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변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알프레드 아들러>
타인이 삶이 아닌 내 삶을 위해 살아가기 위한 용기
우리 대부분의 삶을 뒤 돌아보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또는 내 의지대로 살아오지 못했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대학에 갔고 회사에 취직을 했고 부모가 반대하지 않을 만한 사람을 찾아 결혼을 해 살고 있다. 심지어 부모들의 욕심에 만족을 주기 위한 아이들도 낳았다. 뒷감당은 우리의 몫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모들이 해왔던 상황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설, 추석 연휴만 되면 노총각 노처녀들은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기를 꺼려한다.
"올해는 국수 먹게 해주는 거니?"
"철수네는 아들을 낳았다고 하더구나"
"손주 언제 보여 줄 거야!"
이런 현상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나는 저런 말들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어느새 똑같이 하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부모 세대에서 해 왔던 대로 우리 세대의 사람들도 똑같이 주관대로 주입을 하여 대부분 원하지 않는 것을 배우도록 강제 집행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이 이뤄주기를 바라고 그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아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시점부터는 부모의 주관을 아이들에게 심으려 하면 안 된다. 아이들의 자아를 혼란스럽게 하는 개입 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건 지금껏 우리가 가진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데 내 안의 욕심, 기대치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식들을 올바르게 성장시키고 험난한 사회에서 당당한 사회인으로 올바르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고 부모에 의지하는 삶을 버릴 수 있게 한다.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진로를 위한 상담도 하고 어떤 분야를 공부하고 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학교에서 선택지들이 빼곡히 적혀 있는 팸플릿이 제공된다. 4지선다여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선택지가 너무 많다. 선택지가 많을 경우 쉽게 우리는 쉽게 결정을 하기 더 어려워진다.
딸아이는 한 번도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몰라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난,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라고 이야기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모두 선택을 했는데 나만 못하고 있는 것에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팸플릿에 있는 수만은 선택지를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분야, 범위 내에서 어떤 것이 유망할지를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딸아이에게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나만 잘 아는 이야기 일 뿐이었다.
시간을 두고 딸아이는 고민을 하고 결정을 했다. 나는 무엇을 하라고 강요를 하지 않았고 결국 딸아이는 스스로 공부하고 하고 싶은 찾아 그 길로 결정을 했다. 만약 너는 이것이 유망한데 꼭 이 걸해야 한다고 주입했다면 평생 재미없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고 그 길로 가기 위한 공부가 잘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나를 원망하고 후회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실패를 하더라도 그만큼 실망도 후회의 크기는 작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갈지? 잠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언제까지 아이들의 삶에 관여를 할 생각인지? 죽기 전까지 아이들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삶을 마감할 것인가?
남은 삶을 나를 위해 살아갈 것인가?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온 대가는 돈도, 명예도, 자식들의 관심조차도 없는 비참한 노후를 맞이 하게 한다.
부모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자식들에게 베풀고 있는 무한한 지원 중단할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부모의 강요, 돈, 배경이 아니라 온전한 자아를 갖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투자 해 키워놓은 자식들은 늙은 부모의 삶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더 많은 것을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싸움의 소재가 되어 줄 물질적 유산보다는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게 할 정신적 유산과 잘못된 것을 포기하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남겨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보살필 용기를 끌어내기. 시작.
positive thinking & design thi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