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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송년회

회고의 시간

by 노연석

연말이 되면 자신의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송년회를 하게 됩니다. 벌써 회사 송년회는 진행이 되었고 동창, 모임 등 친분이 있는 사람들 간에 송년회가 남아 있습니다.


송년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이 했었던 송년회들은 먹고 마시며 거기에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들을 더하는 것으로 진행이 됩니다. 앞으로 마주해야 하는 송년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연말이 되니 올해는 특히 주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 변화를 맞이하다 보니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송년회를 한다고 해서 지난 시간들을 잘 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정작 나를 돌아볼 시간이 더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조용히 나만의 송년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전에는 이런 시간이 아니더라도 시간을 내서 템플스테이도 가서 조용하게 생각할 시간들을 갖기도 했었는데 점점 더 그런 시간을 가질 만한 여유가 사라지지고 좀처럼 나를 돌아볼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나만의 송년회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회고의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일, 매주, 매월 회고를 한다고는 했지만 잘 지키지 못했던 한 해였습니다. 회고를 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비되는 것도 아닌데 어떤 것이 걸림 돌이 되었었는지, 방해물들이 있었는지. 그럴만한 것이 없었는데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바쁜 삶을 살았거나 게을러져서 일 것인데, 아마 후자일 가능성에 한 표를 던져 봅니다. 알람을 맞춰 놓은 회고의 시간은 알람을 끄기 바쁜 손가락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못한 한 해였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제대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회사 생활, 그를 위해 소비하는 4시간의 출퇴근 시간으로 하루를 채우다 보니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여가 그리고 미래를 위한 시간에 투자를 많이 했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잠을 넉넉하게 잘 수도 없었고, 주말에라도 좀 쉴 수 있으면 좋은데, 주말이면 본가와 처가를 오가야 하다 보니 더욱더 나만의 시간을 많이 만들 수는 상황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어쩌면 욕심 가득해서 시간이 될 때마다 연습장으로 필드로 향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컨디션이 좋은 날이 없고 무리한 연습과 라운드로 인해 관절 마디마디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현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나는 나를 사지로 몰고 있는가란 생각에 이르게 합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느 뱡향을 가야 할지도 고민하지 않은 채 무작정 달리기만 했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을 하며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줄 만한 일이지만 그 칭찬을 나 스스로에게 한다는 것은 창피해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후회로 가득한 지난날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열을 내고 화를 내고 낙담하거나 포기하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나를 몰고 갈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만족하지 못한 삶은 욕심 때문일 것이고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 일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들을 다 성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이란 원래 하나를 성취하면 또 다른 욕심을 욕망을 갖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현실을 인정하고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정년이 다 되어가는 분들과 아야기를 하다 보면 미래가 암울합니다. 회사를 떠나는 날은 가까워 오지만 그 이후의 삶이 막연합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회사생활 하는 동안 배워 왔던 일들뿐 이후의 삶에서 그리 쓸모가 없다는 것과 그 외에 다른 무언가 잘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를 더 불안하기 만듭니다.


골프라는 운동은 여전히 돈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많이 써야 하는 운동이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사 자격을 취득하고 자격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족할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이제 걸음을 떼는 아기라고 인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회사 일, 올해는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 목표로 했던 일들을 대부분 마무리했고, 부서원들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동반 성장을 하고자 노력했으며 그 결실이 이제 발을 내딛는 순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은 일일뿐 퇴사를 하고 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34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으니 지겨울 만도 하죠. 그래도 아직 내가 하는 일들이 밖으로 나가서 쓸모가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 된 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기반으로 재능 기부를 할 수 있는 일들도 생겨나고 무언가 계속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나쁘지 않게 흘러왔지만 연초에 나 자신과 했던 약속은 잘 지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한 다짐과 실천이 부족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글쓰기도 게을러지고 책을 읽는 것에서도 좀 멀어지고 다시 제자리로 돌리는 것조차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능할 거라 믿어 봅니다.


가족들에게 언제나 부족한 가장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본가, 처가를 어느 해 보다 많이 다녀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르신들이 예전 같지 않아 자식들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진 덕분입니다. 이제는 자식들이 부모를 돌봐야 하는 시간에 접어들게 된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헌신하셨던 것만큼 부모님들께 잘해 드릴 자신은 없지만 시간 될 때마다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밥 한 끼라도 같이 먹으며 말 한마디라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봅니다.


이렇게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이고 많은 일들을 했지만 늘 한자리에는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아쉬움은 내년으로 이월해 버리기로 하고 혼자만의 회고의 시간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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