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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 Mar 08. 2021

3월 통영, 동백 피는 풍요로운 바다

먹고 또 먹고. 시원하게 해장하고.


먹기: 도다리쑥국 (제철 3월)

마시기: 다찌

놀기: 동백꽃 가로수 따라 산양 일주 해안도로 드라이브



1. 도다리쑥국, 봄이 오는 향기

 예전 통영 사람들은 동지와 정월대보름 사이에 도다리쑥국을 꼭 먹어야 한 해를 건강히 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는 식당마다 도다리쑥국을 드시고 계신 주민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바다에서 건진 산란 직전의 싱싱한 도다리는 살이 꽉 차 있고, 해풍을 맞고 갓 피어난 어린 쑥은 향으로 가득 차있다. 부드러운 쑥 몇 줄기를 건져 고소한 국물과 떠먹으면 어제 먹은 술도 함께 개운하게 씻겨 내려가고, 쑥의 향긋함만 혀에 남는다. 마치  남쪽의 이른 봄이 입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도다리쑥국에는 사실 도다리보다 쑥이 더 중요하다. 3월에 갓 피어오른 어린 쑥을 '햇쑥' 혹은 '해쑥'이라고 부르는데, 통영의 많은 섬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쑥들은 향이 아주 기가 막힌다. 조금만 날씨가 따뜻해져도 억세 져버리니 찬바람이 조금만 가라앉으면 급히 통영으로 향해야 한다.


2. 산양 일주 해안도로 드라이브

 통영에 처음 도착하면 보통 실망스럽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기대했던 아름다운 바다는커녕, 끝이 없는 네온사인과 시끌벅적한 시장통으로 가득 찬 도시와 어촌 어느 사이 즈음의 통영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통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통영대교를 건너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통영의 최남단에 위치한 동네는 산양읍이다. 이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추천하기는 은근히 어려운데, 당신이 고요한 새벽을 좋아한다면 미래사 편백나무 숲을, 해가 내리쬐는 오후를 좋아한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라가 보기를, 노을을 좋아한다면 달아공원에서 노을을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새벽을 좋아하는 나는 편백나무 숲으로 향해볼까 했지만, 비가 온다는 예보에 달아공원만 간단히 둘러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투덜대며 통영대교로 차를 몰았다. 통영대교를 지나 해안도로로 들어서자 또 다른 통영이 나타난다. 구름이 잔뜩 끼어 일출이 보이진 않지만 잔잔한 햇빛이 잔잔한 바다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들 사이사이를 포근히 비추어준다. 달아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구름 낀 고요한 아침 바다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3. 풍성한 통영 바다, 시장 구경하기

 통영에는 두 개의 큰 시장이 있다. 하나는 새벽에 여는 서호시장이고, 하나는 낮에 여는 중앙시장이다. 새벽녘 고깃배들이 들어와 경매를 마치면 바로 앞 서호시장 난전에 깔린다. 오늘 아침에는 싱싱한 멸치들이 잔뜩 가판에 올라와 있다. 여기저기 멸치를 손질하시는 분주한 손들이 몽롱한 나의 새벽을 깨운다.

  통영의 아침을 여는 서호시장 근처에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쫄복국과 시래깃국이다. 예전에 많이 잡히던 쫄복이 요즘은 잘 잡히지 않아서 작은 복섬으로 끓여내는 집도 많아졌다. 그래도 복어국의 시원함은 이 복이나 저 복이나 여전하다.

 시래깃국은 본래 멸치 육수에 무친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푹 끓인 국인데, 통영에서는 장어를 넣고 푹 고아낸 육수로 끓여낸다. 통영 바다는 어찌나 풍요로운지 시장 한 켠의 시래깃국도 멸치가 아닌 장어로 고아낸다. 게다가 장엇국 한 그릇과 다양한 반찬을 합해서 고작 오천 원 남짓 받으신다.

 오늘 아침은 오래된 노포에서 쫄복국을 한 그릇 시켰다. 강하지 않은 육수에 미나리와 콩나물을 듬뿍 넣어 시원하게 끓여낸다. 콩나물과 미나리를 건져 초장에 찍어먹다 보면 자그마한 쫄복들이 자태를 드러낸다. 어찌나 조그마한지 한 입에 뚝딱이다.  쫄깃쫄깃하면서 후루룩 넘어가는 맛이 시원하다. 먹다가 식초를 한 바퀴 두르면 상큼한 맛을 느낄 수 있고, 반쯤 남았을 때 다진 양념을 넣어 얼큰하게 즐길 수도 있다. 복은 산란하기 전인 12월에서 3월까지가 제철이고, 찬바람 도는 계절이 지나가고 나면 독이 많아진다. 하지만, 맛이 어찌나 좋은지 4월에도 목숨 걸고도 먹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찬바람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한 그릇 먹어두었다.

점심시간 즈음이 되면 북적이던 서호시장이 조용해져 가고, 이 열기는 중앙 시장이 이어받는다. 수조에 가득 찬 온갖 해산물이 눈을 사로잡는다. 멍게, 굴, 조개, 개불, 낙지, 해삼은 물론이고 제철인 밀치부터 광어, 도미, 게다가 이름 모를 물고기까지. 한참을 두리번대며 구경했다.

