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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 May 18. 2021

5월 하동, 싱그러운 녹차밭

봄비와 함께하는 향긋한 햇 차


먹기: 참게탕 (제철 5~6월), 재첩국 (제철 5~6월)

마시기: 햇 차

놀기: 차 밭에 누워서 낮잠 자기



1. 참게, 조그만 게 참 맛나네.

 섬진강은 참 풍요로운 강이다. 벚꽃 필 무렵부터 먹기 시작하는 벚굴을 시작으로, 오뉴월에는 재첩, 다슬기, 참게가 번갈아 식탁에 오르고, 한여름에는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가 잡힌다. 보통 민물에서 나는 것들은 물비린내가 많이 나지만 하동에서 나는 것들은 그렇지가 않다. 섬진강 하구에서 민물과 바닷물이 번갈아 오가며 키워낸 것들이라 물비린내가 적고 깔끔한 맛이 난다. 

  이 중에서 내가 최고로 치는 식재료는 '참게'이다. 파주에서 나는 털게는 가을이 제철이지만 남쪽에서 나는 참게는 여름에 알을 낳아서 늦봄이 제철이다. 아니나 다를까 섬진강을 따라 빽빽이 들어선 가게 앞 수조마다 참게가 가득 차있다. 

  참게는 주로 매운탕으로 끓여먹거나 게장을 담가 먹는다. 이곳에서는 참게와 다른 것들을 함께 갈아 넣어 끓인 참게가리장도 즐겨 먹는다. 참게는 크기가 작은 편이고 껍질은 딱딱한 편이라 먹기가 여간 성가시다. 대신 바다에서 나는 게보다 그 맛이 훨씬 진하다. 참게탕 속 참게를 껍질 채 오도독 씹어서 살을 발라내 먹으면 고소함이 입안으로 퍼져나가고, 간장게장에서 게딱지를 건져내 밥을 비벼먹으면 감칠맛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강 근처 식당 중 한 곳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참게탕 한 숟갈, 소주 한 잔, 참게장 한 입, 소주 한 잔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거나하게 취해버리지 않을 수가 없다.


2. 녹차 밭 한가운데에서 신선놀음

매암제다원

 하동은 우리나라에서 차나무를 가장 먼저 심은 곳으로 이 이야기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신하가 차 종자를 선물 받아오자 흥덕왕이 이것을 지리산에 있는 쌍계사에 심으라 했다. 이곳은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니 차 재배에 안성맞춤이다. 보통 녹차 하면 보성을 떠올리는데, 보성 녹차밭은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대규모로 조성하다 보니 기계로 수확하기 좋도록 키가 큰 나무들을 키운다. 하지만, 하동의 차밭은 그렇지 않다. 고작해야 성인 남자 키가 될 듯 말 듯 한 나무 사이사이로 삼삼오오 쭈그려 앉아 손으로 일일이 찻잎을 수확해야 한다. 게다가 차로 올라갈 수 없는 가파른 산비탈 여기저기 아무데서나 불쑥 자라는 차나무들이 잔뜩이다. 이렇다 보니 하동에서 수확되는 차는 수량도 적고 값도 비쌀 수밖에 없다. 

한밭제다
차마실 키트

 처음 찻집을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녹차 이름들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차들은 우전, 세작, 잭살 이렇게 세 종류이다. 우전은 곡우(穀雨, 4월 20일) 전에 따는 가장 어린잎으로 만들어 우전(雨前)이라 부른다. 우전(雨煎)이라고도 쓰는데 비가 오기 전에 달인다 즉 덖는다는 뜻이다. 찻잎이 여리다 보니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다음은 곡우에서 입하(立夏, 5월 5일) 사이에 따서 만든 차로 이것은 세작(細作)이라고 부른다. 아직 말려있어 창처럼 생긴 잎과 조금 오그라들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생긴 잎만 모아 만든다. 다른 지역에서는 세작이라는 이름 대신 작설이라고도 불리는데, 찻잎이 어찌나 작고 귀여운지 참새 혀 같다 하여 작설(雀舌)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동에서는 작설이라는 말 대신 '잭살'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작설을 이 지방 방언으로 이르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다만 하동에서의 잭살은 흔히 발효시킨 차 즉 홍차를 의미하며 일반적인 홍차 제다법과는 달리 햇빛 아래에서 숙성 과정이 이루어진다. 예로부터 고뿔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면 잭살 차를 달여 먹었다고 한다. 

 5월 5일 이후에 수확된 녹차는 시기에 따라 중작, 대작으로 불리는데, 이들은 떫은맛이 강하고 잎이 억세어 주로 티백 재료로 쓰인다. 5월이 되면 입하 전에 딴 잎으로 만든 질 좋은 햇차를 맛볼 수 있어서, 이 맘 때쯤이면 가게마다 '햇차 있어요'라는 문구가 걸린다.

