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멸치무침, 멸치쌈밥
마시기: 유자 막걸리
놀기: 보리암에서 멋진 풍경 감상하기
1. 거센 노량해변을 건너
남해는 본디 섬이라 유명한 유배지였다. 지금이야 남해대교로 이어져 금방 다다를 수 있는 곳이지만, 예전만 해도 배를 타고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이 섬으로 들어가려면 노량해전으로 유명한 물살 빠른 여울을 건너야 했다. 배를 타고 유배지로 들어가는 많은 선비들이 이 곳에서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유배는 사실상 무기징역과 다름없어 왕이 풀어주기 전까지는 섬에서 나올 수도 없기에 도성에서 천리나 떨어진 이 곳으로 유배를 보내질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심란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남해대교를 건너 멸치를 먹으러 지족항으로 향했다.
2. 죽방렴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멸치
사실 멸치는 일 년 내내 잡힌다. 대신 어른 손가락만 한 큰 멸치는 봄에, 자잘한 멸치 볶음용 멸치는 가을에 잡히다 보니 멸치회는 오직 봄에만 먹을 수 있다. 요즘은 냉동 기술이 좋아져서 봄에 잡힌 멸치를 얼려놨다 일 년 내내 내놓는 집들도 꽤 있다.
멸치를 잡는 방법은 매우 다양해서 정치망, 유자망, 죽방렴, 낭장 등 을 사용해서 잡는다. 이 중에 쌈밥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멸치는 정치망과 죽방으로 잡은 멸치뿐이다. 유자망으로 잡은 멸치는 그물에서 멸치를 털어내는 과정에서 머리와 비늘이 벗겨져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멸치는 성질이 급해 올라오는 즉시 죽어버리므로 싱싱한 멸치를 맛보려면 남쪽 바다로 찾아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기장부터 여수까지 봄이면 어느 남쪽 바다에서나 멸치가 잡히지만 가장 예쁜 멸치를 맛보려면 남해로 향해야 한다. 지족항이나 미조항에 가면 바다 한가운데 여러 막대기가 꽂혀있는 게 보이는데 이게 바로 죽방렴이고 이것으로 잡은 멸치를 죽방멸치라고 한다. 물살이 센 곳에 대나무를 엮어 물고기가 나다니는 길에 놓아두면, 멸치들이 알아서 가장 안 쪽에 갇히는데 어부는 그저 기다렸다 그것을 퍼내면 된다. 이렇게 잡은 멸치들은 비늘을 다치지 않아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봄이 되면 남해의 식당마다 어른 손가락만 한 멸치로 만든 멸치쌈밥을 내어놓는다. 사실 멸치 쌈밥 맛은 그냥 그렇다. 어부들이 고된 멸치잡이를 끝내고 내다 팔기엔 망가져 버린 멸치들을 모아 양념을 섞어 끓여 먹곤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멸치쌈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머리와 내장을 떼어낸 싱싱한 멸치에 시래기와 야채를 썰어놓고 간장과 고춧가루를 대충 섞은 양념에 조리면 완성이다. 반대로 말하면 싱싱한 생선을 칼칼한 양념에 맛있게 조린 것을 상추에 싸 먹는 평범한 음식이다.
봄멸치의 진수를 제대로 느끼려면 회무침을 맛보아야 한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싱싱한 멸치를 야채와 버무려 먹으면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아마 한 번 맛보고 나면 매년 봄마다 멸치회무침을 먹으러 나처럼 남쪽으로 운전대를 잡게 될 것이다.
3. 금산 보리암
누구든 남해에 간다고 하면 꼭 금산의 보리암에 가보라고 한다. 제법 높은 곳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어서 정상까지 오르는데 30분 정도면 충분한 데다 남해 앞바다가 숨 막히게 아름다워서 남해에 간다면 꼭 들르라고 권하곤 한다.
