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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OSIGNER Nov 02. 2020

디자이너가 본 스타트업 vs 대기업

그래 이제 시작이다


누구나 자기 고집이 있다. 내가 생각한 게 가장 좋다고 여기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이 흘러가길 바란다. 그러나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구체적인 수치를 근거로 의사결정을 한다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겠지만 디자인처럼 객관적 기준이 아닌 무언가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었다. 더 나아가 누군가의 기호를 고려한 디자인 작업을 고민할 때마다 보다 작은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든 적당히가 좋다 (출처:클래스 101)


그렇게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전보다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물론 그만큼의 책임도 늘어났다. 그렇게 3년을 보냈고, 올해 초 소위 대기업이란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9개월여 동안 업무를 하면서 디자이너 관점으로 두 환경(?)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스타트업, 대기업을 대변할 생각은 없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다.) 




스타트업 


말 그대로 이제 막 시작하거나 박차를 가하는 환경이다. 다들 될 거라는 기대감을 늘 가지고 일을 한다.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디자인팀 인원이 많지 않기에 어떤 업무를 맡아도 주도를 해야 하는 환경이다. 신입과 경력의 역할 차이가 거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신입에게는 조금 벅찰 수 있는 환경이다. 


OJT나 사수가 없는 경우도 많기에 모든 일을 혼자서 배워야 한다. 실제로 이런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곧 퇴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일을 잘할 거라 기대는 한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개발자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존에 개발과 디자인팀이 분리된 회사에서는 사실 개발자와 그렇게 마주 칠일이 없었다. 내 시안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는 분들이니 괜한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신경 썼었고 수정을 요청할 때마다 그렇게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반면 스타트업에서는 개발자와 정말 가깝고 친하게 지내게 된다. 더 이상 개발자가 갑의 위치가 아니다. 서로 끊임없이 요구하고 이야기하는 환경이 된다. 이게 가능한 건 가시적인 공통의 목표를 서로 잘 알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우리 꼭 그때까지는 배포해요) 서로 친하게 지내다 보니 디자이너는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개발자는 포토샵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css 참 쉽죠...응?



마케터분들의 창의력에 감탄하게 된다. 스타트업에서 이상한 생각을 하는 유일한 팀이 디자인팀과 마케팅 팀이다. 이벤트 기획, 데이터 트래킹, 그리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스킬까지 접하게 된다.  마케터들은 본인들이 기획한 업무의 성과가 궁금하고 디자이너는 본인 작업물의 반응이 궁금하기 때문에 서로 궁합이 안 좋으래야 안 좋을 수가 없다. 종종 말도 안 되는 이벤트 아이디어를 가지고 서로 물어뜯기도 하지만 개발자분들과 마찬가지로 공통의 목표를 서로 잘 알기에 서로 잘 지낸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본인이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거나,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디자이너라는 직책에서 다양한 걸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리브랜딩이 필요하면 로고 작업과 브랜드 가이드 작업을, 웹을 리뉴얼한다면 UI를, 콘퍼런스, 박람회에 참가한다면 배너부터 인쇄물, 굿즈까지 모두 만들 줄 알아야 한다. 회사의 주요 행사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는 것도 물론 디자이너의 몫이다. 


좋게 말해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지만 그만큼 허덕이면서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덕분에 포트폴리오가 풍성해진다. 적은 인원이 꽤나 큰 업무를 담당하기에 업무의 기여도가 상당히 높아진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획, 운영, 개선과 관련된 작업도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수 있다. 다만 포트폴리오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높다. 



어벤저스급 능력이 필요할 수 있다. (출처:designspectrum)


다양한 세미나, 교육과 솔루션을 경험하기 좋다. 대체적으로 스타트업은 본인 역량 발전에 상당히 긍정적이다. 간식을 제공하지 못할망정 외부교육에 대한 지원은 충실한 편이다. 본인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역량을 키우기 좋은 기회이다. 적은 인원으로 업무가 진행되기에 새로운 툴이나 솔루션으로 전환이 가능하고 늘 새로운 기능과 트렌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기업


말 그대로 사이즈가 스타트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팀 하나가 웬만한 스타트업 규모를 넘어서는 게 보통이고 엘리베이터에도 사람이 많고 구내식당에도 사람이 많고 어디든 사람이 많다. 매일 1층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 경우가 많으며 전체 몇 개의 조직이 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아직도 다 파악을 못하고 있다. (계속 못할 거 같다) 



대충 이렇게 생겼다 (출처:서울시 홈페이지)


우선 현실에 좀 더 눈을 뜨게 된다. 연봉이 스타트업 대비 높아지고 이전에는 듣기 힘든 상여금 및 각종 지원과 혜택들에 우선 기분이 참 좋아진다. 당장 매월 들어오는 돈이 엄청 달라질 거 같은 환상에 빠지지만 높아진 연봉만큼 높아지는 각종 세금을 첫 월급을 받고 나서 깨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간단하다고 생각했던 업무도 복잡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보안 PC의 답답함에 고개가 저어지며 인쇄, 스캔하나 간편하게 하기 힘들다. 위워크나, 패스트캠퍼스에서 제공되었던 서비스들이 그리워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디자이너라는 포지션 특성상 맥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 주기적인 보안 PC 확인은 필수다. (메일 확인용)



커피도 주고 시리얼도 주고



상대적으로 파워포인트 사용시간이 늘어난다. 기존의 경우 구글 슬라이드를 주로 사용하였기에 파워포인트를 쓰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직한 이후 모든 보고서, 화면 기획서, 발표가 파워포인트에서 진행된다. 스타트업과는 달리 하나의 문서를 공유하면서 작성하지않고 보고 시점까지 비밀스럽게(?)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고 시 임팩트를 위해..) 업무를 진행할 때 장표 작성 담당인을 지정하는 것도 스타트업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파워포인트를 많이 쓴다.


이거 없는 업무는 상상하기 힘들다


익숙함이 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문서의 양식, 보고 방법, 시행문, 기안 등등 업무를 위한 '틀'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며 이 '틀'이 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직 후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 발표를 참관한 적이 있는데 하나같이 텍스트가 넘치다 못해 깜지 수준의 슬라이드로 발표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일종의 '틀'이었다.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건 바라지도 않지만..


뒤쳐짐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 새로운 트렌드는 무엇인지, 새로운 툴은 어떤 게 있는지 스타트업에 있을 때보다 괜히 더 신경을 쓰게 되며 혹시나 다른 디자이너들에 비해 뒤쳐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걱정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는 스타트업의 경우 다양한 디자인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 두 번째는 조직의 규모상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있어 준비되는 시간, 과정이 상대적으로 많기에 보다 더디게 디자인 업무가 진행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개발자분이 그랬다. '회사는 망할 수 있어도 그 구성원은 망하면 안 된다' 그저 매일매일 찾아보고 기록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매일 보고, 추가하고, 수정하고



이제 갓 9개월이 되었을 뿐이다. 지금은 이렇게 적었지만 당장 내일부터 살인적인 업무가 시작될 수도 있고 갑자기 조직개편으로 디자이너들이 우글거리는 팀으로 발령날 수도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디자이너로서 한 가지는 그 어디에서 일을 하더라도 명확하다. 되도록 많은 것을 해보고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한다는 점.


나중에는 또 다른 생각이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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