 이 골목 저 골목 재미있게 구경 다니다 엄청난 놈이 눈에 들어온다. 흔히들 '이시가리'라고 부르는 '줄가자미'. 미식가들 사이에서 횟감으로 가장 맛있다는 그 전설의 물고기가 시장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사진은 찍고 싶은데, 사지도 않을 아니 사지도 못할 생선 앞에 서있기가 민망해서 수줍게 가격을 물어보았다. 한편에서 생선 손질을 하시던 주인장이 젖은 손을 탁탁 터시며 '한 마리에 15만 원인데, 그냥 사진 맘껏 찍고 구경하다 가이소. 아침부터 얼마냐고 묻는 손님들 때문에 하루 종일 바쁘다 아인교.'라고 환하게 웃어주신다. 주인장의 환한 웃음에 미안한 마음도 사르르 녹는다.

 시장을 통과해서 골목길에 접어들면 여기저기 '실비'나 '다찌'라고 쓰인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 있지에서 가져왔다는 다찌는 통영의 독특한 문화이다. 본래는 술을 시킬 때마다 새로운 안주를 내어주는 선술집들이었는데, 방송에 소개된 이후는 술과 그날 주인장이 마련한 안주를 묶어 사람 수대로 판매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가는 곳마다 줄이 길어 숙소에서 다찌집에 배달을 시켜보았다. 단 돈 삼만 원에 해삼, 멍게, 굴, 전복, 가리비, 새우튀김, 초밥, 제철을 맞은 밀치 회와 도다리 뼈째회, 문어숙회까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보내주셨다. 주당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네!


4. 마무리

통영 예찬은 쓸수록 쓸거리가 는다. 어떤 집에 들어가서 밥을 시켜도 멸치회무침과 꼴뚜기 무침을 반찬으로 턱턱 올려주신다. 도로마다 동백이 피어있고, 발 닫는 곳마다 친절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추리고 추려서 몇 가지만 더 늘어놓아본다.

 첫째는 통영에 가면 꼭 먹어볼 만한 생선이 볼락이다. 손바닥만 하게 자라라면 5년은 족히 자라야 해서 보통은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볼락이 식탁에 오른다. 통영에서는 주로 뽈래기라고 부르는데, 이 자그마한 물고기를 어찌나 사랑하는지 회로도 먹고, 구워도 먹고, 매운탕으로도 끓여먹고 심지어 김치에도 넣어 먹는다. 내가 아는 생선 중에 구워 먹었을 때 가장 맛있는 생선이 바로 이 볼락이다. 11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4월까지가 제철이니 놓치지 말고 꼭 한 접시 먹어보기를.

둘째는 멸치이다. 남도 사람들은 멸치를 회로 먹는 호사를 누린다. 성질이 급한 탓에 그물에 걸리자마자 죽어버리는 멸치는 남쪽이 아니면 접하기가 어렵다. 싱싱한 멸치는 무쳐먹어도 고소하고, 고춧가루에 지져먹어도 얼큰하다.

 세 번째는 멍게이다. 통영 바다는 멍게 양식장으로 가득하다. 멍게의 표준어는 '우렁쉥이'이지만, 경남에서 많이 나고 경남 사람들이 많이 부르다 보니 이곳에서 부르는 말이 표준어로 함께 인정되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멍게의 70%는 이 곳에서 난다. 양식을 하다 보니 1년 내내 나지만, 멍게가 가장 맛있는 철은 햇볕이 쨍쩅 내리쬐는 한여름이다. 이때에는 알이 꽉 차고, 펄이 없어 최상의 맛을 낸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멍게는 양식이 어려워 자연산밖에 없다. 반으로 잘라 살은 파먹고, 남은 껍질에 술을 채워 마시면 바다가 온몸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충렬사이다. 정확하게는 충렬사 앞 계단에서 그의 '통영'이라는 시를 음미하는 것이다.  백석이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난이라는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난이가 통영에 산다는 말을 듣고 동백꽃 피는 춘삼월에 충렬사 계단에 걸터앉아 빨래터에 빨래하러 나온 아낙네들을 훔쳐보며 '통영'이라는 시를 남긴다. 이 둘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지만, 충렬사 계단에 앉아서 이 시를 읊어보면 아름다운 통영의 풍경 속 가슴 두근거리던 20대의 백석 옆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깃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중략)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여우난골족>, 통영

"



5. 추천코스

주도를 아는 사람과 있다면:

서호시장 (아침 먹기) >  충렬사 > 산양 해안도로 일주 > 중앙시장 (회 떠먹기 혹은 다찌집)


 사랑하는 아이들과 있다면:

 중앙 시장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디피랑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조각공원에 조명을 비추어 재미있는 산책을 할 수 있다.

참고: http://dpirang.com/ 




도다리쑥국 맛집:

다찌집:

쫄복국 맛집:

볼락 맛집:

멸치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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