술에 전당으로 향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서 관람을 시작하려고 출발을 했는데 주차를 하고도 시간이 여유가 있어 밖으로 나가 보니 전시회 간판이 나를 환영하는 듯하다.
사실 카메라에서 손 놓은 지 오래되어 그만큼 거리도 멀어진 상태라 관람 신청을 해 놓고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었고 어쩌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간 사진전을 관람하면서 그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하지 못했었던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진을 수도 없이 많이 찍어댔지만 내가 찍어왔던 사진들은 남들을 따라 하거나 보기 좋은 사진을 얻으려는데 목적이 있었기에 사진에 어떤 이야기도 없었다. 물론 그 사진들을 돌아볼 때 추억을 되살리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땐 그랬었구나라는 과거로의 회상을 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래 사진처럼 인증샷을 남기는 것과 같이 누군가에게 과시하려는 의도가 담긴 그런 사진들을 찍어 왔던 것이다.
관람의 시작.
관람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지만 맨 뒤로 물러나 입장하기를 기다리다 사람들이 다 들어간 후 입장을 했다. 친구들, 연인, 가족 그리고 혼자 온 사람들도 있고 어떤 경로로 이 사진전을 관람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 사진에 관심이 대단한 사람들일 거다. 관람을 하는 동안 관람객들은 모두 진지하게 사진을 감상하고 부족한 부분은 설명으로 채우고 있었고 나 또한 물론 그런 시간으로 관람을 채워갔다.
사진과 함께 사진에 대한 설명들이 잘 되어 있어서 사진만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안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친절하게도 사진에 대한 설명을 잘 달아 놓은 것인가?를 생각해 보니 작가의 생각,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사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등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도가 왜곡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본다. 왜 퓰리처상을 받았는가에 대한 반박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도 있지 않을까? 란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그래서인가? 사진을 보기 전에 설명을 먼저보고 사진을 보니 한 장의 장면이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사진이 생각보다 많아 관람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가볼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낯선 장소들의 장면 속에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했던 사진을 찍으며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조금 더 늘어놓으면 이런 것이다. 사진은 단순한 장면을 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들처럼 가치를 가지려면 사진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 한 장면에 불과 하지만 그 장면이 있기까지의 서사, 그럴만한 이유, 사연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사진작가들처럼 전문 직업으로 하지 않기에 이야기가 없다 하더라도 사진이 사진이 아닌 게 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런 사진을 찍어 봤던가?를 생각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사진들 중에는 의도를 가지고 오랜 기다림 속에 얻어낸 사진도 있고, 우연히 얻어낸 사진도 있었지만 사진의 장면만을 보고 왔다면 사고로 인한 안타까움, 전쟁의 고통 등과 같은 단편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을 것이지만 사진의 설명은 장면을 아주 풍부하게 살려 내고 있었다. 어떤 사진도 그 사진이 찍히기까지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설명이 없는 장면만으로는 작가가 보여주려는 모든 것을 보여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관람을 하는 동안 사진을 찍을 수 없어 관람했던 모든 사진들을 기억에 담아 둘 수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전쟁 관련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맥스 데스포 작가의 사진이 마음에 남았다.
"주검이 되어 버린 시체 그 위를 덮어 버린 하얀 눈 사이로 삐져나온 손은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기도 같다."
많은 사진들이 있었지만 컬러의 시대로 넘어오기 전 흑백 사진들이 더 사진 속의 현실을 절절하게 표현되어 나의 시선을 이끌었다.
컬러를 담은 사진이 보다 현장감이 있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진이 주고자 하는 의도가 더 생생한 건 흑백 사진이 아닐까? 물론 대부분의 사진들이 즐거움보다 슬픔,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전시를 하는 동안 흑백에 더 매료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사진들은 어둡고 암울한 세계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 기자들의 마음이 들어 있다. 물론 우연히 찍은 사진도 있지만 그 사진이 세상에 알려지고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사진 속 장면들을 살려내어 퓰리처상을 받게 되었다고 혼자만의 결론도 내려 본다. 퓰리처상을 받으려면 장면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나, 그 장면을 담아야 했던 작가의 마음속 이야기가 들어 있어야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