금산이 금산이 된 이야기를 하려면 고려 말로 거슬러 가야 한다. 힘없는 왕은 몽골에 투항해버리고 북으로는 홍건적과 여진족이, 남으로는 왜구가 정신없이 나라를 약탈해댔다. 원나라가 가고 나니 이제 명나라가 이북 땅을 내놓으라고 통보한다. 힘든 백성들이 눈에 아른거리던 이성계는 그깟 땅 명에 주어버리고 안으로 곪아 터진 것부터 정리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해보지만, 강경한 대신들은 전쟁을 하자고 한다. 압록강에 다다르자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고, 그대로 말을 돌려 강경파를 숙청해 버린다.
이제 그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는 이 고려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였다. 망설여지던 차에 이성계는 남쪽 끝 높은 산에 있는 어느 암좌에 들어가기로 한다. 그곳에서 나를 왕으로 만들어 준다면 온 산을 비단으로 덮어주겠다 산에게 기도했다. 100일째 되던 날, 그는 개경으로 돌아가 새나라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되고 나니 이제 저 큰 산에 비단을 덮어주기로 한 약속이 떠 올랐다. 고민 끝에 그는 이 산에 비단 금(錦)을 붙여 금산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남해 금산은 보리암에서 보는 풍경도 절경이지만, 소원을 들어주기로 유명한 해수관음상을 놓치면 안 된다. 해수관음상이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으로, 관세음보살은 그의 이름만 부르더라도 다른 모든 사람들도 고통에서 구제된다고 한다. 게다가 이 곳의 해수관음상은 영험해서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고 한다. 나도 구석에 가서 조용히 내 소원을 빌었다. 언젠가는 꼭 이뤄지기를.
3. 다랭이마을은 마늘 수확이 한 창이구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다랭이 마을에 들렀다. 남해는 풍족한 땅이 아닌 탓에 산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어 쌀을 해 먹곤 했다. 지금도 층층이 쌓인 다랭이 논들이 남해 이곳저곳에 모여있는데, 그중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이 다랭이 마을이다. 10월 논농사가 끝난 논에 마늘을 뿌려놓으면 남해의 따뜻한 기온과 청량한 해풍이 마늘을 쑥쑥 키워주는데, 5월이면 마늘종과 마늘을 수확할 수 있다. 이곳 마늘은 다른 곳 마늘보다 당도가 2~3도 더 높다. 그래서 남해의 식당에서 내어주는 마늘장아찌는 참 달고 맛있다. 나도 집에 가는 길에 마늘 반 접을 사다 장아찌나 담가먹어야겠다.
다랭이 마을에서 유자 막걸리를 한 통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몽돌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숙소 덕에 파도가 몽돌을 사그라 대는 소리를 밤새 들을 수 있었다. 몽돌 사이사이로 새어 나오는 파도 소리는 모래사장에서 듣는 파도 소리와는 다른 맛이 있다. 몽돌이 파도를 타고 구르며 은은하면서도 청량한 소리를 내는데, 파도 소리를 안주삼아 한 잔 또 한 잔 마시다 보니 이내 깜깜한 밤이 되어버렸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유자는 '술독을 풀어주고 술 마신 사람의 입 냄새를 없애준다'라고 쓰여있는데, 실제로 비타민 C가 레몬의 3배나 들어있어 피부를 맑게 하고, 피로 해소에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술이 참 잘 넘어간다.
5. 추천코스
남해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말린 멸치 사진이 나온다. 멸치쌈밥을 시켰는데, 반찬으로 마른 멸치도 내어주셨던 거다. 이 작고 반짝이는 녀석들이 남쪽 끝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니 이 곳 사람들에게는 작은 보물이 따로 없겠다. 남해는 꽤 큰 섬이라 하루 만에 둘러보기는 벅차다. 여행 코스를 짤 때는 먼저 멸치를 미조항에서 먹을 것인지, 지족항에서 먹을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족항에서 먹을 거라면:
지족항(점심) > 금산 > 다랭이마을 > 몽돌해변
미조항에서 먹을 거라면:
금산 > 송정 솔바람 해수욕장 > 미조항(점심) >
독일마을
멸치쌈밥, 멸치무침:
남해 금산 꼭대기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곳 (금산산장):
괜찮았던 찻집 (앵강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