 녹차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한데, 마음에 드는 다실을 방문해도 좋고, 마음에 드는 제다원에서 시음을 해도 좋다. 나는 하동 협동조합에서 운영 중인 '차마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차 밭 원두막에서 차를 마셨다. 피크닉 바구니를 열면 뜨거운 물과 녹차와 홍차가 들어있는데, 아마 세작과 잭살이 아닐까 한다. 빌려주신 돗자리를 깔고 천천히 녹차를 마시며 누워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산을 타고 내려온다. 정신없이 먹었던 참게가 스르륵 소화되어 내려가고 부드럽고 깔끔한 녹차가 속을 달래주니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3. 해장, 재첩인가 햇차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참게탕은 참 맛난데, 얼큰한 국물 덕에 과음을 하게 된다. 하동에서 가장 고민되는 순간이 바로 과음한 다음날 아침이다. 간 보호에 뛰어나다는 재첩국으로 속을 달랠 것인지, 맑은 우전차로 몽롱한 정신을 깨울 것인지 참 고민스럽다.

 재첩을 이곳에서는 갱조개라고 부른다. 강에서 나는 조개라는 뜻의 사투리이다. 애기 손톱만 한 것을 바닥에서 퍼올려, 하나하나 씻고, 살을 발라 국을 끓이는데, 내어주신 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한 올 한 올 귀한 진주알 같다. 소금간만 한 뽀얀 국물에 부추가 한가득 들어가 있는 것이 정석이다. 시원한 재첩국 못지않게 맛있는 음식이 바로 재첩회 무침이다. 양배추, 오이, 상추 등의 야채를 썰어 물기를 뺀 재첩과 함께 초장에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서서히 더위가 올라오는 5월에 딱 알맞은 음식이다. 

 사실 본래 재첩은 섬진강보다 낙동강이 더 유명했었다. 재첩이라는 말도 부산 사람들이 '재치' 혹은 '재칩'이라 부르던 것에서 따온 말이다. 낙동강을 따라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재첩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재첩은 물 맑은 곳에서만 살 수 있으니 이제는 섬진강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일 년 내내 나는 것도 아니다. 겨울에는 강바닥 깊숙이 들어가 동면을 하다 4월부터 서서히 나오기 시작한다.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 재첩 맛이 떨어지므로 여름에는 조업을 쉰다. 가을에 다시 잡기 시작해서 겨울이 되기 전에 끝난다. 봄에 잡은 것을 저장했다 여름에, 가을에 잡은 것을 저장했다 겨울에 내놓아서 일 년 내내 맛볼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5~6월에 잡은 재첩이 가장 맛이 좋다. 초여름에 하동에 왔다면 재첩국을 놓치긴 아무래도 아쉽다.

쌍계명차 우전차

  술을 좀 마셔본 사람들은 알 터인데, 아예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는 날도 있다. 일일이 손으로 발라낸 재첩 대신 국물만 퍼마시는 건 아무래도 죄송한 그런 날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날에는 김동곤 우전차 명인의 '쌍계명차' 다실에서 뜨끈한 햇 우전차로 취기를 달래 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된다. 기분 탓으로 개운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녹차의 알라닌, 아스파라긴산, 아미노산, 카테킨 등의 성분이 체내로 들어온 알코올을 빠르게 분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숙취로 부대끼는 속을 뜨끈한 햇녹차로 살살 달래 보는 것도 이 곳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하나이다.


4. 마무리

화개장터의 조영남 조각상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와 바다에서 난 것과 뭍에서 난 것을 바꾸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가장 북적이던 화개시장이 자취를 감추어버려 지금 모습으로 2001년 복원하였다. 이곳에는 산나물과 버섯처럼 산에서 나는 것도 있고, 은어와 벚굴처럼 강에서 나는 것도 있다. 강원도에서 가지고 온 옥수수도 있고, 이곳에서 나는 녹차도 있다. 산도 있고 들도 있고 강도 있고 바다도 있는 이 곳 하동처럼 화개장터에도 없는 게 없다. 조영남의 화개장터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구석구석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 조영남 <화개장터> 중


5. 추천코스

먹는걸 좋아한다면: 하동재첩 특화마을 (재첩) > 하동 송림공원 > 최참판댁 > 매암 제다원 (녹차) > 화개장터 (참게탕) > 쌍계명차(녹차)

하이킹을 좋아한다면: 화개장터 > 쌍계사 > 불일폭포 > 쌍계명차 > 하동재첩 특화마을




차마실 대여: 

재첩: 

쌍계명차:

참게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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